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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신년인터뷰 ①정갑영 前 연세대 총장] “노동규제 강할수록 실업 증가…관료사회 경직 규제만능 초래”
美, 백신확보 우위 ‘V자’ 경제반등 예상
韓, 백신 불확실성에 ‘V자’ 빛 안보여
1가구 1주택 주장, 사회주의 연상케 해
일자리 창출은 결국 기업이 해야 할 일
국가재정 고려 코로나 선별지원 바람직
불균형 해소엔 교육투자가 가장 효과적
바이든시대 무역환경은 다소 나아질듯
대북정책 등 외교 부문 기조변화 압력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신년 대담에서 백신(Vaccine) 도입 성과가 올해 경제의 V자 반등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한국은 백신 확보전에 뒤늦게 뛰어든 탓에 다른 나라들과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해묵 기자

대담 : 최상현 산업부장

정갑영(70) 전 연세대 총장은 새해 글로벌 경제의 키워드로 세 가지 ‘브이(V)’를 꼽았다. 각국의 백신 확보전쟁에서 비롯된 ‘백신 디바이드(Vaccine divide)’와 ‘백신 불확실성(Vaccine efficacy)’을 극복해야만 경제가 ‘V자 반등(V-recovery)’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신 확보전에 뒤늦게 뛰어든 한국의 경우 “빛이 보이지 않는다”며 백신 접종에 먼저 나선 나라들과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1가구 1주택’을 명문화한 법안 발의로 논란의 중심에 선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자유시장경제에서 있을 수 없는 발상”이라며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주택정책을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달 23일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 본사에서 2시간 가량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신년 대담에서 정 전 총장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 30~40점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각종 규제가 기업의 일자리 창출 의지를 꺾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노조편향적 노동정책이 대학생과 청년들을 취업절벽으로 내몰고 있다며 정부의 노동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정 전 총장과의 일문일답.

-코로나19의 재유행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올해 글로벌 경제는 어떤 흐름을 보일까.

▶올해 세 가지 ‘브이(V)’가 경제를 지배할 것이다. 하나는 ‘백신 디바이드(Vaccine divide)’다. 백신을 확보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백신 관련 산업과 아닌 산업 간의 격차 역시 존재할 것이다. 또 하나는 ‘백신 불확실성’이다. 백신의 약효가 얼마나 지속될 지, 백신의 안전성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백신 도입 이후 시나리오가 잘 전개된다면 경제는 ‘V자’ 형태의 반등을 보일 것이다.

-새해에 한국 경제는 백신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V자 반등을 그릴 수 있을까.

▶세 가지 모두 빛이 안 보인다. 미국은 코로나19 예방에는 실패했지만 백신 접종을 서두른 덕분에 올해 경제는 V자 형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국은 걱정된다. 저성장 속에 백신 디바이드로 양극화의 끝에 서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작년 8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각국의 백신 확보 경쟁을 다뤘는데 이미 그 때 미국과 일본, 브라질 등은 발빠르게 나선 상황이었다. 한국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걱정된다.

-코로나19 백신과 함께 부동산 정책 역시 새해 국내 경제의 최대 이슈 중 하나다. 정부가 그동안 24번에 걸쳐 부동산 정책을 내놨지만 ‘24전24패’라는 말이 나온다.

▶전문가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과거엔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 학회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부작용을 미리 파악한 뒤 정책이 나왔다. 지금은 전문가의 집단지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예상되는 부작용도 미리 파악 못하고 정책이 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현 부동산 정책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보나.

▶부동산 정책이 시장원리와 같이 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정부 주도 정책 때문에 부동산 왜곡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세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면서 전세매물이 안 나오다보니 공급부족을 야기했다.

공급이 일어나려면 시장에서 적절한 거래가 일어나야 하는데 양도소득세를 중과하다보니 고가 주택을 파는 대신 증여해버린다. 여기서 또 공급부족이 발생한다. 보유세를 올리는 건 맞지만 급격히 올린다고 수요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집에 대한 수요는 비탄력적이어서 세금을 부과하면 그대로 전가된다. 그러다보니 전세값, 임대료가 계속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을 비롯해 호텔을 개조해 공급을 늘리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급기야 1가구 1주택을 명문화한 법안도 발의됐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중과해 억제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과거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할 때 그 나라 관료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하러 갔었는데 구멍이 뻥뻥 뚫린 낡은 아파트들이 많이 보였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자 사회주의 주택정책의 결과다.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성격이다.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제한적이어야 한다.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경제가 선진화하면 집도 꾸미고 좋은 집 살려는 욕구는 당연히 있는 것이다. 그걸 억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부동산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단순히 ‘집을 짓는다’는 좁은 의미에 머물지 않고, 광의의 공급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서울에도 재건축, 재개발할 곳이 많다. 재건축, 재개발로 일시적으로 가격이 뛰면 다른 형태로 그걸 회수하면 된다. 가격 상승이 있더라도 그 기간만 극복하면 된다. 지금은 국지적, 파편적으로 여기 조금 저기 조금하는 식으로 규제하다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거래 관련 양도세도 완화해야 한다. 보유세는 사람들이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대응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올려야 한다. 무엇보다 전문가를 활용해서 정책 부작용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

-현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고 있지만 작년 3월부터 11월까지 취업자 수가 9개월 연속 감소해 IMF 위기 이후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30~40점 수준이다. 공공 일자리가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많은데 정부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관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일자리 창출은 기업이 해야 한다. 정부는 정책으로 그걸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규제 때문에 투자의욕이 떨어져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기업규제 3법에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기업에게 부담스러운 규제 법안이 단기간에 몰아치고 있는데.

