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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사색] 가을을 맞으며

9월이다. 후끈한 열기로 익어버릴 것만 같았던 날들, 맹렬했던 더위가 순식간에 확 꺾였다. 계절의 순행이 반가운 한편으론 저주받은 날씨, 아프리카도 이렇게 덥지는 않을 거라고 툴툴거리며 혹서의 시간을 보냈던 게 머쓱해진다. 빛의 속도로 흐르는 시간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무한정 이어질 것 같았던 여름의 힘이 빠지고 숨 쉬는 공기가 청량해졌다.

‘더위가 그친다’는 뜻의 절기 ‘처서’. 처서의 15일간을 5일씩 3등분해서 보면 지금은 가운데 5일간인 ‘차후(次侯)’의 시기로, 여름이 가고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도는 시기라고 한다.

기후재앙의 시대에 개념 없이 절기를 들먹이는 구닥다리짓이 이상하게 계절이 바뀌는 때는 가슴에 와닿는다. 자연의 한 점으로 살아가는 무한소 존재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었던가?

처서로 들어서던 첫날, 남산 소월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길가 쉼터 벤치에 잠깐 앉았다. 테이블에 설치된 돌 화병에 보라색 리시안셔스가 가득 꽂혀 있고 작은 메모판에 한 줄 메모가 적혀 있었다. 무더위의 끝자락에서 성큼 다가온 가을을 반기며 지난여름 고생 많았다는 위로를 보내고 있었다. 이것이 나에게 보내는 글이 맞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시안셔스 그 다양한 색깔 중에 보라색을 골라 꽂은 감각이 돋보이는 그 누군가가 궁금해진다. 문득 가슴이 따뜻해지며 꽃다발을 안고 언덕길을 올라오는 누군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어릴 적, 앞집 할머니다. 길을 향해 난 작은 점방 쪽마루에 앉아 막걸릿잔을 기울이시곤 하던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점방집을 좋아하지 않았고 할머니에게 대한 감정도 좋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의 눈치가 보여서 그랬는지 할머니가 담벼락 앞에 가꿔놓은 꽃을 보러 가는 것도 눈치를 봤던 것 같다.

손님 없는 시간에는 꽃밭을 서성거렸던 할머니. 빈 땅이 생기면 채마밭을 가꾸는 시골 사람들의 정서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듯하다. 먹을거리를 심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본인의 재미 때문인지 모르지만 꽃을 심고 씨를 받았다. 어느 비 오는 날, 수건을 쓴 채 호미질을 하시던 할머니가 나에게 손짓해서 봉숭아 꽃잎을 양손 가득 따 주셨다. 난생처음으로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였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 답답했던 유년 시절, 손톱의 봉숭아 꽃물이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 물든 손톱을 자를 때 비로소 내 시간이 결코 느리지 않음을 느꼈던 듯싶다.

생계형 직장인의 ‘허덕거리는 인생’에서 이런 쉼표 하나를 만나게 되면 위로가 되고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함도 있다. 이기적인 내 삶이 돌아보여서 그런가 싶다.

길을 지나가는 누군가를 위해 꽃을 가져다놓고, 화단을 가꾸는 사람들의 여유에 살짝 질투를 느낀다. 그런 류의 위안,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 내가 원한 적 없지만 나의 감정을 흔드는 그런 일에 오래 신경 쓸 여유도 없다.

그런데 자꾸 그 꽃이 돌아다보인다. 비록 나는 게으르고 마음이 가난하지만 누군가의 우연한 선물을 감사하게 느끼고 기뻐하는 것까지만이라도 제대로 해보자. 나의 지난했던 여름에 위로를 보내고 다가오는 가을을 기대로 채우는 것, 딱 거기까지만이라도....

sunny0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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