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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디신 살리자”...변호사·뮤지션·스타트업 대표 ‘의기투합’
코로나로 작은 무대 줄줄이 셧다운
문화기반 다진 인디음악 고사 위기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뮤지션들 자발적 참여에 용기얻어
한달만에 67개팀 쟁쟁한 라인업

“ ‘대관료 지원’이 가장 현실적 대안
유료관객 작은 정성이 무대 지킴이”
부장판사 출신 윤종수 변호사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에 참여하는 크라잉넛

“무대 밖에 없는 음악인들에게 지금은 삶 자체가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무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해리빅버튼 이성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인디음악의 꽃을 피운 홍대 공연장이 ‘셧다운’에 들어간지 일 년. 소규모 공연장은 방역지침을 준수하다 줄줄이 폐업의 길로 들어섰고, 뮤지션들은 장기간 실직 상태에 접어들었다. 수십년을 자생한 음악신의 붕괴를 눈앞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쓰리고 안타까웠다. 그 무렵 사단법인 코드의 이사장인 윤종수 변호사에게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코로나19로 홍대 앞 공연장들이 문을 닫고 있어요. 혹시 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성수)

열혈팬에서 친한 동생이 된 이성수의 자문에 윤종수 변호사도 사방팔방 뛰었다. 일 년 넘게 위기는 이어졌으나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이 프로젝트의 씨앗이 됐다. 윤 변호사의 글에 응답한 사람은 온라인 공연 송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백명현 대표(프레젠티드 라이브)였다. “플랫폼을 제공할 테니 온라인 공연을 해보자 하더라고요. 누가 도움을 줄 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연장을 빌려 공연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윤종수) 부장판사 출신 현직 변호사, 32년차 뮤지션, 개발자 출신 스타트업 대표까지. 세 사람의 의기투합은 뮤지션 67팀이 함께 하는 온라인 공연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saveourstages)’(~14일까지)로 이어졌다.

준비기간은 불과 한 달. 모든 일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홍대 소규모 공연장이 줄줄이 문을 닫던 즈음 결성된 한국공연장협회에 속한 롤링홀을 비롯한 다섯 개의 공연장을 대관했다.

동료 법조인들과 아마추어 밴드(크레이지 코드) 활동을 할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은 깊지만, 공연 기획은 처음이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공연을 하지 못하는 음악인들에게 온라인에서 공연을 하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모든 과정이 다 돈이었고, 비용은 이중으로 들어가더라고요. 큰 엔터 회사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실감했어요.” (윤종수)

뮤지션의 섭외는 이성수가 직접 나섰다. 한 달 동안 섭외를 위해 전화를 돌렸고, 직접 편지를 썼다. “제가 덕을 쌓거나 사교적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부담이 컸어요. 다행히도 뮤지션들은 설득의 과정도 필요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용기와 힘을 많이 얻었어요.” (이성수) 소수의 팀으로 시작한 일이 크라잉넛 노브레인 잔나비 다이나믹듀오 등 67팀까지 늘어나며 쟁쟁한 라인업이 만들어진 계기다.

지난 8일 시작한 온라인 공연은 유료로 열리고 있다. 관객들은 일일권(1만원)과 전일권(5만원)을 구매한 뒤 각 공연장 채널에서 보고 싶은 뮤지션 무대를 볼 수 있다. 티켓 수익금은 대관료와 스태프·아티스트 인건비, 인디 음악 생태계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한다. 투명성과 신뢰 확보를 전제로 공연을 기획하는 만큼 수익과 지출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블록체인에 올렸다. 10일 오전 기준 티켓 판매로 얻은 수익은 4577만원. 1차 목표액(5000만원)에 91.5% 달성했다.

윤 변호사와 이성수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인디 음악신에 많은 관심이 생기길 바라고 있다. 윤 변호사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곳이 처한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며 “인디신에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적은 금액이지만 티켓을 유료로 판매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캠페인과 음악신에 대한 지지 의사 표시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공연장과 인디신이 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지지의 뜻으로 온라인 공연인데도 티켓을 사고 있어요. 이러한 모습을 통해 공연장과 음악신에 왜 지원과 도움이 필요한지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윤종수) 개인이 구매하는 티켓을 비롯해 후원과 기부도 들어오고 있다. 뮤지션에게도 ‘소정의 사례비’가 지급된다. “참여하는 뮤지션들이 취지에 공감해 조건없이 선뜻 참여해줬으나, 저희의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신경 쓰고 싶었어요.” (이성수)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지원이다. 두 사람은 오랜 고민을 통해 “대관료 지원”이 공연장과 음악인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는 답을 얻었다. 현재 홍대 공연장의 대관료는 평균 150만~200만원 수준. 공연장 내 거리두기로 객석을 모두 채울 수 없는 데다, 음악인들은 대관료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윤 변호사는 “새로운 공연장을 만드는 전시 행정보다 지금은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라며 “적은 비용으로도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K팝을 연호하는 시대가 됐으나, 그 바탕엔 오랜 시간 자생해온 인디 음악신이 있었다. 윤 변호사는 “인디신과 홍대 소규모 공연장은 대중음악의 근간을 만들었다”며 “K팝과 슈퍼스타에게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 기반을 함께 다진 인디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싱어게인’(JTBC)의 29호, 30호 가수가 성장한 곳은 작은 무대였어요. 이곳이 사라지면 대중문화의 기반도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공연장과 뮤지션이 포기하고 떠나는 순간 다시 복구하기는 어려워져요. 망가지지 않게 버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윤종수) “홍대 공연장과 음악신의 규모는 K팝보다 작고, 글로벌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온 소중한 문화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이성수)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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