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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대수 “팬데믹 고통 뉴욕에서…한대 푹 찌르듯 곡이 찾아왔다”
4년만에 신촌 고시원으로 돌아온 ‘한국의 히피’
코로나 비극 노래한 ‘페인 페인 페인’ 등
신곡 5곡 등 10곡 담은 ‘15집’ 25일 발매
“52년 음악인생 정리하는 마지막 앨범”
2016년 딸 양호의 교육을 위해 뉴욕으로 향했던 한대수는 지난 4년간 미국에서 가정주부의 삶을 살았다. 양호 뒷바라지, 요리, 청소를 하다 보면 음악도 잠시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정영헌 뉴욕시립대학교 교수 제공]

‘고시원 록커’는 기타줄이 끊어져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커다란 침대 두 개와 책상 하나로 가득 차버린 공간. 그는 다시 신촌의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2016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이후 4년만. 한대수는 신촌에서 14년을 살았다. 2007년 이후 내내 고시원에서의 삶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마음 편한 내 공간”이자 “화폐가 덜 드는 곳”. 50년 전, 일찌감치 ‘자유’와 ‘평화’를 갈망하던 ‘한국의 히피’는 비좁은 공간에서 다시 새 삶을 노래했다. 때로는 고통( ‘페인 페인 페인(pain pain pain)’, 2020년 15집 앨범 수록곡)을, 때로는 환상( ‘멕시칸 와이프(Mexican Wife)’)을, 그러다 ‘행복의 나라’(1974년 데뷔 앨범 ‘멀고 먼 길’ 수록곡)도 찾았다. 한대수와 그의 아내 옥사나, 열세 살이 된 딸 양호는 노고산 기슭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여전했다. 그는 거친 탁성으로 껄껄 웃었다. “뉴욕에 있었다면 이렇게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도 못해요. 거긴 지금 전쟁이나 다름 없어. 후진국 뉴욕에서 선진국 서울에 오니 살 만하네요.” 오는 25일 15집 발매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한창인 한대수를 서울 신촌에서 만났다.

한대수는 일흔둘에 코로나19를 뚫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딸 양호의 교육을 위해 입시 지옥 한국을 떠났던 그는 “신촌이 너무 그립다”는 어린 딸의 이야기에 한국행을 결심했다. 두 달 전 입국해 2주간의 자가격리 기간을 보내며 ‘본업’도 찾았다. 이 역시 14집 ‘크렘 드 라 크렘(CREME DE LA CREME)’ 이후 4년 만이다.

뉴욕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그는 잠시 ‘음악’을 놓았다고 했다. “가정주부로 살았어. 양호 학교 보내고, 그 사이에 장 보러 가고, 집에 오면 숙제 봐주고, 요리하고, 청소하고…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더라고. 허허”

코로나19가 당도한 뉴욕은 ‘아수라장’이었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엉망이라는 것에 모두가 놀랐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료보험이 없어 너무 힘들어요. 코로나가 전 지구를 덮어버리면서 뉴욕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어요. 인류의 잘못이 만들어낸 감염병으로 우리 아이들이 너무 고통받고 있어요.” 팬데믹의 비극에서 그는 ‘페인 페인 페인’을 썼다. “베(토벤) 선생처럼 작곡하는 사람이 아닌데, 길을 걷던 중 한 대 푹 찌르듯이 곡이 찾아왔다”고 한다. 한대수에게 고통은 ‘창작의 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블루스록 안에서 아홉 번쯤 ‘페인 페인 페인’을 외치는 들끓는 목소리엔 감염병 시대의 단상이, 한대수만의 위로가 담겼다.

다시 노래를 하는 것도, 창작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해 폐허탈증으로 응급실에 두 번이나 실려갔다. “담배를 너무 오래 폈어요. 허파가 말라 비틀어져, 산소를 붙잡고 있지를 못한대. 담배도 끊고, 약도 먹으면서 현상 유지만 하고 있어요. 하늘 쳐다보면서 숨 쉬는 운동을 해줘야죠. 그 일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52년 음악 인생에서 ‘담배’없이 내놓는 첫 앨범인데, 그는 ‘마지막 앨범’이라고 했다. 체력도, 창작도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연주는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작곡은 힘들어요. 폴 매카트니도 10대부터 20대 후반까지 10년 사이에 나온 노래가 전부였어요. 위에 계신 분이 우리에게 영원한 걸 주지 않아요. 그걸 깨달았어.”

긴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앨범엔 ‘포크 록’의 대부로 군림한 한대수의 시간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페인 페인 페인’을 포함한 신곡 5곡과 5곡의 기존 곡이 어우러졌다.

자가격리 기간 중 ‘주부 스트레스’를 견디며 쓴 ‘멕시칸 와이프’, 마스크를 쓰지 않는 미국 사람들을 향한 ‘캠페인 송’인 ‘마스크를 쓰세요’, 9분 짜리 프리 재즈로 만든 ‘머니 허니(Money Honey)’가 실렸다. 1971년 20대에 쓴 ‘푸른 하늘’은 49년 만에 빛을 봤다. “해군 입대 전 작곡한 노래였어요. 그때 애인이 있었어. 날 잊고 결혼하라고, 우린 좋은 기억으로 남자고 했는데 3년 3개월을 기다리더라고요. 역시 ‘사랑은 위대해’ 그러면서 쓴 노래예요.(웃음)” 동요 같은 멜로디와 순한 노랫말을 독해진 마음으로 다시 부를 수가 없어 음반에는 실은 적이 없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돌고 돌아 길어올렸다. 1974년 발매된 ‘멀고 먼 길’에 수록된 ‘물 좀 주소’는 후배 뮤지션 최고은이 다시 불렀다.

열일 곱 한대수가 가장 ‘괴로운 때’에 작곡한 ‘행복의 나라로’도 실렸다. 그토록 그리웠던 아버지를 17년 만에 처음 만나고 돌아온 날 ‘희대의 명곡’이 나왔다. “뉴욕 롱아일랜드 이층 다락방에서 괴롭고 외로울 때 쓴 노래예요. 그 땐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 행복하고 싶은 마음을 말한 거예요.”

‘마지막’이라는 공언 앞에서 그는 아쉬움 대신 좋은 기억들을 풀어냈다. ‘위대한 음악가’들이 “마지막이니 참여하고 싶다”며 “화폐와 상관 없이 함께 해줬다”고 한다. “내가 오래 음악을 했다는 증명이구나 싶었어요. 희생 없이 목적을 이룰 수는 없어요. 이 앨범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어요. 우리의 삶도, 팬데믹 시대도 마찬가지예요.”

한대수는 자신의 지금을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때라고 했다. 나이테를 더해가는 길 위에서 그는 ‘행복의 나라’를 찾았을까. 또 다시 껄껄 웃는다.

“칠십 평생 영원한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순간의 행복을 만나면서 살아왔죠. 지속적인 행복은 우리의 꿈이고, 삶은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일 거예요. 달려가다 끝날 수도 있지만,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게 고마운 거지. 그걸 값지고 고귀하게 생각해야죠.”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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