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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신라이프] “도망치기만 한 건 진 것”이라는 함정

필자가 매달 진행하고 있는 ASAP 호신술 특강에는 여성 참가자들이 남자친구 또는 남편을 파트너로 데리고 와 참가하기도 한다. 그럴 때 이런 시험을 해보곤 한다. 참가자가 허리에 띠를 묶고서 바닥에 앉아 있으면 가해자 역할을 하는 강사가 일어나지 못하게 압박하면서 그 띠를 풀어 빼앗으려 시도한다. 참가자는 띠를 뺏기지 않고 다른 강사가 있는 안전한 장소까지 이동하면 자기방어에 성공한 것이고, 띠를 뺏기면 실패다. 과연 여성 참가자와 남성 참가자 중에 어느 성별이 더 효과적으로 미션에 성공했을까?

아마도 남성 참가자들의 우월한 성적을 예상하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같은 날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상대와 같은 미션이 주어졌음에도 체격이 더 좋거나 심지어 격투기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 남성 참가자들보다도 여성 참가자들이 훨씬 더 빨리 위험에서 벗어난다.

대체로 남성 참가자들은 바로 직전에 배운 내용이 있음에도 익숙한 ‘싸움의 습관’ 때문에 힘겨루기를 하거나 격투기기술을 사용해 우세를 점하려고 시도한다. 그 결과, 오히려 탈출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풀지 못하게 지켜야 할 띠를 지키지 못한다.

그러나 체격도 훨씬 작고 힘도 약한 여성 참가자들은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 ‘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확보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기술들을 배운대로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더 빨리 띠가 풀리기 전에 억누르고 있는 힘에서 벗어나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호신술은 그 목적이 싸움이나 격투기와 다르고, 그 목적에 따라 훨씬 다양한 수단을 선택할 수 있음을 우리는 곧잘 간과한다. 간혹 격투기를 포함해 스포츠 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더 “여자는 남자 못 이긴다”고 확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이런 함정에 빠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도망치기만 한 걸 이겼다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으로부터 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란 다시 말해 ‘나를 위험에 빠트리려는 상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선택과 행동으로 상대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을 승리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꾸준히 이슈가 되고 있는 여경 체력 기준 논란 같은 것도 크게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경찰 관계자들은 이런 논란이 있을 때마다 “경찰 업무는 힘쓰는 것만 하지 않는다, 여성 경찰이 필요하거나 더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 영역이 있다”고 한결같이 답해왔다.

더불어 최근 경찰은 2026년부터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지망생이 같은 기준으로 체력검사를 치르게 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보면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악력, 달리기 등의 단순 체력 측정 위주였던 기존 검정 방식에서 벗어나 4.2kg 무게의 조끼를 착용하고 장애물 코스 달리기, 장대 허들넘기, 밀고 당기기, 구조하기, 방아쇠 당기기 등의 연속 코스를 시간 내에 통과하면 합격하는 방식이다. 미국 뉴욕, 캐나다 경찰의 체력검사 방식을 참고한 것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경찰의 업무 목적에 더 어울리는 테스트 방식이다. 이로써 더는 여성 경찰들의 능력이 구설에 오르는 일은 없길 바란다.

김기태 A.S.A.P. 여성호신술 대표강사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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