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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급 주당’ 허재 "방송은 새 활력소…술 먹을 시간이 없네요"
허재는 "방송일은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고 지금 나에게 활력소가 되어준다"고 말한다.

[헤럴드경제=김성진 기자]사람은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더라도 평소에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불현듯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다.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사람이 알고보니 헤비메탈 밴드에서 경추가 부러질만큼 헤드뱅잉을 즐기는 기타리스트였다든가, 아파트 동대표부터 동창회 총무까지 홍반장처럼 온 동네 대소사 다 거들고 나서는 넉살좋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 카모마일 차를 마시며 '나는 자연인이다'를 홀로 시청한다든지…. 너무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알다가도 모를 면모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

TV를 잘 보지는 않지만 유독 채널을 돌릴때마다 '아니 여기도 나오나'싶을 만큼 불쑥 불쑥 등장하는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고, 갑자기 준연예인처럼 열심히 방송활동을 하게된 계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문자를 보내고 한번 만나자고 했다. '지금 뭉찬 녹화있는데 ㅇㅇ일날 될 것 같다'는 답이 왔고 그의 스케줄이 비는 날 만남이 성사됐다.

'농구대통령' 허재.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스타 중 하나인 그는 지금 종횡무진 방송가를 휘젓고 다니는 '블루칩'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대식가 후배를 나무라는 꼰대 아저씨의 모습도, 낚시광답게 배를 타고 강태공이 되어있기도 했다(조황보다는 입심배틀이 더 화려했지만…). 난데없이 축구를 하고 있는가 하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난감해하기도 한다.

물론 스포츠스타 출신으로 방송가에 연착륙한 케이스는 제법 많다.

코미디프로를 거쳐 최고의 MC에 오른 씨름스타 강호동, 해설위원으로 주목받은 뒤 멀쩡한(?) 표정으로 능청스런 유머를 척척 던지는 축구스타 안정환, 논리정연하면서도 투덜대거나 쓴소리를 하는 컨셉이 돋보이는 농구스타 서장훈이 있다. 아재개그로 인기있는 이만기(씨름), 가공할 식욕으로 주목받은 현주엽(농구), 충청도식 어투가 매력인 이봉주(육상)도 있다. 최근에는 김연경(배구) 박세리(골프) 이상화(빙상) 등 여성스포츠스타도 각자의 매력을 방송에서 발산하고 있다.

방송일이라는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출연진과의 호흡도 좋아야하고, 때로는 '터지는 멘트'도 던질 수 있는 유머감각도 있어야하며, 망가질 각오도 해야하고, 수많은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둘러싼 압박감도 이겨야하는 어려운 일이 아닌가.

평생을 하기 싫은 건 하지않고(그렇게 알고 있다), 남의 통제 받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고, 짜여진 대로 움직이는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허재다. 그래서 의외다.

"뭐 이런 데서 인터뷰를 하지?"라고 먼저 잽을 던지며 등장한 그는 청바지에 니트셔츠의 수수한 차림새였다. 인터뷰 도중 잠시 짬이나면 뒷얘기를 물어보려 했던 매니저는 동행하지 않았다. 쉬라고 했단다. 혹시 비밀스런 일화를 차단하려는 깊은 수읽기는 아닌지 조금 의심스럽기는 했다.

▶방송?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것

고정은 물론이고 단발성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까지 포함하면 촬영일정이 상당히 많은데 어떻게 소화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했다.

"방송을 시작한지 1년7개월 정도 됐다. '뭉쳐야 찬다'가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축구도 그리 잘하지 못하면서 매번 '오늘 회식해'를 외치는 허재의 모습은 농구코트에 있을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었고 시청자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갔다.

허재는 "처음에 안정환이 감독을 맡고 레전드 선수들이 나오는 축구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나오라고 하더라. '농구선수가 무슨 축구를 하냐'며 완곡히 거절했다가 '시즌2를 농구로 하면 나가겠다'고 했다가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한창 방송이 많을 때는 뭉쳐야 찬다, 부러우면 지는거다, 자연스럽게, 사장님 귀는 당나귀, 도시어부 등에 나갔고, 히든싱어, 미운 우리 새끼, 냉장고를 부탁해, 라디오스타에도 출연했다."

방송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던 '뭉쳐야찬다'에 출연한 모습.

지루한걸 못견뎌하더니 녹화는 어떻게 참고 하느냐고 물었다.

“10시에 녹화를 시작한다면 1회 분량을 찍을 때 4,5시간 걸리고, 2회분량을 찍으면 새벽 1,2시에 끝날때도 있다. 그래서 요즘 술을 못먹는다. 선수시절에는 3시간만 집중하면 그 안에 승부가 나는데 이건 장소도 이동해야되고 분량을 뽑아야하기 때문에 만만치않더라. 술을 많이 줄였다.”

