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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보다 화순에서 더 꽃핀 주자학 동양 인문학 거점 주희의 한국가문 [남도종가의 재발견]
화순 신안주씨 대종가
동원사. 주자묘 내에 주잠, 주여경, 주열, 주인장, 주인원, 주인환을 추모하는 사당 회덕사가 있던 자리에 건립한 사당. [남도일보]

화순 신안주씨 대종가는 주희(1130~1260)의 직계 한국 가문으로, 주자학을 중국보다 더 발전시킨 동양 인문학의 거점 중 하나다.

조선 건국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해 세종대왕이 ‘주자대전’ 목판을 제작·보급한 뒤 중국에서 보다 한국(조선)에서 더욱 꽃핀 동양의 전통사상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대종가는 주자를 제향하는 주자묘를 건립하고, 한국과 중국에서 찾아오는 많은 참배객을 위해, 새로이 주자학당 설립을 추진중이다. 중국 발 화순 주자묘 순례객은 마치, 공자의 후손들이 안동에 찾아가 도산서원이 공자의 학문을 본토 보다 더 발전시켰다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감사의 비각을 세운 것에 빗댈 만 하다. 본관 신안은 중국내 일족과 동일하다.

주희의 증손인 4세 주잠(1194~ 1260)이 한국 주씨의 시조다. 그는 송인으로 남송에서 학문의 최고봉 격인 한림학사, 비서각 직학사를 역임했다. 몽고가 침입하자 1224년 7학사와 함께 나주 영산포로 입국했고 화순 능성(능주 옛이름)에 은거했다. 진안 신안촌(주자천변)에 서당을 열고 주자학을 전수했다. 진안 주천서원에 배향됐다.

주잠의 손자 주열(1227~1287)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 쿠빌라이칸의 무리한 요구를 철회토록 설복해 구국재상으로 고려사 열전에 기록됐다. 좌리공신으로 능성군에 봉해졌다. 주열은 문장과 필법에 능하고, 코가 빨간색일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원나라 공주가 이를 놀리자, 충렬왕은 ‘이 노인의 마음은 물과 같이 맑다오’하니, 공주가 존경의 태도를 취했다고 전해진다.

4세 주인장(1243~1315)은 한림학사, 예부상서를 지낸 뒤 능주로 낙향해 능성파의 1세가 된다. 그의 아들 주의(1278~1366)는 충렬왕의 부마가 된다.

조선 개국에 참여하지 않아 오랜 세월 가난과 수난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가학의 전통을 실천했고, 350여년 후 영조 대부터 잡역 면제, 왕들의 존경 표시 등 명예가 완전히 회복됐다.

13세 주엽(1596~1638)은 안향의 후예인 은봉 안방준 문하에서 배웠으며 병자호란 때엔 의병군에 참여했다. 주석환(1893~1955)은 만주 항일투쟁, 정의단 조직, 독립자금 송금, 일제 헌병대·관청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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