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연기·불친절한 장르’ 편견…오페라는 왜 뮤지컬만큼 인기가 없을까
외연 넓어지고 자원 풍부해도 외면
대중성 떨어지는 ‘소수만의 예술’ 편견
다양한 소재, 격식 파괴, 한국어 오페라 필요성 제기

실험과 창작 이어지는 소극장 오페라 필요
어린 시절 교육 통해 오페라 저변 확대
국립오페라단 ‘라트라비아타’. [국립오페라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48년 1월 서울 명동의 예술극장 ‘시공관’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La Traviata)’가 막을 올렸다. 조선오페라협회가 선보인 이 작품은 5일간 10회 공연을 진행하며 ‘전석 매진 신화’를 썼다. 한 유명 오페라연출가는 “첫 오페라가 공연된 당시가 한국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한국오페라사 80여년, 지금 업계가 마주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에 등록된 민간 오페라단은 130여개,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한국 출신의 오페라가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업계 중심에 있는 관계자들도 “우수한 성악가들이 해마다 등장하고, 훌륭한 작곡가·지휘자·연출자 들이 나오며 풍부한 자원이 갖춰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오페라는 뮤지컬과 같은 공연예술 장르와 달리, ‘소수만의 예술’이라는 선입견이 크다.

대극장 오페라 기준 평균 15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작품을 올려도 관객은 소수에 불과하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기 전인 2019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총 244편의 오페라가 무대에 올랐다. 매출액은 고작 42억원. 이 기간 뮤지컬은 2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예매 건수 역시 전체 공연시장의 2.1%로, 가장 적다. 국악 공연(2.3%)보다도 적은 수치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현재 전국 57개 학교에 성악과가 있지만 음대생들조차 오페라 축제나 공연을 보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오페라가 대중에게 외면받는 것에 대해 업계에선 다양한 요인을 언급한다.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다.

창작 오페라 ‘까마귀’를 연출한 이회수 연출가는 “뮤지컬이 편안하고 친절한 장르인 반면, 오페라는 불친절한 장르이며 오랜 역사 속에서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해오며 대중과의 거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라벨라오페라단 제공]

‘아이다’ ‘까마귀’ 등 다수의 작품을 연출한 이회수 국민대 겸임교수는 “뮤지컬이 편안하고 친절한 장르인 반면, 오페라는 불친절한 장르이며 오랜 역사 속에서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해왔다”고 말했다. 지금도 오페라는 ‘고급문화’ ‘상류층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다. 격식을 갖춘 무대에서 450년간 이어온 고전을 이야기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배비장전’과 ‘춘향 탈옥’을 연출한 김태웅 더뮤즈오페라단 제작감독은 “오페라는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밌게 볼 수 있지만 ‘한 번 봐서는 이해가 안 가고 공부해야 하는 장르’라는 편견이 있다”고 말했다.

오페라의 대중화 필요성은 제기되나 전문가들은 “오페라는 애초에 대중화가 불가능한 장르”라고도 입을 모은다. 대중화에 대한 간극, 다양성의 부족, 콧대 높은 정통오페라를 고수하려는 태도가 이유로 꼽힌다.

안주은 단국대 교수는 “음악인들이 추구하는 대중화와 일반인이 원하는 대중화의 차이가 크다”며 “대중은 다가가기 쉬운 내용으로 입문의 기회를 제공하기를 바라지만 음악인들은 고급 오페라를 통한 저변 확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작품 선정, 기획 취지가 다르니 서로의 접점을 찾지 못하기를 반복한다”고 말했다. 이회수 연출가 역시 “대중화가 되려면 대중의 니즈를 채워주고 변모해야 하는데 지금의 오페라는 힘든 부분이 많다”며 “음악부터 요즘 시대가 원하는 직설적이고 즉각적인 음악인 아니라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꼬집었다.

450여년의 유구한 서양 오페라사에 비하면 한국 오페라계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셈이다. 지금 업계에선 그 어느 때보다 변화의 걸음을 분주하게 옮기고 있다. 박수길 전 국립오페라단장은 “오페라 역시 대중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며 “대중과 긴밀하게 소통하지 못한 것엔 우리(업계)의 잘못도 있다. 새 시대에 맞는 오페라를 만들어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실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어려운 외국어가 아닌 쉬운 우리말로 된 창작오페라 제작을 시도하는 것은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어린이오페라 ‘푸푸 아일랜드’는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각색한 작품이다. [라벨라오페라단 제공]

많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오페라는 발연기를 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창작오페라에서 연기와 춤을 부각하는 작품들(‘서푼짜리 오페라’ ‘춘향탈옥’)이 늘고 있다. ‘푸푸 아일랜드’는 어린이 배우는 물론, TV드라마·영화에서 활약하는 기존 배우들과 성악가들이 호흡을 맞췄다. 작품을 연출한 안주은 교수는 “오페라 역시 뮤지컬처럼 춤과 노래가 있는 종합예술이지만 ‘춤과 연기가 약하다’는 편견이 있다”며 “좋은 작품에 부족한 부분으로 제기된 연기와 춤을 보강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푸푸 아일랜드’의 시도는 코로나 시국에도 ‘전석 매진 행렬’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안 교수는 “뮤지컬의 뿌리가 오페라인 것처럼 오페라에도 무용·연기 등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다면 어떤 뮤지컬보다 질 높은 작품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야 하는 대극장을 벗어나 소극장 오페라를 활성화하는 것도 오페라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실력 있는 창작진을 발굴하는 계기다. 이건용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공동 조직위원장은 “소극장 오페라는 새로운 오페라를 탄생시키고 실험하는 장소”라고 했고, 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대표는 “소극장 오페라는 독립영화와 같은 개념으로, 젊은 작곡가에게 창작 기회를 주는 토대”라고 강조했다. 유인택 사장은 “성악가들이 몸을 망가뜨리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창작 콘텐츠가 활성화돼야 오페라가 대중에게 뿌리내려 발전하고 지속 가능한 콘텐츠로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소극장 오페라는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류”(이회수 연출가)를 할 수 있고, “한 작품이 대극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김태웅 연출가)이 된다는 점에서 창작진으로서도 의미 있는 시도가 된다.

오페라가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교육’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윤호근 전 국립오페라단장은 “오페라 관객은 사춘기 이전에 형성된다”며 “어린이오페라를 접해본 사람은 성인이 돼 자발적 관객이 된다. 반면 스무 살 이전에 오페라를 접하지 못한 사람에겐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장르다. 그런 만큼 유년기부터 교육을 통해 접하는 것이 대중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회수 연출 역시 “한국 오페라가 전성기를 맞으려면 어린 시절부터 작품을 접하거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숙제를 하기 위해 억지로 공연장을 찾아 억압된 분위기에서 관람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노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업계에서 ‘어린이오페라 축제’에 대한 구상도 나오고 있다. 주축이 된 안 교수는 “오페라는 어린 시절부터 접할 기회가 많아야 성인이 돼서도 정통오페라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며 “‘어린이오페라 페스티벌’이 낯선 장르에 대한 거리를 좁히고 거부감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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