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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천만 좋을 줄 알았더니, 괴산엔 역사 유적도 가득

  • 기사입력 2020-07-1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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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함영훈 여행·문화재 선임기자] 화양, 선유, 갈론, 쌍곡계곡, 달천(괴강) 등을 갖춘 괴산엔 청정 생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천경개 좋으면 인물들이 몰리듯 자연을 사랑하는 문인, 예술인, 정신문화 지도자들이 모여 숱한 문화재와 유적을 빚어냈다. 달천은 한강 발원지인 태백 검룡소와 함께, 남한강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줄기이다.

국가 명승인 화양구곡의 송시열 유적 암서재

화양구곡은 2014년 국가명승 명승 제110호로 지정됐다. 속리산국립공원 내 3km 화양천 줄기에 9개 절경이 잘 보존돼 있으며, 우암 송시열과 수제자인 권상하가 많은 문화재를 자연과 조화롭게 만들었다.

하늘을 들어올린 경천벽(擎天壁), 구름을 드리운 운영담(雲影潭)에, 우암의 흔적이 남은 읍궁암(泣弓巖), 금사담(金沙潭) 암서재가 잇고, 첨성대(瞻星臺), 능운대(凌雲臺), 와룡암(臥龍巖), 학소대(鶴巢臺)가 따르며, 대미는 쉼터처럼 넓은 반석의 파곶(巴串)이 장식한다.

괴산의 군목은 미백과 주름개선의 효능을 가진, 궁녀들의 아름다운 부채라는 뜻의 미선나무이다. 송덕, 율지, 추점마을의 군락지가 천연기념물이다.

괴산의 ‘괴’자는 느티나무를 뜻하는데, 800살을 훨씬 넘은 오가리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 382호로 지정돼 있다. 우령마을 한 가운데 서 있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는 그 모습이 마치 정자같다 하여 삼괴정(三槐亭)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1000년 넘은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고려 성종때 괴산 읍내리 성안에 연못을 파고 주변에 심었던 은행나무 중 아직 살아남은 딱 한 그루도 천연기념물인데 1000살이 넘었다. 연풍의 적석리 입석마을의 400년된 소나무도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금강송 방계의 적송이다.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433호)은 통일신라때의 것으로, 아이같은 외모가 친근감을 더한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주름, 다리부분의 옷주름이 잘 표현돼 있는데, 루블 박물관 여신 석상의 시스루 주름처럼 정교하다.

괴산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433)의 운문, 연꽃, 동물조각이 선명한 대좌 중대석 [문화재청 제공]

괴산 연풍면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보물 97호)은 높이가 12m나 되는 큰 암석을 우묵하게 파고, 두 불상을 나란히 배치한 마애불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예라고 학계는 평가한다. 둥근 얼굴에 가늘고 긴 눈, 넓적한 입 등 얼굴 전반에 미소가 번지고 있어 완강하면서도 한결 자비로운 느낌을 준다.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은 보물97호이다. [문화재청 제공]

보안사 삼층석탑(보물 1299호)는 1단의 기단(基檀)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들고 뭉툭하게 표현된 점이나, 기단이 완전하지 않고 간략하게 표현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보안사 삼층석탑 [문화재청 제공]

봉학사지 오층석탑은 지방문화재이다.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되며, 일본 침략때 쓰러졌던 것을 1967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워놓았다.

국가지정 사적인 미륵산성은 화양동 남쪽에 있는 낙영산과 성암부락 동쪽에 있는 도명산 중턱을 둘러싼 성터로 ‘도명산성’이라고도 한다. 현재 남아있는 벽은 길이 700m에 높이가 약 2m이다. 성 안에서 신라 토기조각과 고려 전기의 기와조각이 발견됐다. 4가지 공법이 동원돼 지형과 용도에 따른 변화무쌍한 괴산사람들의 축성기술을 보여주고 있으며, 성안의 정상부근 바위에 도명산 마애불이 음각되어 있고 문터, 건물터 8곳, 성 안팎으로 물을 통과시키는 장치인 수문터, 우물터 4곳이 남아 있다.

지방문화재인 평강전씨효열각 7효자와 1열녀가 난 평강전씨 자손들의 효심을 칭송하는 문화재이다. 이 중 전우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1605년에 감찰이 되어서는 명나라와의 담판을 통해 그들이 무리하게 요구한 군량미를 탕감하는 공을 세웠다.

지방문화재 취묵당은 1662년(현종3년)에 백곡 김득신이 만년에 세운 독서재(讀書齋)이다.

송시열 유적은 매우 많다. 송시열이 양자로 들인 후손의 후손이 대한제국 시절 매국노 송병준이라는 점이 찜찜하다. 송시열은 양반특권의 제한, 노비에 대한 가혹행위 억제 등 평등사상과 북벌주의에서는 고산 윤선도와 비슷해 처음엔 친하게 지냈지만 나중엔 대립했다.

화양구곡에 있는 송시열 유적 숭삼문과 사당 [문화재청 제공]

괴산에는 송시열 묘, 청나라 건국시기 명나라 마지막 황제와의 우정을 약속한 만동묘, 같은 경내 있는 숭삼문과 사당, 송시열 학파가 세운 이 일대 서원들의 중심지 화양서원지와 후학들과 토론하던 화양계곡변 암서재, 후손인 송병일 고택 등이 있다.

송시열은 살아생전 숱한 집권정당 교체 속에 힘겨웠지만, 말년에 자신이 거두로 있던 노론이 200년 가량 장기집권하는 바람에 죽어서도 명성과 자취를 보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론의 독재 속에 나라가 부패해지고 경제가 무너졌으며, 마침내 일본 침략을 받아 송병준, 이완용 등 노론 잔당이 일제와 결탁까지 했다는 점에서, 그가 생전에 가졌던 ‘참 정치’의 뜻이 크게 훼손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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