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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코로나 백신, 개발보다 어렵다 ‘접종’
트럼프 개발 속도전에 양산도 가속
한쪽에선 백신 거부 시위자 넘쳐나
안전성 내세워도 ‘뿌리깊은 음모론’
개인 자유 신봉하는 특유의 문화…
전국민 접종 필요성 강제화 주장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지난 7월 영유아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2015년 캘리포니아에서 학부모들이 홍역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AP]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놓고 속도전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 압력을 배제하라는 반대 진영의 대립이 팽팽하다. 그 사이 어쨌든 시간은 흘러 점차 백신 양산 가능성은 커졌다.

이제 백신이 개발만 되면 미국이 더 안전해질까? 거대 제약사가 최첨단 기술력을 앞세워 백신을 만드는 동시에 한쪽에선 절대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미국에서, 코로나19로부터의 해방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백신 거부 늘어나는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미국인 약 1만명을 대상으로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 희망 여부를 조사한 결과 51%가 맞겠다고 답했다. 이 말은 곧 절반(49%)은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의미다. 백신을 맞겠다는 비율은 불과 넉달 새 72%에서 21%포인트나 뚝 떨어졌다.

비슷한 시기 USA투데이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약 3분의 2가 백신이 처음 개발되더라도 맞지 않겠다고 답했다. 23%가량은 절대 백신을 맞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백신 개발 및 보급에 사활을 걸다시피하며 10월 말이면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던 트럼프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지는 여론조사다. 공들여 백신을 만들어봐야 절반 이상이 사용하지 않겠다면 헛수고일 뿐이다.

더군다나 퓨리서치에 따르면 백신 거부 비율은 그의 지지층인 공화당원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난다. 공화당원과 민주당원 모두 5월에 비해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의 증가폭은 22%포인트로 같다. 하지만 백신 거부 비율은 공화당원이 56%로 민주당원(42%)보다 높다.

[그래픽 디자인 : 이은경]

표면적으로는 ‘안전성’…그 뒤엔 뿌리 깊은 음모론

미국인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건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들 중 76%가 부작용 우려를 이유로 들었다. 72%는 백신 효능에 대해 더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 같은 불안감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서 내년 2분기 혹은 3분기에나 백신이 일반에 보급될 것이라고 말하자 곧장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연말까지 1억회분 이상의 백신이 보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질병관리 당국 수장이 전국민이 지켜보는 의회 청문회에서 한 발언을 별다른 근거 없이 흔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지지율은 45%로 반대(57%)에 크게 뒤져 있다. 이 격차는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초기인 3월 6%포인트에서 20%포인트 안팎으로 크게 벌어졌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뿌리 깊은, 음모론에 가까운 백신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비단 코로나19 백신뿐 아니라 백신 그 자체를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이미 2000년 퇴치 선언을 한 홍역이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크게 번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어린 자녀의 백신 접종을 거부한 부모들이 많다. 백신 성분이 자폐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짜 정보를 믿은 결과다.

케네스 루첸 보스턴대 생물의학공학과 교수는 최근 비즈니스인사이더 기고문에서 “미국은 코로나19는 물론 반과학적 생각도 대유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의 수석부사장인 크리스 잭슨은 NBC기고문에서 마스크 착용의 정치화로 인해 전세계 코로나19희생자의 4분의 1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꼬집으면서 “과학에 대한 미국인의 회의론은 이미 한 번 위험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하게 끝날지 아직 보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미국 특유의 문화도 백신 거부를 부추긴다.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랜드 폴 상원의원은 2015년 홍역 백신 접종에 대해 “아이는 국가가 아닌 부모의 소유”라며 백신 접종을 부모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50개주 모두 학생들에게 일부 백신을 접종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적인 이유는 물론 종교나 철학적인 이유로도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인디애나주의 한 남성은 USA투데이에 백신 접종을 “검토”는 하겠지만 정부가 강제하면 접종을 미루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나에게 강요를 한다면 그 배후에 뭔가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더 든다”고 말했다.

영업제한, 재택근무 등으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것 역시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불안감과 음모론을 더욱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관련 음모론이다. 그가 인류를 추적하는 마이크로칩을 이식하려 코로나19 사태를 일으켰으며 백신은 이를 위한 도구라는 주장이다. 지난 5월 유거브 여론조사에서 이를 믿는다고 답한 응답자가 28%에 달했다. 1억달러를 기부하는 등 코로나19 퇴치에 앞장서고 있는 게이츠는 “진실은 음모론처럼 자극적이거나 흥미롭진 않다”며 미국인들에게 성숙한 시민의식을 당부했다.

하지만 SNS업체와 정부의 대응은 음모론 집단이 가짜정보를 생산해 퍼뜨리는 속도와 양에 턱없이 못미친다. 프랜시스 콜린스 미 국립보권원(NIH) 원장은 “우리는 뒤처져 있다”며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디지털증오에 대응 센터(CCDH)’가 최근 900개 이상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의 코로나19 관련 음모론 등 부적절 게시글을 찾아내 업체에 알렸지만 95% 가량이 삭제되지 않는 등 별다른 조치를 받지 않았다.

매사추세츠 의과대의 킴벌리 피셔 부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사람들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확신할 수 없고 소셜미디어에는 오보가 많다”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의료계로 눈을 돌리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의무 접종에 이어 강제화 주장도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접종률이 떨어지면 효과를 볼 수 없다. 보건 전문가들은 백신 자체의 효능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맞느냐에 따라 백신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전국민적인 백신 접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데이비드 샐먼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백신이 3억3000만개라도 아무도 원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면서 “코로나19를 제대로 통제하려면 인구의 70~80%는 면역력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신의 효능 못지 못지 않게 당신이 꼭 백신을 맞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듯 접종 의사가 줄어들면서 이를 강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예방접종을 강제한 사례는 1901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21세 이상 모든 주민에게 천연두 예방접종을 의무화한게 유일하다. 당시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5달러, 현재 화폐 가치로는 150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했다.

반면 학생이나 군인, 의료 종사자 등에겐 백신 접종을 별다른 저항 없이 의무화할 수 있지만 전국민에게 강제하는 것은 더 큰 반발만 불러올 수 있으며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아서 캐플런 뉴욕대 의대 교수는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백신을 접종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백신 접종을 한 사람의 사회활동을 보장하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은 불이익을 보도록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백신 접종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힘을 얻고 있다.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자리에 입장하려면 백신 접종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 확인을 받도록 하는 식이다.

에미레이트항공은 두바이행 비행기 탑승객에게 코로나19 검진 결과 음성판정이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같은 방법이 백신 접종에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다.

도리트 루빈스타인 레이스 캘리포니아대 보건백신법학 교수는 CNN에 “가게 주인이 신발을 안 신었거나 옷을 안 걸친 손님을 받지 않을 수 있듯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을 합법적으로 출입 금지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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