알려진대로 허재는 농구계의 대표적인 주당. 선수와 지도자시절 수많은 음주관련 일화를 남긴 애주가다. 스스로 술을 줄여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에겐 피를 토할만큼 어려운 결정이었을 거다.

“방송이 있다고 하면 술을 못먹는다. 인터뷰야 2시간이면 끝나지만 방송은 예상을 못한다. 6시에 끝난다고 해놓고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나는 당나귀, 도시어부, 뭉찬, 정글의 법칙처럼 대부분 현장에서 하는 리얼 프로그램이라 힘들다(웃음).”

매니저의 도움을 받게된 것도 이때문이다. 처음에는 자가운전을 하며 이동하고 귀가했는데 도저히 체력이 달려서 안되겠더라고.

앞서 말한 것 처럼 허재는 거침없고 솔직하며 할말을 하는 이미지의 소유자다. 기자가 처음 뭉찬을 봤을 때도 다른 출연자들에게 타박을 하고 투덜대는 '호통개그 혹은 버럭개그'의 컨셉이 먹혀 허재가중용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심판판정에 "이게 블락(블로킹)이야?"라고 항의하던 허재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피자 광고를 만들었을 정도 아닌가.

허재는 언젠가 농구계를 위해 일할 계기가 마련되면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다. 운동할 때는 칭찬에 인색하고 (선수들이) 못하는 부분에 대해 화를 냈다. 2011년 중국 기자회견(중국기자의 어이없는 질문에 화를 내며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던 사건)도 그렇고 '허재는 화만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들을 했는데, 뭉찬에서 드러난 어리버리한 모습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뭉찬 출연 당시 허재는 수비를 하다 뚫릴 것 같자 덜컥 볼을 손으로 잡거나 교체도 안했는데 벤치로 물러나는 등 돌발행동을 많이 했는데 이런 '허당끼'가 웃음포인트가 됐다.

축구도 체력이 많이 필요하고, 정글의 법칙 등 제법 힘써야하는 일이 많은데 계속 몸관리를 했는지 물었다. 허재는 그렇게 술을 마셔왔는데도 군살이 거의 없는 천부적인 몸을 타고났다.

“KCC 감독 11년, 대표팀 감독 2년반 하는 동안 거의 운동을 안했더니 이제 그 댓가를 치르는 것 같다. 예전에는 365일 술을 먹어도 끄떡 없었는데 이제는 이틀 연속 술 마시면 다음날 힘들어서 밥을 못먹는다. 국 먹을 때 숟가락이 떨리더라. 사흘연속 음주는 피하고 있다.”

요즘 방송이 왜 스포츠스타들을 찾을까.

“글쎄, 박세리의 매력, 김병현의 매력이 다 다르고…. 노련한 연예인과는 다른 순수한 면이나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경기 외적인 일상 생활이 궁금해서 그런건 아닐까."

▶방송은 인생 후반전에 새로운 활력소

정제되지않은 솔직한 멘트가 장점이자 단점인 허재. 방송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내가 좀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는 편이긴 한데 제작진이 특별히 주문하거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건 없다. 정 방송에 부적합하면 편집할테고 아니면 나를 자르지 않겠나(웃음). 대본이 있다고 해도 대본대로 안된다. 프롬프터 나오는거는 시야가 넓어야되겠더라 나는 아직 잘 못 찾아 읽는다."

야외에서 찍는 리얼프로그램과 스튜디오에 패널로 출연하는 프로그램 중 더 좋아하는게 있나.

"딱히 적성에 맞고 안맞고 안따진다. 주어진 상황에 적응을 잘하는 편인 것 같다. 운동만 하다가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라.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는 기분, 신기하고 재미도 있다. 젊어지는 기분도 든다. 지금 농구계를 떠나 있기 때문에 (농구쪽으로) 할수 있는 일은 이제 별로 없다. 지금 이런 방송생활이 활력소가 되고,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허재가 농구와 완전히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다.지난해 고양시에서 농구아카데미를 시작했는데 방송출연을 시작하면서 직접 운영은 못하지만 신경은 계속 쓰고 있다고 한다)

지도자에서 물러나니 시간도 많이 남고 한가하게 보내다가 마침 제안이 와서 별 욕심이나 계획없이 재미삼아 출연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적성에도 맞아 큰 어려움 없이 계속 출연하게 됐다는 것이다. 50년 넘게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분야지만 이곳에서 그의 삶에 신선한 자극을 얻고 있는 셈이다.

