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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보는 AI’로 심혈관질환 진단·치료 큰그림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
CAG 기반 막힌 혈관 수치판독 SW
식약처 2등급 인허가 신청 계획
6개월 임상후 이르면 올해 시장 진출
초음파 기반 진단SW도 2년내 출시
작년 존슨앤드존슨 ‘퀵파이어챌린지’ 우승
해외 헬스케어기업들 테스트 잇단 문의
국내 의료기술 상향 평준화 자부심
송교석 메디픽셀 대표가 인공지능(AI) 기반의 심혈관질환 진단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정교한 진단을 바탕으로 보다 정확한 처치를 가능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섭 기자

지난 2015년 국내에서 메르스(중동 호흡기증후군)가 급속도로 확산된 배경에 대해 외신들은 과밀한 응급실, 한국 특유의 간병문화와 더불어 ‘닥터쇼핑(의료쇼핑)’을 들었다. 간병문화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도입하며 바꾸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환자가 여러 병원에서 검사받고 최종 치료병원을 정하는 닥터쇼핑은 여전하다.

닥터쇼핑은 상급병원으로 환자가 몰려 중증환자를 세심하게 돌보기 어렵게 한다. 하급병원에는 의료자원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낳는다. 창업 4년 차에 접어든 메디픽셀(대표 송교석)은 이 문제를 ‘환자보는 인공지능(AI)’이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줄곧 IT쪽에 있다 보니 제품을 빨리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의료쪽 들어오면서 이 분야는 느리게 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걸 실감했습니다. 신중해야 하고, 거쳐야하는 과정이 많아요. 제품 개발한지 3년 3개월 됐는데 하나가 완성됐어요. 이제 시작입니다.”

LG전자, 안랩 등에서 줄곧 개발자로 지내온 메디픽셀 송교석 대표는 현장에서 흔히 말하는 ‘선수’다. 베테랑 개발자로, 매번 단기간 내에 제품을 내놨던 그가 예기치 못하게 긴 호흡을 견뎌야 했던 분야는 의료다. 그가 의료 분야에 발을 들인 계기는 오로지 AI.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보며 머신러닝의 발전에 놀란 그는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AI를 독학했다.

“부채의식이랄까,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어요. 카네기멜론대학에서 공부할 때 한국무역협회 장학금을 받았으니, 사회에 공헌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제 전공 연구실 바로 옆이 머신러닝 연구실이었는데, 그때는 AI 암흑기라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이후 알파고를 보면서 바로 옆에서 저런 연구를 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다는게 부끄러웠고 충격이었습니다.”

알파고의 활약에 놀란 그는 8개월간 ‘자발적 백수’로 지내며 AI를 독학했다. 40대에 부양 가족까지 있는 이에게 기한없는 백수 생활은 부담이었을 터. 실업 상태에 종지부를 찍을 계기는 우연히 다가왔다.

“AI로 뭘 해야할지 고민이 깊었는데 운명처럼 다가온 게 2017년 1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의료 빅데이터 분석 경진대회를 했어요. 국내에서 처음 열린, 인공지능으로 의료데이터를 분석하는 경진대회였습니다. 소식을 듣고 보니 마감 기한까지 딱 4주 남았어요. 한 달 동안 제 방에 틀어박혀 폐암 데이터를 보고 AI가 양성, 악성을 분류하도록 하는데 매달렸어요. 마지막에 정확도가 93.3% 정도 나왔습니다.”

입상으로 가능성을 보인 송 대표에게 의사들이 먼저 ‘아이디어 민원’을 넣기 시작했다. “같이 연구해보지 않겠냐”, “AI로 이런 것도 가능하냐” 등의 의견을 들으며 송 대표의 창업계획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경진대회 이력을 살려 폐암 쪽으로 창업을 계획했어요. 그런데 폐암 분야는 이미 진출 기업이 많고, 기술 수준도 상당히 정점에 달했습니다. 1년만에 폐암쪽은 접고 미개척 분야를 고려해 심혈관질환으로 가기로 했어요. 심혈관질환은 아직 ‘비어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메디픽셀은 심혈관질환의 진단 영역과 치료영역 모두를 겨냥하며 큰 그림을 짜고 있다. 기존 심혈관질환 진단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혈관조영영상(CAG)으로 혈관 내 막힌 부분이 있는지를 판독하거나 ▷막힌 것으로 의심되는 혈관 전후의 압력을 재는 관상동맥내 압력측정술(FFR)을 활용하는 것 ▷혈관 내 초음파(IVUS)로 정확하게 병변의 길이(막힌 부위 길이)를 재는 것 등이다. 여기에 병변 부위를 입체적으로 재확인하기 위해 컴퓨터 단층촬영(CT)를 찍기도 한다.

