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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홍범도 장군도 난민이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받을 준비가 돼 있을까.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한국을 도왔던 현지인들이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다. 분쟁지역 외국인을 대규모로 국내 이송한 것은 한국 역사상 처음이다. 과거 아프간 파병 한국군을 지원하거나 한국에 조력한 대사관 직원과 의료인, 기술자, 통역자 등과 이들의 배우자와 자녀, 부모 등 가족이다. 이들은 한국 정부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으로부터 보복 위험에 처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실제 탈레반은 ‘복수는 없다’며 사면령을 발표했지만 미군 통역 등을 대상으로 보복이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정부는 이들을 국내로 이송하면서 네 가지 명분을 내세웠다. 한국을 위해 함께 근무한 동료의 어려움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도의적 책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 그리고 다른 국가의 사례 등이다. 정부는 그러면서 이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로 규정했다.

관련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자마자 아프간 ‘특별공로자’ 수용 반대 여론이 봇물을 이뤘다. 지난 2018년 500여명의 예멘인 제주도 입국 당시 불거졌던 국론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뒤따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프간인 스스로 미국이 철수하자마자 나라를 저버렸다며 ‘난민 받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까지 올라왔다. 이 정도는 점잖은 편이다. ‘테러리스트가 포함된 것 아니냐’ ‘다음은 모스크 지어 달라고 요구하겠네’ 등 편견과 혐오가 짙게 깔린 얘기도 넘쳐난다. 난민이 아닌 한국 활동을 지원한 아프간인인데도 이 정도다.

한국 난민인권네트워크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난민을 겨냥한 혐오 표현이 심화한 데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한 정부도 책임이 있다”면서 “난민협약 가입국에 걸맞게 아프간 난민 보호에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한다.

양보해서 편견과 혐오를 과거 탈레반이 지배했던 아프간이 이슬람극단주의 성지로 여겨진다는 점과 탈레반 연계 의혹을 받는 인물이 영국과 프랑스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소동을 지켜본 조심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굳이 정부가 내세운 명분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계 10위 경제강국을 넘어 주요 7개국(G7)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대한민국 입장에서 아프간 사태를 마냥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다. 일각에선 이번에 입국하는 아프간인들을 향해 한국의 국익이 아닌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했을 뿐이라는 폄훼도 있지만, 이런 시각이라면 한국의 아프간 파병과 재건사업 참여 역시 돈을 노린 것이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한국은 아프간보다 먼저 디아스포라를 겪은 나라다. 일제시대 수많은 조선인과 고려인은 나라를 잃은 채 만주와 연해주, 미주 등 낯선 땅으로 내몰렸다. 서거 78년 만에야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 역시 난민에 다름 아니었다.

한국이 아프간 난민을 받을 준비가 돼 있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그래도 난민도 아닌 한국을 도운 400명도 안 되는 아프간인을 배척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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