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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판관 포청천’을 지금 방송한다면

“개작두를 대령하라.”

1990년대 중반 국내서 전파를 탄 드라마 ‘판관 포청천’은 30~4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송가를 강타했다. 주인공의 논리적인 언변과 황제의 사촌까지 벌하는 공명정대함에 시청자들은 매료됐다. 개작두로 탐관오리에게 엄벌을 내리는 장면은 하이라이트였다. 관리들이 각종 비리를 일으켰던 현실과 대비돼 판관 포청천 ‘신드롬’까지 나타났다.

판관 포청천은 대만 중화전시공사(CTS)가 제작한 작품이다. 중국 북송시대를 배경으로 수도인 개봉(開封)에서 부윤(관리)으로 재직했던 포증(包拯·포청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포청천 이야기는 명나라 때부터 사랑받았던 중국 고전 콘텐츠다. 25년이 지난 현재 드라마에서 중국은 사실상 ‘금기’ 수준이 돼가고 있다. 단 몇 컷만 등장하는 중국 제품 간접광고(PPL)로 온갖 비난을 사고, 소품과 인테리어가 중국풍이란 이유로 급기야 방송까지 취소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해당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를 향한 융단폭격식의 비판이 쏟아졌다. 드라마는 상상력을 통해 만든 허구의 콘텐츠지만 시대적 환경과 감성을 읽지 못하면 외면은 물론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반중(反中) 정서’가 고조되는 최근 ‘빈센조’ ‘조선구마사’ 등의 드라마가 대표적 사례다.

판관 포청천이 큰 인기를 끌던 당시는 1992년 한·중 수교 등의 영향으로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던 시기였다. 판관 포청천이 KBS2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1994년 중국은 ‘한국의 제2의 해외 투자 대상국’으로 부상했다. 같은 해 김영삼 정부가 중국과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뒤 상호 학술, 문화, 언론, 청소년, 체육 분야 등의 교류가 탄력을 받았다.

반면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다. 2016년 국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문화적 보복 여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 게임이 국내 시장을 활보하는 동안 국내 게임 대부분은 여전히 중국 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스마트폰시장 1위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스마트폰시장인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다. 한때 20%에 달했던 삼성폰의 점유율은 1%도 안 된다. 현지 중저가 모델들의 도전도 거세지만 사드 보복에 따른 ‘한국 제품 불매운동’ 여진이 지속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SNS 등 인터넷을 타고 중국의 역사 왜곡 논란이 심화되면서 현재 반중 정서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한복·김치 등 국내 고유문화가 중국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하고, 한국 위인과 유명인을 조선족이라고 깔보는 식의 ‘랜선 동북공정’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 누리꾼을 향한 중국인들의 노골적인 조롱글까지 퍼지면서 양국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그런데도 중국 자본이 개입되거나 중국 원작에 기반한 새로운 드라마들이 방송을 앞두고 있다. 자본과 문화가 국경을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유통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영원히 중국을 배척하는 것도 맞지 않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적 정서를 거스른 콘텐츠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역사 왜곡 논란과 과도한 설정으로 반중 정서를 자극한다면 시청자들로부터 ‘개작두 엄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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