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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잘 될거야” 이순간이라 더 보석같은 위로
24주년 ‘브로드웨이 42번가’ 전수경·오소연
전수경, 최다 출연·최다 배역 ‘살아있는 역사’
“마흔부터 맡은 메기역할 육십까진 해야죠”
오소연, 올해 벌써 세번째 여주인공 ‘페기’역
“그저 그런 페기로 남기싫어 ‘독사’처럼 연습”
“뮤지컬은 어른위한 동화…쇼는 계속 돼야죠”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메기 존스 역의 전수경은 시골에 갓 상경한 페기 소여(오소연)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본다. 오디션을 보지 못한 페기에게 “오늘은 운이 나빴던 것 뿐”이라며 잘 될 거라고 말하는 메기의 메시지는 두 배우가 관객에게 돌려주고 싶은 대사이기도 하다. 이상섭 기자

분장실 배우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우리 공연 못 하는 거야? 그럼 월세는 어떻게 해?”, “당장 내일부터 뭐 먹고 살아?”

‘타닥타닥타다닥’… 잘게 쪼갠 리듬 위로 얹어진 발의 예술.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라지면, 화려한 조명이 꺼진다. 무대 뒤로 돌아선 배우들은 탭슈즈를 벗으며, ‘오늘의 생계’를 근심한다.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쇼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한 장면. 공연은 코로나19를 관통하고 있는 무대 위 배우들의 이야기와 닮았다.

배우 전수경은 상견례 자리를 떠올렸다. “한 친구가 가족을 살린 공연이라고 했어요. 두 아이의 아빠이고, 가장이에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달간 실업자 생활을 했었죠.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한다는 것이 일상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보석같은 시간이 됐어요.”

1996년 초연, 올해로 24주년을 맞은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배우들이 전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다. 시골에서 상경한 배우 지망생의 성공 스토리. 신나는 탭댄스, 화려한 의상,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와 노래가 더해지니 지루할 틈이 없다.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인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전수경(54), 오소연(35)을 만났다.

▶ 첫 만남…‘최다’의 기록·‘산 역사’ 전수경, 세 번째 여주인공 오소연=최다 출연, 최다 배역. 배우 전수경은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살아있는 역사다. 전수경이 지금껏 세 배역을 거쳤다. 극 중 한 물 간 톱배우인 도로시 브록, 앙상블 다이앤, 현재 연기 중인 제작자 메기 존스다. 제작사에 따르면 “춤을 너무 잘 춰 초연 당시 도로시 브록과 앙상블 다이앤 역할을 동시에 연기”한 최초의 배우다.

“서른 한 살에 도로시를 시작했어요.” 그것도 기록이었다. 역대 최연소 도로시 브록이었다. “일찍 시작한 만큼 졸업도 빨랐어요. 마흔부터 메기 역을 하기 시작해 지금 50대 중반이 됐어요. 더 갈 역할은 없더라고요. 이걸로 육십까진 해야죠. 무릎이 아무리 아파도 최대한 올리면서…(웃음)” (전수경)

2017년 페기 소여 역을 처음 연기한 오소연은 올해로 세 번째 여주인공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탭댄스가 중요한 작품인 만큼 페기를 거친 배우들은 누구 하나 몸이 성하지 않다고 한다. 발톱이 빠지고, 발바닥이 퉁퉁 붓는다. “탭댄스를 해본 적이 없어 너무 힘들게 시작했죠. 온몸에 파스를 칭칭 감았었죠. 처음엔 아파도 병원엘 가지 않았어요.” (오소연) “제가 독사라고 불러요. 사실 그렇게 연습을 안 하면 페기를 할 수가 없어요.” (전수경)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탭댄스. “탭댄스는 발로 하는 리듬 악기예요. 발로 잘 추다가 소리 하나 놓치는 건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삐끗해 음정을 빠뜨리는 것과 같아요.”(전수경) 그만큼 배우들의 연습 기간도 길다. 사전 연습, 개인 연습을 포함해 무려 3~4개월을 작품에 쏟는다.

“더이상 연습하면 다칠 거 같을 때 멈췄어요.”(오소연) “독사예요.”(전수경) “(웃음) 이렇게 역사적인 작품에 탑승한 것 자체가 영광이라,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역사를 함께 하면서 그저 그런 페기 소여로 남고 심지 않았고, 저도 나중에 선배님처럼 전에는 페기했는데 지금은 도로시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소연) 덕분에 비오는 날 온몸이 쑤시는 건 기본. 특히나 올해는 마스크를 낀 채 연습을 하다 보니 두 배로 힘든 날들이었다.

▶ 뮤지컬 배우 1세대 전수경, 전수경 보고 꿈 키운 오소연=뮤지컬 배우 1세대인 전수경에게도, 어느덧 15년차가 된 오소연에게도 꿈을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생소하던 시절 TV 특선영화로 방영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반한 전수경은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학교에서 몇 명이 모여 처음으로 뮤지컬을 올렸어요. 그땐 노래를 잘 하지 않은 애들과 모여 있으니 군계일학이라고 했죠.(웃음)” 이후 ‘캣츠’로 뮤지컬 배우 전수경의 시대가 시작됐다. “오디션을 보면 운 좋게 붙었어요. 뮤지컬로 밥벌이를 한 1세대, 뮤지컬의 아스팔트를 깔기 시작한 세대가 된 거죠.” (전수경)

꼬마 시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사랑했던 오소연은 매일 밤 한국어 더빙 버전을 틀어놓고 잠에 들었다. “벨을 너무 사랑해서 그 작품만 봤는데, 당시 벨이 전수경 선배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너무 소름 돋았어요.”(오소연) 막연히 키운 뮤지컬 배우의 꿈은 1996년 열두살이 되던 해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리지널 팀의 내한공연 오디션에 합격해 코제트 역에 함께 하며 펼쳐보게 됐다.

배우의 길을 걸으며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전수경은 2010년 갑상선암 수술 경험을 떠올렸다. “노래를 하는 직업인데 예전의 기량이 안 나오고, 내 목소리를 흉내내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었어요. 다시 무대에 복귀할 때도 많이 두려웠어요.” 그때 도움이 된 건 동료들이었다. 지금도 같은 작품에 출연 중인 동료 배우 최정원은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정원이가 ‘언니, 노래는 우리가 할게. 언니는 빛나는 연기가 있잖아. 할 수 있는 것만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 위로가 힘이 됐어요. 배우가 한 가지 매력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건 아니니 난 한 가지를 잃었지만, 다른 배우가 가지지 못한 오락적 요소로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버틴 힘이었어요.” (전수경)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힘이 있다. 코로나 시국과 맞물리며 희망을 찾기 어려운 때에 온통 선한 사람들이 등장해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넨다. “운이 나빴을 뿐이야. 결국 잘 될거야.” (메기 존스)

“뮤지컬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예요.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희망을 주고, 네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충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죠. 쇼는 계속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연장을 어느 곳보다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희망을 드리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전수경)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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