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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또 다시 시작된 ‘범죄와의 전쟁’

1950년 6·25전쟁 당시, 한국으로 날아온 유엔군 사령관(원수) 더글러스 맥아더는 한국군 육군참모총장(소장) 채병덕에게 향후 지휘 계획을 물었다. 포병 출신이지만 병기 병과에서 주로 근무해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던 채병덕은 “200만 남한 장정을 모조리 징집해 훈련시키면 침략을 알아서 격퇴해 줄 것”이라고 답했다. 별다른 세부 계획도 없었고,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 돼 있었다. 맥아더는 그날 저녁 이승만 대통령에게 채병덕에 대한 보직 해임을 요구했다. 이후 채병덕은 경남지구편성군사령관으로 좌천, 그해 7월 하동전투에서 전사했다.

정부가 최근 또 다른 ‘범죄와의 전쟁’을 30여 년 만에 선언했다. 그 대상은 당시처럼 조직폭력배가 아니다. 이번에 정부가 명명한 전쟁은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등의 땅 투기 의혹으로 촉발된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부동산 범죄와 전쟁한다는 각오로 투기 조사 수행, 투기 근절 방안,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에 전력투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과연 정부의 선언만큼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11일 정부와 청와대가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직원·배우자·직계가족, 국토교통부·LH 전(全) 직원 1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토지 거래를 조사한 결과, 투기 의심 사례가 나온 사람은 LH 직원 20명뿐이었다. 그 중 13명은 지난 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미 의혹을 제기한 대상이어서, 추가된 인원은 7명에 불과했다.

지난 12일과 13일 경기 성남과 파주에서 LH 간부 2명이 연이어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이들 모두 20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파주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간부는 경찰이 ‘투기 첩보’를 받아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정부 합동 조사와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더더욱 의심이 간다.

이번 ‘전쟁’의 총대를 멘 곳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중심이 된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특수본)다. 하지만 경찰은 의혹이 불거진 지 일주일 만인 지난 9일에야 LH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강제 수사가 지연되면서 증거 인멸이 됐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지난 8일 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실시간 진주 LH 본사 전경’이라는 제목으로 어두운 밤 불 켜진 LH 본사 사옥 사진이 게재됐다. 이 사진이 맞다면 압수수색을 대비해 LH 직원들이 밤새 각종 증거를 없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채병덕의 실패담을 왜 서두에 거론했는지 이제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조사와 수사는 사실상 전쟁이다. 1차 조사 결과는 실망만 줬다. 수사에서 또 어수룩한 결과가 나왔다가는 민심의 분노를 막기 어려워 보인다. 특수본은 ‘명운을 걸겠다’는 자세로 수사에 임해 명명백백하게 의혹을 밝혀내야 한다.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얼굴을 붉혔던 검찰의 조력도 받아야 한다. 어찌 됐든 검찰의 관련 경험이 풍부한 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여당도 수사권에 얽매이지 말고 검찰 등 모든 수사기관이 이번 사건에 역량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국민이 이미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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