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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몸집 불리기만이 능사는 아니다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이후 유통업계의 시계추가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쿠팡과 함께 업계의 ‘메기’로 불렸던 마켓컬리가 재빨리 상장계획을 발표하는가 하면, 움직임이 더뎠던 롯데·신세계 등 유통공룡들도 치열해진 e-커머스 전쟁에 속속 참전하는 양상이다.

특히 최근에는 어느 때보다 기업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유통 대기업들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들여 온라인 전문몰을 인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는 롯데 품에, 온라인 여성패션전문몰 ‘W컨셉’은 신세계 품에 안겼다. 이런 분위기 덕에 이베이코리아나 요기요 등 조 단위의 대형 매물도 가치가 재평가되며 매각작업의 방해요소였던 ‘고가 논란’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처럼 온라인 전문몰들을 인수해 레고 조각처럼 양옆으로 끼워맞추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전환)’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래서 유통 대기업들이 e-커머스시장에서도 ‘옛 영광’을 되찾을까. 그 누구도 이 질문에 아직 명확한 대답을 하긴 어렵지만 e-커머스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쿠팡이나 네이버의 사업 방식을 살펴보면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쿠팡은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우리는 유통회사가 아니라 IT회사’라고 말할 정도로 소프트웨어를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직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IT 개발자들이 중국 상하이와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 상주하며 수요 분석, 물류 인프라 등의 시스템을 만들어온 것이다. 직매입 물건에만 적용됐던 쿠팡의 시스템은 오픈마켓사업을 시작하면서 적용 범위가 확대됐다. IT 기반의 시스템을 먼저 만든 후 그 위에 전자상거래를 얹은 셈이다.

네이버는 태생 자체가 빅테크(Big Tech)기업이다. 네이버 역시 일평균 300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플랫폼 위에 판매자들을 얹는 식으로 커머스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 판매자만 늘려서는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어렵다고 판단, 고객과의 접점인 ‘라스트 마일(Last Mile)’을 강화하는 추세다. 최근 CJ그룹이나 신세계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도 빠른 배송이나 콘텐츠 확보 등 고객과의 라스트 마일을 챙기기 위해서다.

이처럼 쿠팡이나 네이버의 사업 방식을 보면 유통 대기업들의 몸집 불리기가 예상만큼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지 않겠나는 생각이 든다. IT 시스템 위에 상거래를 얹는 것과 이미 잘 짜인 상거래 체계에 온라인몰을 붙이는 것은 시작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품권을 모바일로 선물받으면 매장에서 실물 상품권으로 교환해야 쓸 수 있고, 온라인몰 세일과 매장 세일을 각각 진행하는 게 당연하다는 마인드로는 e-커머스시장에서 이들 기업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유통 대기업들이 시장의 변화를 예민하게 파악하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 점은 사실 격려받을 일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잘하는 기업을 비싸게 인수하는 것만으로는 ‘백전불패’를 장담할 수 없다. 인수한 기업의 디지털 유전자를 모기업에 심어 IT회사로 재탄생한다는 ‘독한’ 각오 없이는 정면승부 자체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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