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소, 청명-20018, 2020, Acrylic on canvas, 112 x 145.5 cm [갤러리현대 제공] |
화면에 그려진 것은 오리다. 아니 오리가 아니다.
“오리죠. 아니 사실은 오리 비슷한 그 어떤 것인데, 그 뒤 배경은 구름 혹은 연못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생각하지 않고 마구 칠했다. 내 그림 앞에선 관객은 오리 비슷한 오리와 연못 비슷한 배경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한다. 그 간극과 찰나가 흥미롭지 않은가”
전시장에서 만난 일흔 여덟의 작가는 웃으며 말했다. ‘오리 작가’ 이강소의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몽유’(夢遊, From a Dream)를 주제로, 작가의 1990년대 말 부터 2021년까지의 회화 30여점이 나왔다. 평생 ‘회화’로 승부 내고싶어 했던 작가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
‘몽유’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을 함축한 키워드다. “이성으로 무장된 무척 자명해 보이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꿈과 같다. 나는 부정확하고 변한다. 남들도 마찬가지다. 전체 세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융합하고 흩어진다”는 작가는 “관객들이 ‘선생님 작품은 볼 때마다 달라요’라고 말할때가 가장 기쁘다”고 했다. 결말이 열려있는 소설처럼, 얼마든지 누구나 다르게 해석하길 바란다.
1층 전시장에는 빠른 붓놀림으로 굵은 선을 표현한 ‘청명’연작과 ‘강에서’(1999)연작이 나란히 걸렸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기’(氣)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림엔 그린 사람의 에너지가 담겨있고, 그것이 보는 이에게 영향을 준다” 만물의 기운을 붓으로 시각화 하는 것은 작가에게 평생의 과제다.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신작도 나왔다. 응집된 ‘기’를 표현하기에 강력한 단색조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어느날 작업실에서 20년전 아크릴 물감을 꺼내서 칠해봤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왜 이것을 안했나. 나를 유혹하는 색이다. 색이 나를 유혹했듯, 유혹하는 색채를 찾아보는 실험 중이다”
화업을 이룬지 50년, 작가는 여전히 ‘변화’를 강조한다. 설치,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판화, 회화,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던 작가는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이끈 주요 작가로 꼽힌다. 전시는 오는 8월 1일까지.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