'방송신인'으로서 가장 힘든건 뭘까.

"재미있어서 하는거라 힘든 건 크게 못느낀다. 정글의 법칙이 맨땅에 헤딩하는거라 좀 힘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가 아닌 국내의 한 섬으로 갔는데 집지을 재료도 안주고 물만 준다. 또 리얼프로그램에 나가면 전에는 카메라 4,5대였던거 같은데 요즘은 50~60대는 되는것 같다. 스튜디오도 앞에 전부 카메라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허재는 이미 10대 때부터 전국구 스타였던 만큼 방송출연 경험은 풍부하다. 수많은 스포츠프로그램은 차치하더라도 '체험 삶의 현장'에서 연탄을 나르기도 했고, 인기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카메오로 출연도 했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와 초등학교때 짝꿍을 찾기도 했으며 감독시절 '무릎팍 도사'에도 나갔었다.

스포츠인 중에서는 방송이 낯설지 않은 편이었지만 현역이 아닌 지금 '방송인'으로 출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대부분 나보다 훨씬 젊은 출연자랑 프로그램을 많이 찍다보니 너무 나이가 많아 보일까봐 염색도 한다(허재는 원래 새치가 많아 감독시절에는 흰머리가 상당히 많았지만 염색은 하지 않았었다). 화장도 하고 지우는게 일이다."

이처럼 신세계에 발을 들인 허재의 모습은 가족에게도 적응이 필요해 보인다.

허재의 두 아들은 모두 프로농구 선수이다. 큰 아들 허웅은 동부, 작은 아들 허훈은 KT에서 뛰고 있다. 방송일이 많아지면서 아들들의 경기를 제대로 보기 어려운 상황일텐데 의외로 잘 챙긴다고 한다.

"프로팀 감독을 할 때도 그렇고 어지간한 애들 게임은 다 봤다. 녹화할 때도 짬이나면 틈틈이 휴대폰으로 본다. 경기장에 직접 가고 싶지만 부담가질까봐 안간다. 오늘도 둘이 맞대결하는 날인데…."

농구인 허재는 롤모델이자 존경받는 아빠였는데, 방송인 허재에 대해서는 두 아들이 뭐라고 할까.

"둘 다 처음에는 출연 하지말라고 했다. 허당같은 이미지로 나오는게 마음에 안들었다고 하더라. 와이프도 뭐하는 거냐고 핀잔을 줬다. 아들들 한창 운동하는데 신경쓰일까봐 걱정된 것 같았다. 지금은 술도 줄이고 건강에 도움되는 것 같으니 잘 하라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방송출연에 거부감이 많다. '자연스럽게' 녹화할 때도 아내가 안나온다고 했는데 녹화장소 근처에 유명한 절이 있으니 가자고 해서 겨우 나온 적이 있다(허재의 아내 이미수씨는 독실한 불자라고 한다)."

어지간한 프로그램은 출연섭외에 응하는 허재지만 집과 가족 모두를 공개해야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사양한다. 가족들도 원치 않고, 허재 본인도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모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가기 전에 집에서 짐 싸는 장면을 먼저 사전촬영할 때도 '집이 카메라에 잘 안비쳐지도록 저 구석에서 짐 싸라'고 했다고.

허재에게는 아픈 손가락이 있다.

대학과 실업팀 선수시절 한솥밥을 먹었고, 대표팀에서도 함께 활약했던 강동희 전 감독이다. "동희가 저지른 실수에 비해 너무 고통스럽게 사는 것 같아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우연히 같이 있는데 방송출연 제안이 왔다고 고민하길래 무조건 나가서 속에 있는 말을 하는게 좋겠다고 했고 나도 출연해주겠다고 했다. 다행히 방송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나도 언제 나가볼까 했는데 프로그램이 없어졌더라."

허재는 또 최근 넷플릭스에서 마이클 조던을 다룬 '라스트 찬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봤다며 '언젠가 그런걸 한번 찍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 모든 걸 오픈해야한다는게 좀 걸린다(웃음)".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제 그럼 농구와의 인연은 끝난건가.

“그건 아니다.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 인생을 바친 건 농구다. 그 분야에서 내가 할일이 있다고 판단될 때가 올 수 있다. 그때는 미련없이 방송을 떠날 것이다."

코트에 있든, TV화면 속에 있든 허재라는 존재는 가볍지않다. 방송인으로 신선한 제2의 인생을 즐기는 허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듯,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농구계로 돌아와 굵직한 일들을 해나간다 해도 놀랍지는 않을 것 같다.

withyj2@heraldcopr.com, 사진=이상섭 기자 bob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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