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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공급망 재편 눈앞…첨단산업 강국 도약 절호의 기회”
실패 용인하는 R&D 문화 만들고 ‘퍼스트 무버형’ 모델로 전환…코로나發 환경변화 맞춘 ‘비대면 평가 시스템’ 구축 온힘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원장이 최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 있는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19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위기는 우리나라가 산업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상섭 기자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19로 촉발된 글로벌 공급망(GVC) 재편 위기는 우리나라가 산업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정양호 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원장은 최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 있는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GVC 대전환’에 잘 대비하면 우리나라가 투명하고 안전한 첨단산업의 세계공장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KEIT는 산업기술 연구개발(R&D) 지원 대표 전담기관으로 올해 예산지원 규모만 2조1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인공지능(AI), 시스템 반도체, 미래차, 로봇, 바이오 등 주요 첨단산업 분야에서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 등 신성장동력을 이끌어내는 기관이다.

행정고시 28회 출신인 정 원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정책관, 에너지자원실장 등을 두루 거친 산업과 에너지 정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관료다. 이론이 폭넓을 뿐만 아니라 정책을 기획하는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으로 첫 조달청장을 역임했고, 공모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KEIT 원장에 취임했다. 정 원장 취임 이후 KEIT는 출범 10년만에 공공기관 경영평가 ‘A등급’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정 원장은 과제만 관리하는 연구개발(R&D) 예산 집행기관에서 ‘컨설턴트’와 ‘조력자’ 역할까지 수행,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주도형 성장을 견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KEIT는 지난 10년간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소극적 역할을 해왔다”며 “앞으로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시대에 맞춰 기업, 대학, 연구소 등 외부 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리는 기획 능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격자형 연구개발에서 ‘퍼스트 무버형’으로= “우리나라도 이제는 남들이 만든 기술을 빠르게 카피해서 따라잡는 추격자(Fast Follower)형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남들이 만들지 못한 독보적 기술을 만들어내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형 모델로 전환할 시점이 됐습니다. 이를 위해 도전·창의적 연구개발 프로젝트인 알키미스트를 기획·수행하고 있습니다.”

연금술사를 뜻하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경제 파급효과가 큰 획기적인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중심으로 진행된 과거와 달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최소화하는 한편, 연구 과정에 무한대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개발자 창의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단순한 과제 수행에서 벗어나 R&D를 수행하는 기술자들에게 혁신과 창의적인 DNA를 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정 원장은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19 펜데믹(대유행), 보호무역주의 기조, 개도국들의 추격 등으로 연구개발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연구자들이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부담을 완화할 예정이다.

“연구자가 과감하게 창의·도전적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구비 집행의 자율성과 기술·시장 변화에 따른 유연한 연구 목표 및 참여기관 변경 등이 가능하도록 행정부담을 대폭 완화할 것입니다. 또 단위기술 위주의 연구개발 과제보다는 시스템 단위의 통합형 과제로 전환해 대형 연구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시스템도 개선할 방침입니다.”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사업화 이어달리기’=“연구개발자금 지원으로 끝나지 않고 시장에 연구결과가 나오기까지 관련기관과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관장과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시스템적으로 굴러가는 체계를 구축할 방침입니다.”

정 원장은 우리나라 공공 R&D 사업이 부처별로 지원 기관과 예산이 분리돼 있다 보니 기초연구 분야의 성과가 산업 분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원장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취임후 ‘사업화 이어달리기’를 구축했다.

‘사업화 이어달리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 사업으로 개발된 원천 기술을 산업부가 이어받아 실질적인 사업화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구축한 연구지원 시스템이다. 이 과정에는 조달과 자금지원 등 관련 기관들과도 협업이 이뤄진다. 이를 위해 ▷조달청(혁신제품 판로확보) ▷한국자산관리공사(경영정상화 자금지원) ▷신용보증기금(보증우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제조업지원 2800억 펀드조성) ▷기술보증기금(보증우대) 등 관련기관과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사업화 이어달리기’의 한 축은 정권과 기관장, 담당자가 바뀌어도 지속되는 시스템 구축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R&D 사업의 목표와 조직이 바뀌다보니 지속가능한 연구지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부가 ‘규제 철폐’ ,‘벤처 육성’, ‘혁신적 R&D’를 내걸었지만 실패한 이유가 바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든 조직을 새로 만들어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전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한 뒤 잘된 점은 이어받아야 발전할 수 있어요.”

