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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제국의 고도 ‘발랄 감성’을 입다...나주 ‘인문학 여행’
고려 태조 왕건 ‘버들잎 스캔들’ 완사천
드라마 ‘성균관스캔들’ 촬영지 나주향교
고구려 고도 재현한 ‘나주영상테마파크’
수상레저객이 직선·곡선 그리는 ‘나주호’
중세~근대화 물건 전시 ‘째깐한 박물관’
‘3917마중’ 옛집, 체류형 문화공간 탈바꿈
백제 고찰 ‘불회사’ 템플스테이도 유명
나주 서쪽 영산강 옆 백제-고구려 테마의 나주영상파크는 사극의 단골 촬영지이자 청년들의 놀이터다.
3917마중에서 데뷔무대를 갖고 있는 ‘앙상블 올’
고구려 궁성 세트장
째깐한 박물관
완사천 문제의 그 버들잎 우물가
국가지정문화재 ‘불회사의 석장승’

나주의 도심은 옛 제국의 고도(古都) 위에 현대적 감성을 절묘하게 입었다.

그래서, 고려 태조 왕건의 ‘버들잎 스캔들’이 있었던 완사천부터, 중세 광역단체 관청이자 지방행궁의 위상까지 가졌던 금성관,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왔다가 동학혁명때문에 광주로 발길을 돌린 서성문, ‘성균관스캔들’ 촬영지 나주향교를 지나, 양가집 공가(空家)들을 문화공간으로 바꾼 ‘3917 마중’까지, 고도의 거리엔 청년들의 재잘거림이 있다.

고구려의 고도를 재현해놓은 서쪽 영산강변 나주영상테마파크에도 역사체험과 함께 인기 드라마의 추억으로 놀 거리가 많고, 동쪽 나주호에선 장판 같던 호수에 역동적인 수상레저객들이 건강한 그림을 직선과 곡선을 그려넣는다.

나주호 근처 1600년 넘은 고찰 불회사는 발효약차(茶)·석장승 굿즈 만들기 등 감각적인 놀이 인문학으로 템플스테이를 꾸몄다.

▶백제-고구려, 발랄하게 재현=마한제국 이후 국내외 교류의 터전인 서쪽 영산포에서 점차 동쪽으로 이동하며, 느림에서 발랄함으로 바뀌는 나주의 속살을 보자.

영산강 S라인 느러지전망대에서 한반도 지도 모양 지형을 감상한 뒤, 바로 옆 금남정 정자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쐰다. 근처엔 후삼국경쟁 최종 결승전 왕건 vs. 견훤의 격전지가 있다. 왕건이 쫓기던 중 기습 당하기 직전 예지몽 덕에 피신했던 몽탄(무안)도 보이고, 전열을 재정비한 옥룡산이 남서쪽 가까이에 있다. 결국 전세 역전 당한 견훤이 생존 장병들을 달래며 밥을 먹은 ‘식전바위’도 멀지 않다.

영산강을 거슬러 10여㎞ 동쪽에 있는 공산면에는 나주영상테마파크가 나온다. 조선과 신라는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사극 촬영에 문제가 없는데, 고구려-백제는 별로 없다. 서울, 연천, 강화, 충주에 소규모 유적이 있고 종합세트장이 마련된 곳은 단양과 나주인데, 나주의 이 테마파크가 훨씬 크고 다채롭다. 왕궁, 도성, 요새는 물론이고 고대 마을·저잣거리가 영산강변에 잘 조성돼 있다. 궁성 외에 기와집 50, 초가 23, 너와집 17채 등 민가만 100채 가량 된다.

그래서 ‘주몽’, ‘태왕사신기’, ‘천추태후’, ‘일지매’, ‘바람의나라’, ‘왕은 사랑한다’ 등이 촬영됐다. 성문앞 초대형 주몽 바닥그림, 출연진의 대형 브로마이드는 어김없는 인증샷 장소다. 한참을 걸어 큰 대문 3개를 지나야 맨 끝 왕궁에 도달하는데, 성루에 올라 천촌만락과 나주평야를 굽어보며 영산의 강바람이 시원하게 맞는다.

