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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포커스] ‘대충주의’가 불러낸 ‘사고공화국’

아직도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사고,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서해 훼리호와 세월호 침몰 사고 등 대형 사고는 많은 부분에서 닮은꼴이다.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대형 참사라는 점이 그렇고, 원칙을 도외시한 경영진의 탐욕과 안전 불감증이 주된 배경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감독과 관리의 의무를 다하기보다 기업 이익을 대변하다시피 한 전·현직 관료 문제가 배경이 됐던 점도 희한할 정도로 비슷하다. 무엇보다 기본과 원칙만 지켰더라면 충분히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100% 인재(人災)였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비단 대형 사고들뿐일까? 이달만 해도 광주 철거건물 붕괴 사고와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고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안전사고 관련 뉴스들을 보면 대부분이 지켜야 할 매뉴얼과 원칙을 무시하거나 소홀했던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됐다. 작업계획을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했고, 공사 현장에서는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의무사항인 기본 소방시설조차 미비했다. 사고 직후의 위급 상황 보고와 대처 수칙마저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기본과 원칙보다는 ‘상황에 맞게 능률적으로’에 익숙해져 왔다. 지켜야 할 원칙과 매뉴얼을 목표달성의 걸림돌로 간주하는 경향이 만연돼 있다. 낮은 사고 발생 가능성과 요행에 의존해서 원칙과 매뉴얼이라는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까지 얻었던 나라에서 발생되는 거의 모든 사고의 배경이다. 이것이 과연 합리적인 판단일까?

‘매뉴얼의 나라’ 일본에서 겪었던 일화다. 지상전철이 많은 일본, 특히 도쿄권엔 건널목이 정말 많다. 건널목마다 이중, 삼중의 차단장치와 지킴이 아저씨들이 봉사하고 있다. 그런데 종종 전차가 인신사고나 안전 문제로 급정거해 승객들이 쏠리거나 넘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도 승객들이 놀라기는커녕 평정심을 유지한다. 한 번은 하차할 역에 거의 다다른 곳에서 전철이 급정거해 10여분이나 멈췄는데 객실 내 스피커로 전해지는 사유인즉, 전방의 건널목 문제라고 했다. 차단기의 작동은 문제 없는데, 차단기에 부착돼 있는 경고등이 원칙대로 점멸하지 않았다는 이유였고, 다행히 문제가 해결돼 정상 운행이 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경우라면 어떠했을까? 아마 전차는 잠시 멈추었다가 매뉴얼을 무시하고 역에 진입하고, 건널목에서도 역무원의 수신호를 받으며 진행했을 수 있다. 차단기 경고등 고장은 그 후에 수리됨으로써 아무 탈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상황 종료’되지는 않았을까? 빈번한 신호기 오류에도 적절한 조치 없이 운행하다 추돌 사고를 냈던 서울지하철을 보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경우’와 ‘신속히’나 ‘상황 따라 적당히’ 하는 경우 중 어느 쪽이 효율적일 것인가? 편리함이란 악마의 유혹과 눈앞의 비용 부담을 회피한 대가로 ‘안전’이 무너지게 되면 그 경제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배가돼 우리 모두에게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2실장·경제학 박사

m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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