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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소득층 주택지원 30% 삭감하고, 중산층용 임대지원 대폭 늘린 정부[부동산360]
4억 임대보증금 감당할 중산층을 위해 기금 지원 대폭 늘려
주택사업자에 건설자금 지원, 세금 혜택 등 특혜 논란 불가피
정작 저소득층용 국민임대, 영구임대 지원금은 대폭 줄여 논란

지난 22일 매입임대주택 둘러보는 김현미 장관 [국토교통부 자료]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평균이 6억원이니까 7억원, 8억원도 있을 수 있다. 이 집이 4억5000만원인데, 6억원이나 7억원이면 얼마나 더 좋아지겠나. 2023년 이후면 공급 물량이 상당히 많아진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2일 서울 은평구 대조동의 한 ‘매입임대’ 다세대 주택단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전용면적 55~57㎡ 크기의 집에는 방 3개, 욕실 2개에 3베이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정부가 새로 공급하는 임대주택 품질이 이만 큼 좋다는 점을 강조하는 자리였다.

매입 임대주택은 정부가 주택사업자에게 건설자금을 저리로 지원하고, 택지공급 인센티브와 세제 혜택을 줘 새로 짓는 형식으로 공급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전세형 공공임대’ 공급 계획 중 가장 많은 4만4000가구 규모다. 서울 2만가구를 포함한 수도권 물량도 3만3000가구나 된다.

현장에 함께 있던 김흥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소득 요건이나 자산 요건 없이 중산층이나 일반 국민을 포용하겠다는 개념의 공공 전세”라면서 “일반 전세 수요를 흡수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파트 못지않은 품질의 새 주택이기 때문에 중산층에게도 인기가 높을 것이란 기대다.

서울 상도4동 공공임대주택. [헤럴드DB]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의 역사는 사실 길다. 5~10년 임대로 살다가 분양 받을 수 있는 ‘분양전환 공공임대’도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이었다. 당장은 자금 여력이 안돼 임대로 살지만, 살면서 집값을 분납하다가 나중에 분양 전환하는 형식이다. 김영삼 정부 때 5년 공공임대가 처음 도입됐다. 무주택자면 소득 기준 등 자격 제한도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10년 장기 공공임대 50만가구 공급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10년 장기 공공임대엔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도 있었다.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건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급한 장기전세주택, 일명 ‘시프트’였다. 주변 시세의 80% 보증금으로 20년까지 살 수 있었다. 강남 등 인기 좋은 지역에서도 공급돼 경쟁률이 수백대일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박근혜 정부가 공급한 ‘뉴스테이’도 중산층을 위한 공공임대 주택으로 주목받았다.

정부가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계획을 내놓으면 늘 두 가지 논란이 따라붙는다.

먼저 집을 살 능력이 충분한 중산층을 위해 굳이 정부가 주택도시기금 등을 동원해 지원할 필요가 있냐는 논란이다. 이번에도 불가피하다.

정부가 매입임대로 평균 6억원짜리 집을 사서 시세보다 싸게 내놓는다고 하자. 서울 연립주택 평균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인 73.8%(중위기준)를 적용하면 아무리 싸게 나와도 대략 4억원 이상 전세 보증금이 필요한 공공임대가 될 것이다. 4억원이면 경기도에선 아파트를 살 수 있다. 경기도 아파트값 중위가격은 3억9346만원이다. 4억원 이상 전세보증금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중산층에게 “30년간 그 집에서 사세요”라고 한다면 악담일까 덕담일까.

우리나라 전세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은 3년(3.0년)으로 자가(10.7년)는 물론 월세(3.2년) 보다 짧다. 전세는 집을 사기 위한 징검다리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중산층을 위한 매입임대에 정부는 10조6000억원이나 쓰기로 했다. 이중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정부 지원금은 6조8000억원이나 된다. 진짜 주택구입 능력이 없는 저소득계층에 들어가는 주거 지원 비용은 줄이고 있으면서 말이다. 내년 국임임대와 영구임대 주택에 쓰이는 주택도시기금은 2조44억원(출자 및 융자 포함)으로 올해(2조6442억원) 보다 31% 줄어든다.

두 번째는 민간사업자에 대한 특혜 논란이다. 단기간 공공임대 공급을 늘리기 위해 민간업자들에게 기금 지원, 세금 혜택 등 과도한 혜택을 준다는 비판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 공급됐던 뉴스테이에 대해 민간 건설사들의 이익만 키웠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민간사업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많다. 건설 자금을 기금을 동원해 1%대 금리로 지원한다. 민간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5% 수준의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공공택지 우선 공급 등의 인센티브도 준다. 토지 및 주택 취득세를 10% 감면해주는 등 각종 세제 혜택도 있고, 주차장 기준 완화 등의 사업성을 높이는 혜택도 있다.

예상가능하지만 단기간 무리하게 공급량을 늘리려다 보면 입지가 떨어지는 곳도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 변창흠 LH사장은 임대주택 공급 확대 계획을 설명하면서 “민간 사업자는 주택을 새로 지을 것인지 판단할 때 수요가 있을지 걱정한다”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건설하기만 하면, LH든 SH공사든 공공사업자가 사준다는 확신이 서게 되고, 또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경우 주차장이나 용적률을 완화하면 사업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했다. 민간 사업자들에게 적극 사업에 나서라는 신호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의 공공임대 정책이 사실상 중산층과 민간 사업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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