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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억·9억·11억…전세시장 이제는 ‘삼중가격’ 시대 [부동산360]
같은 단지 같은 주택형 아파트인데…
전셋값은 5억7750만, 9억3000만, 11억
임대차법 시행후 갱신·신규계약 가격차 생겨
갱신 포기한 재계약으로 중간값 시세도
[그래픽: 김진아CP, 헤럴드경제 DB]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지난해 7월 임대차보호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 이후 전세시장의 이중가격 현상이 보편화된 가운데 최근 들어서는 삼중가격도 속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대료 인상률 5%를 적용한 갱신 계약이냐 신규 계약이냐에 따라 같은 단지 같은 주택형 아파트 전셋값이 수억원 이상 벌어진 데 더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되 시세의 70~80% 수준까지 보증금을 높여 재계약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거주를 이유로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과의 협상 과정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갱신권을 포기한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8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84.24㎡는 지난달 10일 보증금 5억7750만원(27층)에 전세계약서를 썼고 사흘 뒤인 13일에는 그보다 두 배가량 비싼 11억원(3층)에 전세계약을 했다. 2년 전 같은 면적의 전세 계약이 5억5000만원 안팎에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전자는 5% 상승했고, 후자는 두 배 뛰었다.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 간 가격차가 크게 벌어진 ‘이중가격 현상’이다.

같은 평형 아파트가 같은 달 21일에는 9억3000만원(18층)에 실거래됐다.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의 중간값 수준이다.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계약을 체결한 사례라고 부동산 업계는 추정한다. 층이나 향, 인테리어 등으로 끽해야 10~20%의 차이를 보였던 동일 평형 아파트 전세가격이 5억원대, 9억원대, 11억원대로 삼분화된 셈이다.

이러한 삼중가격 사례는 서울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43㎡의 경우 지난 7일 신고 기준 7월 총 5건의 전세거래가 체결됐는데 2건은 5억원대, 2건은 10억원대, 1건은 7억원대에 전세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갱신 계약과, 재계약, 신규 계약의 가격이 달리 책정되면서 동일층에서도 적게는 3억원에서 많게는 5억원 이상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마포구 신수동 신촌숲아이파크 전용 84.91㎡도 지난달 체결된 전세계약 3건이 7억300만원(6층), 8억5000만원(10층), 11억원(24층)으로 보증금 편차가 컸고, 강서구 마곡동 마곡13단지힐스테이트마스터 전용 84.98㎡ 역시 4억6200만원(4층), 6억8000만원(4층), 8억5000만원(7층) 등 세 단계의 시가로 전세계약서를 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사에 붙은 매매 및 전세가격표 모습. [연합]

이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고 재계약을 체결하는 세입자가 많아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개정 임대차법에 따르면 세입자는 통상 2년인 임대차 계약을 1회 연장할 수 있다. 이때 임대료 상승률은 5%로 제한된다. 갱신 계약 시 전셋값이 2년 전과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계약 갱신이 늘면서 전세 물건이 줄어든 데다 4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는 집주인이 신규 계약 전셋값을 올리면서 시장에는 두 개의 시세가 만들어졌다. 갱신 계약 시세와 신규 계약 시세다.

세 번째 시세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예외 조항에서 출발한다. 현행법상 집주인은 본인이나 자녀, 부모님의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나서면 세입자는 꼼짝없이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한다.

집주인의 실거주하겠다는 으름장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하고 신규 계약 시세의 70~80% 수준으로 재계약을 하는 세입자가 늘면서 하나의 시세가 더해졌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전세난에 전셋값까지 급등한 상황에서 이사, 인테리어 등 추가 비용을 고려하면 퇴거보다는 임대보증금을 높여 재계약하는 게 낫다고 세입자도 판단했다는 것이다.

공인중개업계 한 관계자는 “전셋값이 일제히 오르면서 임대기간이 끝난 세입자가 비슷한 가격에 비슷한 전셋집을 구하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며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집주인이 퇴거를 요구한 경우 상호 협의 하에 보증금을 올려 재계약하는 게 나은 선택지일 것”이라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주인 입장에선 보증금 인상을 제한받다 보니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재계약해 가격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시장 가격을 자유롭게 두지 않고 제한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다중가격 현상을 포함해 전셋값 상승, 전세난 심화, 전세의 월세화 가속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만큼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임대차법은 지난 1년간 임대차시장 불안을 야기했을뿐더러 매매시장 불안에도 한몫하고 있다”며 “정부의 당초 목표대로 시장에서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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