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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 2인3각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는 번번이 전날 밤 잠을 설치게 했다. 그 중에서 반세기가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가장 가슴 설레는 추억이 있다. 아버지와의 2인3각 우승이다. 입학 이후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으신 아버지를 한참이나 졸라서 참석한 경기였다. 동년배 중에서도 키가 훌쩍 크신 아버지와의 2인3각은 매우 불리한 조합이었다. 더욱이 바쁘신 아버지하고 연습 한 번 못하고 나선 경기였다.

경기 시작 전에 아버지는 딱 한 말씀만 하셨다. “욕심내지 말고 아버지만 믿어.” 2인3각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호흡이 잘 맞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한쪽이 너무 앞서거나 뒤처지면 넘어진다. 기량이 다른 경우 한 사람은 평소보다 속도를 늦추고 다른 사람은 조금 더 힘껏 뛰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속도를 맞춰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나, 둘’ 하면서 구령을 붙이기도 한다. 이처럼 쉼 없이 소통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버지는 달리면서 구령 중간중간 계속해서 ‘천천히’를 외치셨다. 아마 어린 아들보다는 본인에게 거는 주문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짧은 시간에 ‘배려’와 ‘소통’의 중요성이라는 값진 인생의 가르침을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제도와 현실의 관계도 2인3각이다. 상호 영향을 미치며 변화하지만 일반적으로 현실은 제도보다 빠르다. 만일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규범력이 떨어진다. 제도가 현실보다 앞서는 경우도 있다. 다수가 세상이 확 바뀌기를 갈망하는 개혁의 시대에는 다소 급진적인 제도들이 도입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경우든지 제도와 현실의 차이가 너무 크면 쓰러진 2인3각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중대범죄수사청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아무리 항변해도 그동안 잘못된 수사권의 행사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검찰의 책임이 크다. 이상적으로도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국민의 인권 보장에 더 적합하다. 수사를 하면 아무래도 기소까지 하고 싶어진다. 이때 사건을 객관적인 제3자가 다시 살펴본다면 분명 무리한 기소를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직접 수사를 하지 않은 기소 검사는 어쩌면 수사 검사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지체된 수사와 기소가 가져오는 폐해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이 크다. 검찰이 못 미더워도 배려하고 소통해야 성공적인 2인3각이 된다.

건국 이래 최대의 수사조직 개편이 정신없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출범 등 개혁적인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갈등을 심화시키는 개혁이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 개선의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19라는 대변환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발견된 현실과 제도의 간극을 메우고,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에 매일 노출되며 세상사를 다 아는 듯 허장성세하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작 수십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배려와 소통의 기본을 가르쳐준 사람은 소시민이었던 나의 아버지였다. 여당과 야당 모두에 원래 대한민국은 이런 소시민이 만든 나라라는 것을, 배려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2인3각마냥 둘 다 쓰러진다는 것을 누가 좀 따끔하게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이찬희 법무법인 율촌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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