정 원장이 조달청장(2016~2017년) 재직시 공공조달을 통해 산업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신산업과 신생 벤처기업을 위한 전용 쇼핑몰 ‘벤처나라’ 구축한 것도 ‘사업화 이어달리기’의 한 사례다. 정 원장 재임시 벤처나라를 구축한 후 정무경 현 조달청장이 바톤을 받아 정착까지 3년이 소요됐다.

벤처나라는 조달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던 중소기업에 참여 기회를 열어 주고 이들 기업의 성장을 끌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이다. 벤처나라를 통해 최근 1000억원가량 벤처제품이 구매됐다. 무엇보다 정 원장은 사무실 컴퓨터, TV, 기념품 등도 중소기업 제품 또는 KEIT 지원을 받아 개발한 제품을 사용하면서 이에 대한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코로나19발(發) 환경변화에 비대면 평가 시스템 도입=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문가 의존형 평가시스템에서 데이터기반 기획평가 관리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올해안으로 인공지능 기반의 디지털 평가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정 원장은 코로나19 사태 후 공고된 사업과제 접수 및 평가기간을 각각 2주일가량 연장했다. 또 산업 기술 R&D 온라인 전자 평가를 도입했다. 우선적으로 상반기 예산 지원이 시급한 소재·부품·장비 등의 계속 과제, 수행 기관 선정 과정에서 경쟁이 없는 단독 응모 과제 등에 온라인 시스템을 적용했다. 코로나19로 파생된 비대면 환경변화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겠다는 포석이다.

그는 또 코로나19 속에서도 지난 5월 청년 구직난 해소에 일조한다는 마음으로 예정된 채용 일정을 준수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실내 건물인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전국 최초로 대규모 채용시험을 치러 모범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당시 응시자 간 간격 3m 안전거리를 확보해 약 1100명의 응시자들이 무사히 채용시험을 봤다.

정 원장은 국내 기업의 일자리 90%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은 ‘청년고용의 핵심 축’이라고 강조하며, 연구개발 사업 강화로 중소·중견기업의 지구력을 키워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시스템 구축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우수기술연구센터(ATC) 성과교류회다. KEIT가 2003년부터 17년동안 진행해온 ATC 사업은 ‘중소·중견기업 체질개선’의 일환으로, 성과교류회를 통해 우수 기술인재를 원하는 중소·중견기업과 직업계고 학생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등 직업계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엔 전국 21개 직업계고에서 14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일본을 넘어 글로벌 소부장 강국으로 도약=“일본 수출규제 사태 이후 국내 주력산업 공급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100대 품목을 선정해 공급 차질이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KEIT는 올해 7032억원을 투입, 자립화에 시간이 다소 소요되는 69개 품목의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GVC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선정 100대 품목을 338품목으로 확대, 우리나라가 일본을 넘어 글로벌 소재·부품·장비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입니다.”

정 원장은 지난해 8월 발표한 ‘소부장 경쟁력강화 대책’이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 차원이었다면, 코로나19발 세계 공급망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소부장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초체력을 키우는 조력자 역할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를 위해 대(對)일본 핵심품목 100개에다 미국과 유럽, 중국, 인도, 대만, 아세안과 연관된 핵심품목까지 더해 공급망 관리 정책 대상 품목을 338개 이상으로 늘렸다. 기존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섬유 등 6대 분야뿐만 아니라 바이오, 환경·에너지, 로봇 등 신산업 분야까지 범위도 넓혔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과 관련해서도 산업기술에 집중, 연구개발을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일명 빅 3(Big 3)로 일컫는 미래차,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분야의 육성에 적극 나선다는 포부다.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은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코로나 이후 글로벌 경제 선도를 위한 국가발전전략으로 2025년까지 총 160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90만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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