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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북한의 경한중미(輕韓重美) 전략

  • 기사입력 2020-07-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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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에 해마다 외국군 고위급 장교들이 1년간 연수하러 온다. 이 중 인도와 파키스탄 장교들과 대화하다 보면 핵 보유국의 자존감이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몇 년 전인가, 이 중 한 명이 필자에게 ‘한국은 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냐’고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핵무기를 보유하면 국방태세 강화에 큰 도움이 되고 굳이 다른 동맹국에 안보를 의존할 필요도 없는데 한국은 왜 핵무장을 추진하지 않냐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마당에 국제적인 명분도 있지 않냐고 첨언했다. 그가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하지는 못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새삼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의 군인들이 갖는 자존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북한의 행태를 보면 2017년까지 6차례 핵실험을 행하며 수소탄까지 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장 국가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대외 정책에도 이를 보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핵탄두와 운반 수단으로써 미사일 능력을 강화하면서 북한은 군 지휘구조를 변화시켜 전략군사령부를 육·해·공군과 동일한 위상으로 격상시켰고, 냉전기 소련처럼 핵 선제 타격도 불사한다는 군사전략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런 북한이 이제는 핵전력 우위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해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강압 전략을 구사하는 징후를 보이는 것은 아닐까. 마치 파키스탄 등이 그러하듯 미-중 간 전략적 경쟁 속에서 자체 핵무장 강화를 바탕으로 국제적 자존감을 높이면서 인접 국가와의 대립에서도 우위를 점하려는 대외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해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리와 세 차례 정상회담을 하고 북·미 정상회담도 두 차례 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일련의 합의를 남겼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 등 실질적인 성과가 없다고 판단되자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이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구실삼아 일련의 담화 등을 통해 9·19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시사하고, 대남사업을 대적 사업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남북이 합의해 설치한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조치 등은 한국을 대화 상대로 존중한다면 행할 수 없는 강압 전략의 발현이 아닌가 싶다.

국가는 자신의 강점이나 특성을 살려 대내적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대외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한국이 경제발전이나 K-방역 실적을 바탕으로 G11 국가회의에 초대받은 것을 자부하듯, 경제력이나 외교력 등 지표에서 자부할 만한 수준이 아닌 북한은 세계 9번째의 실질적 핵능력 보유국가가 된 실적을 대내외적으로 최대한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핵전력 보유에 대한 자신감으로 한국을 경시하고 미국과 핵협상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려는 ‘경한중미(輕韓重美)’의 대외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김정은 위원장이 주관한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에서 군사행동을 보류한다는 결정이 공표됐지만, 김여정 제1부부장이 한국 지도자에 대해 폭언에 다름없는 메시지를 낸 것은 대한민국을 수단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 이외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한반도 비핵화 합의에서 뒷걸음질치면서 오히려 대남 강압 전략으로 전환하는 북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북한이 자신들의 국력을 결집해 개발한 핵능력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점, 그리고 그들의 강점인 핵전력을 대내외 전략에 활용해 최대의 국가이익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6·25전쟁 기념사에서 재천명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자주국방 태세와 동맹 체제 등 우리의 강점을 살려 북한에 대응하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평화적 방법에 의해서만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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