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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조현용 경희대 교수] 자꾸 집이 보인다
‘집’이라는 단어는 짓다와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인간이 무언가 건축물을 짓는다면 가장 기본은 집일 것입니다. 지붕이라는 단어도 집과 관련이 있는 어휘입니다. 집에 웅이 붙은 형태입니다. 한 지붕이라고 하면 같은 집이라는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한 지붕 아래 형제들이 모여 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로 다투기도 했지만 따뜻한 토닥임도 있었습니다.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옛 드라마는 주인집과 셋방의 이야기였지만 가족의 느낌이 나는 따뜻함이 있었습니다. 집이 다른 말과 합성이 되면 왠지 푸근한 느낌이 납니다. 집사람이 대표적이죠. 차별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차별적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집의 온기가 단어에서도 느껴집니다. ‘집밥’은 어떤가요. 밖에서 먹는 음식이 아무리 진수성찬이어도 우리가 그리워하는 음식은 따뜻한 집밥이 아닐까요. 김치찌개에 계란프라이, 구운 김이면 밥 한 그릇이 뚝딱이죠.

코로나19는 사람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게 하고 집에 머무르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도 자주 가지 않고, 직장도 재택근무가 많아지고, 다양한 모임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냅니다. 재택이라는 말이 예외가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된 겁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집에 머무르는 시간에 답답증이 생겨서 때로 폭발하거나 한없이 가라앉는 사람도 있습니다. 집은 안식처인데 안식만 하려니 힘이 드는 겁니다.

예전에는 집순이, 집돌이라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집에 박혀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집콕이라는 신조어나 일본어의 ‘히키코모리’와는 좀 다릅니다. 집이 편하고 좋은 사람이지,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닌 겁니다. 오히려 평상시에는 더 활발하게 활동을 하지만 쉬는 날이나 별일이 없는 날이면 집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집에 오래 있다 보니 사람의 관심이 집으로 향하게 됩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자꾸 눈이 밖을 향했다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눈이 집 안을 향합니다. 이건 뜻밖에 좋은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눈이 밖으로 향할 때 사람의 관심은 여행이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마음에는 발걸음도 가벼웠죠. 텔레비전에는 온통 여행이야기였습니다. 모르는 나라에 여행을 가기도 하고, 원로배우와 여행을 가고, 낯선 나라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래 머물다 보니 집 안 구석구석이 보입니다. 집안을 정리해 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겨났습니다. 우리 집도 정리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납니다. 다른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형편에 맞는 집, 하지만 지금보다는 좀 여유로운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도 인기가 높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에는 비싼 아파트는 나오지 않습니다. 마당이 있거나 경치가 좋고, 공기가 좋은 곳이 주 대상입니다.

집에 오래 있으면서, 집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집에 있는 물건도 집착이 되면 삶의 흉기가 됩니다. 어느 날인가에는 다 나의 흔적으로 남을 물건입니다. 누군가 치워야 하는 나의 집착인 셈입니다. 집이 또 다른 활동을 준비하는 쉼과 생각의 공간이기 바랍니다. 조금 더 비어 있는 모습으로 나를 오롯이 맞이하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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