▶과거 연세대 총장 시절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규제의 벽을 실감한 적이 있다. 당시 교내 백양로 지하에 공연장을 짓고도 관할구청이 근거 규정이 없다며 허가를 내주지 않아 세 달 동안 열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갔더니 국토교통부에 알아보라고 하더라. 국토부는 다시 교육부로 가라고 했다. 교육부에 이런 사정을 설명하자 ‘대학 내 공연장 설치 규정’을 신설해줬다. 그제서야 겨우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것말고도 총장을 하면서 규제로 인해 겪은 애로사항이 책 한 권을 쓸 만큼 많다. 그때 ‘기업하는 사람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왜 이렇게 규제가 많다고 생각하나.

▶정책을 담당하는 관료와 기관들이 너무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자칫 다칠까봐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조엘 모키어(Joel Mokyr) 교수가 쓴 ‘성장의 문화’라는 책을 보면 산업혁명이 왜 동양보다 서양에서 먼저 일어났는지 나온다. 동양은 새로운 것을 하면 이단아 취급을 하지만 서양은 새로운 혁신을 존중하며 거리낌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규제 정책에는 이러한 성장의 문화가 녹아들지 않았다. 이러한 시스템으로는 급변하는 산업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규제뿐만 아니라 정부의 노조편향적 노동정책으로 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계적으로 노동시장 규제가 강한 나라일수록 실업이 늘어난다. 유럽이 미국보다 노동시장 규제가 강하다보니 2차 대전 이후 유럽 실업률이 미국보다 낮아본 역사가 없다. 노동시장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존에 고용된 근로자 권익은 높아지지만 새로 창출되는 고용은 줄어든다. 사회에 나오는 대학생과 청년에겐 갈수록 취업절벽이 높아진다. 일자리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완전히 마련됐다면 모를까 지금 우리나라는 고용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노동정책을 유도해야 한다.

-새해 미국 바이든 정부의 출범으로 우리나라 외교통상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양면성이 있다. 바이든은 기본적으로 글로벌리즘을 주창한다.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지금보다 회복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무역 환경도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성장이 워낙 빨라 20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중국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핵심 부문에선 미중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 사이에서 여러 선택을 강요 받을 수 있다. 해외 교역을 많이 하는 기업들은 경우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어 걱정된다.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예상하나.

▶바이든의 등장으로 정부는 외교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인권을 존중한다. 바이든도 선거과정에서 김정은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북한에 대한 자세가 트럼프 정부 때보다 훨씬 강경해질 것이다. 우리 정부가 대북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그런 부분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동안 북한에 구애하며 공을 많이 들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원만한 경제협력과 교류가 이뤄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고 한·미·일 동맹이 굳건할 때 북한에 강력한 압박이 된다. 근데 두 개가 모두 깨졌다. 탄탄한 한·미·일 동맹관계 위에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2%로 전망하고 있다. 백신 확보를 둘러싼 불확실성에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을 5%대, 중국은 8~9%대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 2~3%로 본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선진국보다 높아야 정상인데 더 낮다. 정부가 내세운 3%도 높아보이지만 중국,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에 비해선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재정확장이 지속될 텐데 그만큼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가정에서도 빚 잔치할 땐 그 후폭풍을 모른다. 갚을 때 돼야 안다. 2~3년 후 우리나라 국가부채에 대한 우려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나타날 것이다. 국가 신용도와 연결되는 문제인데 우리나라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너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어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각 나라가 확장재정 정책을 펼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우려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건 맞다. 다만 정부의 지원은 어려운 계층에 한해 선택적,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렇지 않다. 나한테까지 통신비 2만원을 지원하는 건 넌센스다. 선후 순위가 없고, 인기영합적인 포퓰리즘 지출이 너무 많다. 무차별적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원이 집중돼야 하는 분야를 꼽아달라.

▶교육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2009년 구제금융을 통해 교육 부문에 엄청난 돈을 썼다. 특히 컴퓨터공학 교육에 집중했다. 그때부터 실업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공학 교육을 계속 했기 때문에 지금 미국이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모더나 백신도 미국 하버드대 교수들이 개발했다.

교육은 당장 현안인 계층 불균형과 소득격차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미래 신산업의 본산이다. 우리는 그런 교육에 대해 관심이 없다. 정부가 돈을 풀더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잠재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데 집중적으로 써야 한다. 그래야 몇 년 뒤 효과가 나타난다.

-그 밖에 정부가 새해에 시급히 수술해야 하는 정책이 있다면 꼽아달라.

▶일단 정부가 경제를 보는 시각부터 바꿨으면 한다. 기업의 잘못된 행태를 시정하는 건 좋은데 지금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처럼 기업 생태계를 훼손하는 정책들이 많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규제와 노사관계 그리고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세제부담을 수정해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경제활동에서 ‘빅브러더’ 역할을 하려해선 안 된다. 고용 창출과 수출, 생산활동 주체는 기업이다. 생산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야 한다. 지금 정부는 그 점에 있어 너무 소극적이다. 정리=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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