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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 어루만지는 순교자의 성지...당진 ‘국민 휴식처’ 되다
김대건 신부, 유네스코 ‘올해 역사 인물’로 선정
유럽의 야외 미술관에 온듯한 합덕읍 ‘신리성지’
버그내 순례길은 관광공사 강소형 잠재 관광지
동쪽·북쪽바다 품은 ‘왜목’ 일출·일몰 모두 감상
200년전 평화와 평등·자유를 향한 희생의 족적
일출 일몰을 한꺼번에 볼수 있는 당진 왜목마을 해넘이 풍경. [자연·인문 팸투어 전문가그룹 지앤씨, 정백호 작가 드론 촬영]
김대건 신부 생가앞 프란체스코 교황이 경배하는 모습 동상으로 재현.
드넓은 성지 자체가 작품인 당진 신리성지.
아미미술관도 사진맛집.

2014년 한국에 온 프란체스코 교황은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의 솔뫼성지를 방문해,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목숨 마친 김대건 신부와 당진의 수많은 순교자들의 영전에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했다.

당진 소년 대건 안드레아는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았고, 유네스코는 ‘올해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 교황이 경하해 마지 않았던, 당진의 성지들은 지금 드넓은 초록빛 대지 위에 예술적인 조형물, 다양한 산책로, 큰 의미를 담은 기념물 등으로 단장해 모든 국민들의 휴식처로 거듭났다.

방문자 개개인이 어디에 살든, 무엇을 믿든, 중요하지 않다. 그저 거닐기 좋고 아름답기에, 거리두기에 매우 적합한 놀이터이기에,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려 나의 영혼을 정화시키기에, 찾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사진 맛집’인데다 건강산책을 하는 곳이라, MZ세대 젊은가족과 대학생, 연로한 어르신 부부 등이 많이 찾는다.

▶미술관 혹은 평화의 산책길 같은 성지들=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사진 성지’ 왜목, 아미미술관, 삽교 놀이동산 등 놀곳과 성지는 구분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성지가 더 관광지 같다.

합덕읍의 신리성지는 유럽의 어느 야외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예당평야가 주변에 속시원하게 펼쳐진 가운데, 예술적인 성당, 잔디밭, 프랑스의 유물들, 습지와 갈대밭 등이 잘 어우려져 있다. 포토포인트에 흰색 집 모양의 쉼터로 마련해두는 등 설계자의 온화함, 개방성도 느껴진다.

푸른 잔디밭이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며 조성돼 있고, 그 중심에 유럽의 요새처럼 생긴 교회, 동네 앞산의 나뭇가지를 엮어놓은 듯한 십자가가 황금빛으로 물든 예당 평야를 굽어 살피고 있다. 그냥 한폭의 그림이다. 프랑스에 있던 2층집 높이의 삼위일체형 종을 세워둔 모습도 아름답다.

이곳은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의 족적이 배어있다.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크리스트교 서적 저술, 번역, 순교자들의 행적 수집 등 활동을 하면서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의 농토, 성인 4명이 붙잡힌 ‘거더리’의 집 등을 그대로 보존한 신리성지는 한국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였다. 사진맛집이 성인들의 이야기를 품었으니 촬영욕구가 커진다.

버그내 순례길은 내륙 깊이 들어온 문물의 십자로 내포(합덕,우강 일대), 삽교천 청정 물줄기, 성인들의 사랑 실천 등 자연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언택트 여행코스이다. 솔뫼성지→합덕제·수리민속박물관→합덕성당→원시장·원시보 우물→무명 순교자의 묘→신리성지로 짜였다. 이 길은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지사장 송현철)의 강소형 잠재관광지로도 선정됐다.

