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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김필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도 해야

최근 만난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그렇게 찾아가서 투자해 달라고 하소연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곳(기업, 연기금)들이 나중에 보니, 라임과 옵티머스 투자자 리스트에 올라 있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열불이 납니다.”

“은행 지점에서 90대 고령인 집안어르신에 권유해 거의 전 재산을 해외투자펀드 6곳에 넣어 놨더라고요. 이게 말이 됩니까.”

사모펀드 환매중단 파장이 깊고도 길다. 거액 손실로 수많은 투자자가 울고 있고, 판매 은행과 증권사들은 기관 제재 및 임직원 중징계 조치 여부에 떨고 있다. 아직 실사가 끝나지 않아 손실액이 확정되지 않은 펀드도 있으니, 투자자 손실이 얼마나 되고, 이에 따른 배상액은 얼마나 될지는 한참을 두고 봐야 한다. 기관 제재 및 임직원 중징계 조치도 지난주에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첫걸음을 뗐다. 이제 시작이니, 향후 소송 등까지 고려하면 이 역시 언제 마무리될지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안타깝다. 사실 주변에 펀드시장의 ‘ABC’도 모른 채 사모펀드에 뛰어든 투자자가 부지기수다. 이들은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만들고, 이를 은행·증권 등이 파는 구조도 모른다. 은행·증권이 파니, 은행·증권에서 펀드를 만들어 파는 줄 안다. 쉽게 말해 ‘라임’펀드, ‘옵티머스’펀드가 아니라 ‘신한은행’펀드, ‘NH증권’펀드로 알고 가입했을 거란 얘기다.

사모펀드와 공모펀드의 차이조차 모르고 발을 들인 투자자들도 많다.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공모펀드 시장까지 싸잡아서 된서리를 맞고 있는 이유다. 공모까지 사모 취급을 받는 판국에, 같은 사모펀드 내에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들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들과 한데 묶이는 것을 억울해하는 건 사소하게 보일 지경이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2015년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위원회가 시장을 키우겠다며 공급(사모펀드 운용사)과 수요(사모펀드 투자자)의 고삐를 모두 늦춘 게 화근이 됐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시장진입 허들이 낮아졌고(인가제에서 등록제, 최소자본금 60억원에서 10억원 등), 투자자의 사모펀드 가입요건 문턱도 낮아졌다(최소투자액 5억원에서 1억원).

난장판의 서막은 이렇게 열렸다. 이후 2019년까지 사모펀드 설정액은 200조원에서 412조원으로 배 이상 뛰었고, 전문사모운용사는 20개에서 217개로 10배 이상 증가하며 난립했다. 라임과 옵티머스는 이들 중 선두주자였다. 사모펀드 시장은 프로들의 싸움터다. 그런데 아마추어에게 “그렇게 위험하지 않고, 잘하면 프로들에게도 한방 먹일 수 있으니, 경기장에 오르라”고 하는 건 해도 너무 하는 거다.

감독당국의 방치하에 이 같은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애초부터 이런 난장판을 만든 게 더 잘못일까, 아니면 이런 난장판 운영을 똑바로 못한 게 더 잘못일까. 난장판을 만든 금융당국은 난장판 운영업체들 잘못이라며 몰아세우고 있다.

금융당국이 다시 고삐를 죄는 게 맞다. 운용사 진입 허들을 높이되, 간섭은 최소화해 운용사들이 수익률 진검승부를 벌이도록 하고, 투자자 가입요건 문턱은 높이되, ‘자기책임 투자원칙’을 엄격히 적용해 삼엄한 시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일지라도, 이거라도 빨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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