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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종 어머니의 저주, 세종의 회한 품은 ‘왕릉 가는 길’
‘新택리지’로 유명한 신정록 문화재위원 저술
‘전설의고향’ 같은 현덕왕후 얘기등 흥미진진
여인천하 문정왕후 死후 고독, 명당의 정석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방문 캠페인, 알찬 가이드
2020년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 영릉을 방문한 주한 외국인들이 경건한 표정을 제를 올리는 체험을 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경기도 안산에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신벌(神罰)’에 대한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알다시피, 단종은 작은아버지 수양(세조)의 쿠데타 때 피살된 비운의 왕이다.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자마자 숨져 안산 목내동 소릉에 묻힌다. 이후 세조가 단종을 살해하자 꿈속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를 꾸짖으며 “나도 너의 자식을 살려 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 밤 세조는 동궁을 잃었는데 동궁의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다. 다음 세자인 예종 또한 즉위한 지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격노한 세조는 “소릉을 파헤치라”며 사람을 보내었지만 능에서 여인의 곡성이 들려오는 바람에 모두가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

세조가 “개의치 말고 관을 꺼내라”고 엄명을 내려 관을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고약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도끼를 들고 관을 쪼개려 하자 관이 벌떡 일어서서 나왔다는 것이다.

세조는 관을 불살라 버리려고 했으나 별안간 소나기가 퍼부어 결국 바닷물에 집어 던지고 말았다. 던져진 관은 소릉 옆 바닷가에 떠밀려 닿았는데, 그 뒤 그곳에 우물이 생겨 ‘관우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관은 다시 물에 밀려 며칠을 표류하다가 양화 나루에 닿았고, 한 농부가 이를 발견해 밤중에 몰래 건져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그날 밤 농부의 꿈에 현덕왕후가 나타나 앞일을 일러 주었고 농부의 가세는 점점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종의 부모인 문종·현덕왕후는 지금 구리시 인창동 현릉에 묻혀있다.

여주 영릉에 있는 왕의 숲길엔 봄이 되면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가 만개한다. [궁능유적본부 제공]

문종의 아버지 세종대왕은 부인 소헌왕후와 여주 영릉(英陵)에 합장돼 있다. 조선 최초 왕-왕후의 합장릉이다. 왕후가 먼저 죽고 영릉을 조성한 다음, 세종이 같이 묻어달라고 유지를 남겼다.

시아버지(태종)한테 갖은 핍박, 멸문지화를 당하는 동안 지아비가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으니, 세종대왕으로선 죽어서 마음껏 금슬을 꽃피우고 싶었을 것이다. 외척을 유난히 싫어했던 태종은 자신의 재위시절에도 그토록 미워하던 큰아들 양녕(세종의 큰형)을 어릴 적 키워준 자기 처가(민씨) 일족을 처형하기도 했었다.

살아서는 선왕의 어두운 그림자가 세종-소헌 부부를 힘겹게 했지만 죽어서는 좋은 곳에 묻혔다. 영릉을 두고 풍수가들은 이름 그대로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땅에 피는 아름다운 꽃, 즉 명당 중의 명당이라 부른다.

풍수지리가들은 영릉의 형국을 모란꽃이 절반 정도 피어 있는 목단반개형(牧丹半開形), 봉황이 날개를 펴서 알을 품고 있는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 용이 조산(祖山)을 돌아본다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이라고도 한다. 지관들은 “이 능의 덕으로 조선 왕조의 국운이 100년 더 연장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신정록 여행가는 전한다.

태종의 아버지 이성계의 건원릉의 봉분에는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를 심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한 아버지를 위해 태종이 태조 이성계의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억새를 심은 이성계의 건원릉

‘신 택리지’로 유명한 문화사학자 신정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이 왕릉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짚어보는 책 ‘왕릉 가는 길(쌤앤파커스)’을 펴냈다.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릉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정했는데, 명당이란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 영험한 맥이 흐르다가 멈추는 곳을 말한다. 북쪽의 높은 산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그 좌우에 청룡과 백호가 둘러싼 듯한 지세를 택했다고 한다.

남쪽에 안산(案山)이 있으며, 묘역 안에 냇가(川])가 있어서 물이 동쪽으로 흘러 모이는 곳을 좋은 묏자리로 보았다. 그렇게 형성된 묘역 안의 명당에 지맥이 닿아서 생기가 집중되는 곳을 혈穴이라 부르고, 그 혈에 관을 묻고 봉분을 조성했다.

봉분은 대부분 산의 중간쯤에 자리 잡았는데, 능은 반드시 좌향을 중요시했다. 왕릉의 좌향은 대부분 북에서 남으로 향하고 있는데, 그 산세에 따라서 서향 내지는 북향을 취한 곳도 있다.

신정록의 왕릉가는 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방문 캠페인이 본격화하면 좋은 가이드가 되겠다.

조선 왕릉 길은 조선 최초의 왕릉 정릉에서부터 정조의 건릉까지 600㎞ 이어져 있다.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10여년 동안 능제 복원, 역사‧문화 환경 복원 등의 노력을 거쳐 지난해 가을 ‘조선 왕릉 순례길’이 개방됐다. 518년 순례길이다.

여행이 시작되면, 문화재청, 문화재재단, 궁능유적본부가 펼치지 못했던 유산방문캠페인이 본격화할 것이다. 가까운 서울의 선능, 태릉부터 파주 동구릉, 영월 장릉까지, 518년 동안 조선을 다스렸던 조선 왕조에는 27명의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 왕을 합쳐 42기의 능이 있고, 14기의 원과 64기의 묘가 현존하고 있다.

한국내 유네스코 세계유산 방문 길엔 다양한 한국문화 체험이 곁들여진다. 여주 영릉을 방문한뒤 여주 도자기 체험을 하고 있는 주한 외국인 [한국관광공사 제공]

왕릉을 따라 걷는 길목에는 “뭬이야!”로 알려진 여인천하 문정왕후가 지아비 곁에 묻히지 못했던 사연, 다스려진 때는 적고 혼란한 때가 많았던 문정왕후 남편 중종의 오락가락 통치권 얘기, 부국강병을 꾀하다 노론 독재세력에 의해 요절을 맞이한 효종-인선왕후의 한맺힌 사연, 영조~순종까지 조선말 왕실 대모(大母)인 숙빈 최씨의 정치 행보 뒷담이 놓여있고, 여행자들의 세계유산 탐방은 더욱 두툼해진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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