▶솔뫼성지, 합덕제, 합덕성당=야트막한 소나무 언덕이 평화로운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곳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고개숙인채 경배하는 모습의 동상을 지나 생가 뒤쪽 언덕을 오르면 솔숲사이로 그의 입상이 있고, 소나무를 따라 모자이크화가 도열한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붉은색 건물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 성당 및 기념관’은 김 신부와 밀사들이 조선 입국을 위해 탔던 라파엘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건축했다. 인공으로 만든 작은 연못에는 모네의 수련 처럼 작고 예쁜 연꽃들이 피어있다. ‘기억과 희망’이라는 부제의 복합예술공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당시 이곳에서 23개국, 6000여명의 청년을 만났다. 지상 1층짜리 건물인데, 4750㎡로 넓다. 하늘에서 보면 여러색의 꽃잎이 서로 의지하는 들장미 모습을 닮았는데,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문장을 형상화한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성장기, 활동 및 업적, 체포와 순교 4대 박해, 한국교회사 등에 관한 자료와 함께 희귀 성물, 안드레아의 유품도 전시한다. 특히 김 신부가 유럽 신부들을 위해 대동여지도보다 일찍 만든 것으로 밝혀진 지도도 있다.

솔뫼성지 북쪽 합덕면 합덕제는 예당평야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신라말에 축조된 예당제(연지:蓮池)를 말한다. 인근에 고딕양식의 합덕성당이 있다. 1899년 초대 본당주임 퀴를리에 신부가 현 위치에 한옥성당을 건축했고, 1929년 7대 주임 패랭 신부가 현재 건물인 벽돌로 된 고딕양식 성당을 새로 지었다.

합덕 사람들의 포교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는 서학을 공부하며 평등사상을 알게돼 기나긴 수탈과 핍박을 극복할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식 세례 절차를 몰라 선지자가 임시 세례를 하고, 나중에 공식 세례를 받는 과정을 보면, 한국 크리스트교의 자생력, 좋은 세상 만들기를 향한 이 지역민의 열망 등을 읽을 수 있다.

▶동쪽바다, 북해도 가진 왜목과 아미미술관= 좀 더 북쪽으로 가면 해발 350m의 아미산 자락에 아미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낡은 폐교를 이곳 관장 박기호·구현숙 부부가 예술을 품은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지역의 건축, 문화, 풍속, 생활상 등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생태미술관을 지향한다.

야외전시장은 평소 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하며 야외 조각 및 설치 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다섯개 전시실의 네모난 창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데, 작품감상을 통한 카타르시스에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작품사진이 되는 기쁨을 더해준다. 레지던스 작가들이 있어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당진은 충남이지만 위도상 경기도 평택과 같다. 이유는 평택만 북서쪽으로 당진땅이 삐죽이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즉 당진에게 평택만은 작은 동해다.

왜목마을은 당진시 최북단에 위치해 평택 북쪽인 화성 궁평항이 코앞이다. 즉 당진 입장에서는 당진동쪽 바다와 서쪽바다를 한꺼번해 조망하는 곳, 북해까지 가진 몇 안되는 입지조건이다. 그대서 왜목에선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볼수 있다.

해넘이 장관은 석문면 대난지섬와 소난지섬 사이의 비경도를 중심으로 감상한다. 해발 70m 가량의 왜목마을 뒷산인 석문산 정상에 오르면 왜목마을 서쪽에 대호간척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뒤(동쪽)를 돌아보면 왜목의 바다가 펼쳐지는 풍광과 마주할 수 있다. 정식 활공장은 아니지만, 마니아 그룹이 만들어놓은 임시활공장에서 패러글라이딩이 떠 다니며 운치를 더한다.

왜가리를 닮은 지형 답게 해변에는 초대형 왜가리 조형물이 있고, 그 주변에서 물때엔 해수욕을, 썰물때엔 수생생물을 관찰을 즐기는 가족여행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언택트 길 위에서 자유, 평등, 평화 향한 열망도 흡입=현재 옛 풍경 속에 새로운 즐길거리를 더한 온고지신 놀이터 면천읍성, 인공섬이 있는 연못 한가운데 볏집 올린 정자(건곤일초정)가 자연 포토존을 형성한 골정 쉼터, 당진-아산-평택이 만나는 평택만 당진쪽 삽교호 놀이동산의 대관람차, 21만㎡의 면적에 펼쳐진 자연식물도감 삼선산수목원도 ‘언택트 당진투어’의 구성품이다.

100~200년전 당진 사람들의 평화와 평등, 자유를 향한 희생과 사랑의 족적은 2021년 가을, 예술과 건강성이 돋보이는 국민놀이터로 거듭나, 후손들에게 얼굴 가득한 미소를 선물했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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