▶예쁜 옹성 서성문, ‘성균관스캔들’의 나주향교=도심에 진입하면서, 마한제국의 중심 도시, 고려 왕실이 중시했던 금성관 영역을 일개 ‘읍성’이라 칭하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이곳은 일찍이 돌도끼, 석검, 돌화살촉 등 석기유적이 발견됐고, 마한연맹의 으뜸인 불미지국이 터 잡았다. 마한의 2000여년 고도였고, 중세 1000년 전라(전주+나주)의 중심도시였다고 향토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왕건에 이어 등극한 혜종의 어머니 고향 답게 수도 아닌 곳으로는 유일하게 임금 주재 행사 연단 ‘월대’를 갖추고, 나라의 기틀 ‘사직단’을 두도록 왕실에서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이 뜻은 공민왕때 금성관이 크게 지어지면서 이어졌고, 내용 면에선 금성군·나주목의 관청이었지만, 위상 면에선 왕실·국정·외교 분야 지방 의전기관이었다.

10리쯤 되는 성 둘레의 사방에 설치된 4대문에 겹겹 벽을 쌓아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는 ‘옹성’ 시설에다 전망대 격 문루를 둔 점은 나주성이 이미 ‘읍성’의 위상을 초월했음을 말해준다.

3917마중, 나주향교와 함께 있는 서쪽 성문 영금문은 예쁘다. 옹성과 문루에 조명등이 켜지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임금도 말에서 내리는 나주향교는 성균관을 빼닮았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중세~근대화시기까지 물건들을 모아놓은 ‘째깐한 박물관’도 볼거리다.

▶역사재생 문화공간 ‘3917 마중’=공가가 된 고택, 난파정, 시서헌, 목서원 등 옛 집을 체류형 역사재생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3917마중’은 금성관 서쪽 마을 풍경을 ‘옛것 위 새로운 것’으로, 젊은이들이 자주 오가는 골목으로 탈바꿈시킨 마중물 역할을 했다.

후손들이 떠난 뒤 ‘팔지 않은 공가’와 부지 4000여평을 전주사람 남우진이 매입해 청춘들의 체류형 문화공간으로 재생한 곳이다. 지난 12일에는 5인조 클래식걸그룹 ‘앙상블 올’이 데뷔무대를 여는 등 여행자에겐 문화향유를, 신진예술가에겐 데뷔 기회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남우진 대표는 “고택과 고목, 문화유산의 가치를 기반으로 정원마다 각기 다른 테마로 역사문화를 즐길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려 한다”면서 “청년 예술가들의 갤러리와 작업공간 등 인프라를 개선하고 다양한 협업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금성관 앞 나주곰탕 하얀집 거리를 지나 남쪽으로 2㎞쯤 가면 고려가 나주를 중시했던 이유, 희대의 스캔들 장소가 나온다. 나주시청 인근 완사천에서 목마른 장수 왕건에게 물을 떠주며 버들잎을 띄워줬던 나주 여인 오씨 부인이 왕건과의 사이에서 고려 2대왕 혜종을 낳으면서 나주는 구한말까지 1000년간, 다시 한번 호남 거점이 된다.

▶가장 오래된 불회사, 청년과 어울리다= 동쪽 다도면 나주호 근처에 가면 여러 의미를 지닌 고찰 불회사를 만난다.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마라난타가 384년에 직접 세운 고찰이고, 세속의 노인들을 닮은 석(돌)장승을 입구에 세워 손님을 맞는 곳이며, 발효차로서 장흥 청태전과 비슷하지만 증기로 쪄서만들고 향이 강한 ‘비로약차’를 만드는 산실이다.

‘석장승 굿즈 만들기’, ‘자유시간 많이 주는 멍때리기 보장’, ‘영화-음악회 감상’ 등 내용의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곳이다. 근엄할 줄 알았던 국내 최고령 노승이 직장인-대학생-청소년의 마음을 헤아리듯 놀아주는 느낌이다.

국내에서 가장 수려한 1500년전 금동신발, 금관이 발굴된 곳, 작은 도시임에도 고분군만 7~8곳이 있는 곳이다. 공민왕이 너무도 좋아해 그림까지 그려준 파주염씨, 호남 ‘음식보’를 집대성한 풍산홍씨, ‘댕기머리 사건’ 항일학생의거의 주인공이자 종가문화를 국민에게 개방한 밀양박씨(남파고택), 16세기 국내 첫 성균관 학생시위를 주도하고 철갑선 아이디어를 낸 나주임씨의 세거지이기도 하다.

유명 시사고발프로그램 진행자 출신인 송일준 광주대 석좌교수는 유년시절부터 살아온 나주에 대해 “유적은 천년고도인데, 승자들의 은폐와 무시 속에 체념-자족하며 살았지만, 앞으로는 국민의 인문학여행을 잘 안내하면서 멋진 나주의 감춰진 퍼즐을 맞춰보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마한부터 고려까지 역사 복원을 진행중인 나주가 국민들에게 어색하지만 정겨운 손길을 내밀고 있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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