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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산책] 인간실격

야구팬들이 즐겨찾는 한 사이트에 들러보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임박’에 대한 갑론을박이 제법 뜨거웠다. 어렵게 10% 제한입장이 이뤄졌고,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아 ‘30% 입장’으로 확대될 무렵 종교단체의 광화문집회가 평지풍파를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나 하나 괜찮다고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채 시내를 활보하는 것은 ‘보이지않는 흉기’를 휘두르며 다니는 것과 다름없다. 집회를 허가해준 재판부에도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이유다.

야구팬들이 ‘야구를 못 봐서 속상하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3단계가 선언되면 야구가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모두 올스톱된다. 누군가는 ‘작은 즐거움’을 위해 불편한 수칙을 지키며 돌아올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질병에 무지한 자들의 정치적 행태로 인해 의료진과 수많은 사람이 애써온 노력을 수포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허탈해진 것이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관중 재입장은커녕 시즌이 중단되고, 종국에는 시즌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광화문 집회 못지않게 야구팬들을 분노하게 만든 사건이 또 일어났다. 지난 24일 2020 시즌 프로야구 1차 지명이 치러졌다. 지금의 고교 3학년 선수 중 각 구단이 수년간 지켜본 유망주 팀의 미래로 선택하는 날이다. 이 과정에서 한 지방 구단의 선택을 받은 선수가 중학교 때 학교폭력을 자행했고, 이 때문에 전도유망했던 선수가 운동을 그만뒀다는 글이 피해자 가족에 의해 온라인에 게재되면서 많은 야구팬이 들끓고 있다.

해당 구단은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서 그런 학교폭력이 이뤄진 게 사실이며 ‘지명 선수의 부모가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했다고 한다. 스포츠계의 폭력, 특히 단체스포츠에서 동료 선후배나 지도자의 괴롭힘으로 비극적인 선택을 했던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불과 얼마 전 세상을 안타깝게 했던 고(故) 최숙현 선수의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로야구 역시 불과 2년 전에도 학교폭력이 커다란 이슈가 된 바 있다. 150㎞가 넘는 볼을 쉽게 던지는 모 선수가 수도권 팀에 지명을 받았지만 고교 시절 학교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후 협회와 팀 자체 징계가 내려지긴 했지만 그의 과오가 사라질 수는 없다.

이 사태 이후 선수들의 생활기록부를 반드시 살펴보는 경우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신중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연고팀은 선수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년간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팀 관계자가 사태를 전혀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법정까지 갔던 사건을 몰랐다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변명으로 보인다.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학교폭력, 특히 운동선수 간 폭력은 오랜 기간 ‘관행’처럼 받아들여져온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피해자들은 죽음을 떠올릴 만큼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실제로 아까운 생을 마감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피해자들을 만든 가해자가 ‘최고의 선수’자리에 오르고, 그런 가해자 선수에게 거액을 안겨주는 팀이 나오는 한 ‘학교폭력’은 절대 근절될 수 없다.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고, 설령 걸려도 ‘요식행위’ 같은 사과만 이뤄지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 잘하는 ‘올바른 사람’은 되기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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