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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산책] 증오의 바이러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문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언제 내 집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든다.

역대 최장의 장마와 코로나를 함께 겪으며 최악의 여름을 보내던 중 개인적으로 몹시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동남아에 거주하는 지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불과 한 달여 전에 같이 식사도 했고 장시간 통화도 했었는데…. 출국한 줄도 모르고 전화 한번 해야지 하던 차에 부음을 접하고 보니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열정적이고 활달한 분이 갑자기 무슨 일로? 꼬리를 무는 의문에 알 만한 사람들에게 다 연락을 취했다. 사후 검진에서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증상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현지 입국 이후 2주간의 격리 과정을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하자마자 현지 비서, 간호사 등에게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의 직접적인 이유는 기저질환이었던 듯하다. 몇년 전에 폐 수술을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잘 회복됐다고 들었던 터라 가족도 주변 사람들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아는 사람이 코로나에 걸린 최초의 사례인데 증상도 치료 과정도 없이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로 곧장 이어지고 말았다.

국내 감염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이대로 잘 관리해서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면 이 낯설고 짜증 나는 바이러스에서 해방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을 때쯤 우리의 방심을 틈타 바이러스의 2차 대유행의 씨앗이 뿌려진 모양이다. 광복절 전후로 교회, 커피전문점 등을 고리로 한 집단전파 상황을 목도하니 ‘K-방역’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구나 싶어 절망감까지 든다. 집-회사 똑딱이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 또한 답답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다시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하급수적인 확산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감염 재생산지수 2.83을 기록하고 있는 서울·수도권의 경우 인구밀집도를 고려하면 지난 2~3월의 대구·경북 사례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감염자를 찾아내고 감염 경로를 추적하며 격리, 치료하는 일이 방해를 받는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할지 상상하는 것조차 무섭다.

건강한 사람도 경우에 따라선 극심한 고통을 동반한다는 경험담이 나오고, 치료 이후에도 폐 손상이 남는다는 보고도 많다. 우리 주변에는 건강 상황과 면역력 조건이 취약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에겐 치료가 어렵지 않고 치사율도 낮은 바이러스라는 트럼프나 아베식 논리를 들이댈 수 없는 이유다. 감염 후 단 며칠 만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무서운 바이러스인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와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무증상 감염이 특히 문제다. 당장 증상이 없는데 확진이 나왔다고 조작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자신의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아무 증상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격리하라는 것이냐고 했던(그는 결국 확진을 받았다), 그 목사의 무지와 무모함이 그의 신도들에게 전염된 결과다.

검사를 거부하고 결과를 불신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퍼뜨리는 ‘의심과 증오의 바이러스’가 훨씬 더 위험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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