메디픽셀의 첫 제품은 CAG 기반으로 막힌 혈관을 판독하는 소프트웨어다. 첫 제품은 개발을 완료해 국내 식약처에 2등급의 인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인허가가 나오면 바로 6개월여간 임상에 들어가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 초에는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두번째 제품으로 기획 중인 것은 혈관내 초음파(IVUS) 기반의 진단 소프트웨어로, 첫 제품 출시 이후 2년여 안에는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제품을 완성하는 데에는 처음부터 송 대표와 긴밀하게 소통했던 전문의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기존 진단은 혈관이 얼마나 막혔는지 등이 정량화되지 않습니다. 문진표에도 50~70% 정도 막혔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나옵니다. 반면 AI는 29.3% 막혔다는 식으로 수치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수술을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할지 의사가 판단 내리는 것을 도와줍니다. 어느 정도 굵기, 길이의 스텐트를 넣으면 좋을지 바로 시뮬레이션해 볼 수 없겠냐는 의견이 있어 2개월 전에 소프트웨어에 해당 기능을 보강했어요.”

치료 영역에서는 AI와 더불어 로봇 기술도 함께 동원된다. 머신러닝 기술 중 강화학습을 통해 훈련된 AI가 심혈관 모형에서 병변까지 찾아가는 실험을 지난해 끝냈다. 올해 하반기 동물실험을 할 예정이고, 이후 임상을 계획 중이다. 임상까지 마치면 AI가 로봇을 제어해서 병변 위치까지 자동 네비게이션(안내)하는 기술이 시장에 나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헬스케어기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존슨앤드존슨은 지난해 유망 바이오의료 기업을 발굴하는 퀵파이어챌린지(Quick Fire Challenge)에서 메디픽셀을 우승팀으로 꼽았고, 이후 지속적으로 프로젝트의 흐름을 문의해 오고 있다. 다른 굴지의 헬스케어 기업들도 소프트웨어를 테스트 해볼 수 있겠느냐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여차하면 미국 FDA 인증, 유럽 CE 인증 등 글로벌 진출의 과정이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들의 지원으로 물 흐르듯 순항할 수도 있는 상황. 송 대표는 국내 의료 기술의 영토 확장보다 의료 기술 상향표준화에 의의를 뒀다.

“명의라 불리는 숙련의들은 굳이 AI가 없어도 진단, 치료를 잘 합니다. 그러나 숙련의가 아니더라도 AI가 진단, 치료방향 제시 등에서 정확한 정보를 주면 의사들은 고도의 판단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의료 기술이 상향 평준화 되는 것이죠.”

의료 기술 상향 평준화로 환자들의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도 메디픽셀이 사회적 기여라 자부하는 대목이다.

“심혈관질환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IVUS나 FFR을 쓰면 검사비가 건당 150만원은 들어갑니다. 여기에 스텐트 시술까지 하면 총 치료비로 600만원은 감당해야 합니다. 이걸 소프트웨어로 처리하면 검사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의료 시스템이 서울보다 열악하다는 수도권, 지방에서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고, 굳이 모든 환자들이 몇 달씩 대기하면서 서울의 대형병원만 고집하지 않아도 됩니다.”

AI와 로봇이 합작해 병변을 치료하는 영역은 담췌관 연구로도 확대할 수 있다. 담췌관 중 막힌 부분의 미세한 틈에 와이어로 풍선을 넣고 부풀려 담석이나 협착 부위를 빼내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응용 분야가 많지만 심혈관질환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혁신을 불러올 것이란 게 송 대표의 기대다.

“심혈관 질환 쪽에서 AI 활용이 현격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이 분야 내가 다 하고 싶다. 여기에서는 내가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혈관질환만 해도 혁신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시간이 문제죠. 메디픽셀 두뇌풀도 더 늘려야겠고,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눈에도 백발이 성성한 송 대표의 눈이 꿈에 부푼 어린 아이처럼 빛났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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