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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거봉값 올리면 사과 살까?’ 공정거래 속 시장경계

시장에 가서 100m쯤 걷다 보면 옷가게도 구경하고, 고등어가게도 지나고, 떡볶이 냄새도 맡아보게 된다. 하지만 공정거래 사건에서의 시장은 우리가 아는 이런 시장과는 사뭇 다르다.

공정거래 사건에서의 시장은 ‘경쟁이 펼쳐지는 영역’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의 행위가 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해치는지 감독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역을 정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해당 영역에서 기업들의 행위가 경쟁에 반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이 펼쳐진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상품 A와 상품 B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포도를 사러 시장에 간 소비자들은 포도 대신 비행기를 살까 고민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면 일반 포도(캠벨포도)와 거봉 사이에서는 어떨까? 일반 포도를 사러 갔다가도 ‘오늘은 거봉이 더 신선해보이네’ 하면서 선뜻 거봉을 들고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공정위가 경쟁 상황을 평가할 때는 실제로 경쟁하고 있는 상품들을 하나의 구획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를 ‘시장 획정’이라고 한다.

어떻게 시장을 획정할까? 현재 상황을 경쟁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거봉 가격을 올려보는 것에서 출발해보자. 그리 크진 않아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당한 시간 동안 올린다고 하겠다. 소비자들이 거봉을 대체할 마땅한 상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포도 사는 걸 그냥 포기하기나, 오른 가격에 거봉을 사게 된다. 일부 소비자가 구매를 포기하더라도 이렇게 가격을 올리는 게 기업에 이득이 된다면, 시장은 거봉 하나만으로 확정된다. 마땅히 경쟁할 만한 상품을 발견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거봉 가격을 올렸더니 소비자들이 대거 일반 포도를 사들고 갈 수도 있다. 가격을 약간 올렸는데 소비자들이 대거 이동해 기업이 손해를 보게 된다. 이때는 거봉만으로 시장을 획정하지 않는다. 거봉시장 밖에 무시무시한 경쟁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다음에는 거봉과 일반 포도의 가격을 함께 올려보고 소비자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시장이 획정된다.

상식적으로 거봉 가격이 올랐다고 비행기를 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과라면 어떨까? 경제 분석은 이러한 애매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법을 제공한다. 경제학에는 ‘수요의 가격탄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격이 1% 오르면 수요량이 몇 % 감소하는지 보는 것이다. ‘교차가격탄력성 이라는 것도 있다. 상품 A의 가격이 1% 올랐을 때, 상품 B의 수요량이 몇 %나 변하는지 알려준다. 수요함수를 추정하면 거봉의 가격을 그리 크진 않아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당한 시간 올렸을 때 어떻게 될지 가늠해볼 수 있다.

설문을 할 수도 있다. ‘거봉 가격이 오르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자. ‘① 그냥 거봉을 산다 ② 일반 포도를 산다 ③ 청포도를 산다 ④ 사과를 산다 ⑤ 비행기를 산다 ⑥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독자라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여러 사람에게 대답을 구해보면 일반 포도가 거봉과 경쟁하는지, 사과가 거봉과 경쟁하는지, 아니면 비행기가 거봉과 경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는 가격이 오르면 어떻게 될지 조사하는 것으로 시장을 획정하기가 곤란할 수 있다. 배달앱은 소비자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오히려 쿠폰을 준다. 포털은 이용자들에게 광고를 보는 대가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돈은 따로 받지 않는다. ‘가격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라는 설문 자체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요즘은 가격 대신 서비스 품질을 그리 크진 않아도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당한 기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시장을 획정하기도 한다.

조성익 공정거래위원회 경제분석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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