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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가 푹 빠진 완주. 자연을 훔친 놀이터 [함영훈의 멋·맛·쉼]
제이홉 “낭자~고택에서 나와 함께…” 1인 드라마
고산에선 BTS 돌다리샷 따라하기, 특제 김부각도
RM 밤별 다시 보는곳, 자연인문학-로컬푸드 1번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완주?, 거기 알지. 많이 들어봤어. 근데, 뭐가 있더라?”

완주가 대한민국 ‘청정 로컬푸드의 1번지’라는 건 알지만, 그 익숙한 이름이 불려도 뭔가 확 떠오르지 않는다는 국민이 좀 있다. “전주 옆이잖아. 위성도시인가?”

그러나 BTS 열혈팬이라면 완주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안다. 비록 코로나때문에 여행계획을 세웠다가 미뤘을 지언정.

세계적인 팝스타, BTS는 휴가와 촬영을 겸한 서머패키지 네 번째 나라로, 두바이, 팔라완, 사이판에 이어 한국을 택했다. 그것도, 대한민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시·군·구 중에서도 완주를 찜한다.

한국을 빛내며 숨가쁘게 달려온 이 젊은이들은 작년 여름, 신나는 표정으로 여행 버스에 올라, “완주(完州)로, 완주(完走)!”를 외쳤다.

오성한옥마을을 찾은 BTS

오성한옥마을, 비비낙안, 위봉 산성·폭포, 오성제 둑방길, 고산창포마을 돌다리 등 그들이 완주한 곳에는 완주 매력 재발견 ‘BTS순례행진’이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가로막았다. 그 사이 완주는 지구촌 남녀노소 아미(A.R.M.Y)들의 입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반도 모양의 대아호(湖)에 비친 신록이 푸르름을 더하고, 순백의 긴 광목 나부끼듯 위봉폭포의 교태가 아찔하다. 고산 마을 어르신 장인의 기름솥엔 마마무 화사의 눈이 더 커질 ‘김부각’이 익어 가고 있었다.

넓게 이 고을 전체를 부르는 이름, 온주·완주·전주는 모두, ‘완전하다’, ‘포괄한다’, ‘둥글다’, 혹은 ‘숫자 100(百)’을 뜻하며, 수천년 한 몸이었다.

백제 1대왕 온조는 온주(완주+전주) 지역 원산(圓山=완산)성을 장악해 마한제국 계승자라는 기치를 올린 시조라는 뜻이고, ‘온’은 백제의 ‘100’을 가르킨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자연 청정 생태-로컬푸드 지역’과 ‘도시화-산업화된 구역’을 분리하느라 각각 완주와 전주로 갈렸다고 박성일 군수는 설명한다.

한반도 모양의 완주 대아호는 대한민국 식량안보의 최전선 호남평야의 젖줄이다. 영월군 한반도면은 산이 한반도인데, 완주 대아호는 물이 한반도이다.

▶자연을 훔친 오송한옥촌= BTS와 그들의 스태프,매니저는 왜 완주을 택했고, 그들은 ‘완주 완주’를 하고 난 뒤, 왜 완주에 푹 빠졌을까.

‘생활 속 거리두기’가 정착 단계에 접어든 5월 중순, 만경강 발원지의 청정옥수로 빚어낸 화심두부로 배를 채운 뒤 BTS ‘따라쟁이’ 여행길에 나서, 전북마음사랑병원과 전북체육고, 송광사를 지나 소양면 비탈계곡에 이르니, 경사면에 차곡차곡 착상한 기와집 23채, 오성 한옥마을이 반긴다.

마을의 중심은 ‘우리들의 정원’이라는 뜻의 아원(我園)고택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오촌댁 처럼 정읍고택 등을 분해한뒤 이곳에서 조립, 이건(移建)한 것이다. 1층은 때마침 이중희 작가의 특별전이 열리던 갤러리인데, 벽과 벽이 만나 꺾이는 지점의 바깥 풍경이 보이도록 한 점은 안도 타다오의 기법과 흡사하다.

갤러리의 미닫이 지붕은 2층 고택의 앞마당. 마당처럼 넓은 네모 그릇에 물을 가득 채워 앞의 종남산과 산수 조화를 이루게 했다.

오송 한옥 창문에 비친 종남산

환경디자인을 전공한 전해갑 대표는 대뜸 “주인은 종남산”이라고 말한다. 툇마루에 앉으면 종남산과 물 마당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모든 방의 창문은 풍경화를 담은 액자이다. 환경심리학자 로저 울리히는 자연 풍경이 보이는 창문이 있을 때 병이 더 잘 낫는다 점을 실증했다. 앞서 추상화가 몬드리안은 정방형 황금분할의 미학적 우수성을 구현했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 울리히와 몬드리안의 ‘건강 미학’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해갑이 자네, 자연을 훔쳤구만.” 건축학개론 몇 권이나 썼을 동학들의 질투 어린 호평도 있었다.

▶제이홉 “낭자~ 이 고택에서 나와 함께...”= BTS멤버들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풍경, 분위기, 냄새까지 좋다면서 “이곳에 살고 싶엉~” 콧소리를 낸다. 기분이 업된 제이홉은 “너무 좋구려. 낭자, 나와 함께 하지 않겠오”라며 1인극을 펼친다. 다양한 건강 로컬푸드 흡입, 청정 공기를 마시는 숲 산책, 별이 빛나는 밤 하늘 구경을 마치면, 또 부꾸미 간식이 기다린다.

오성제 호수 둑방길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BTS

오성한옥마을에서 위봉 쪽으로 가는 길에 잠시 옆길로 새면, BTS 멤버들이 단체 사진을 찍던 오성제 호수 둑방길을 만난다. 둑방 한가운데 소나무가 주인공이다. 생김새가 영화 ‘엽기적 그녀’의 산기슭 소나무를 닮았는데, 둑방 가운데에 서서 BTS 따라쟁이 20~60대의 발길을 모조리 붙잡는다.

▶영화에 나올법한 위봉산성= 봉황을 지킨다는 뜻의 위봉산성은 조선 태조의 위폐를 임시 피신시키는 기능 치곤, 장대하다. 16㎞길이에 넓이가 무려 3m, 유일하게 현존하는 서문에는 망루가 부서지면서 구멍이 뚫렸는데, 이곳 인생샷 포인트에서 BTS도 우정샷을 남겼다. 아래쪽 아치형 성문에서 위쪽 성벽을 거니는 벗들을 찍으면 더 멋지다.

정국이 “영화에 나올법한 곳”이라고 감탄하자, 제이홉은 “그안에 BTS가 있었으니까...”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리더 RM남준은 성벽 돌틈을 뚫고 핀 민들레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생명의 의지에 감탄한다.

위봉산성
위봉폭포(완주군청 제공)

산성 아래, 권삼득 명창이 득음했다는 위봉폭포의 물줄기는 비틀리고 쉬었다가 다시 꼬여 60m를 2단 낙하한다. ‘광목을 널어 놓은 듯 하다’는 시어를 낳은 완산 8경 중 하나이다. 비 갠 직후 탐방이 더 멋진 곳이다.

▶한반도 호수와 고산 돌다리, 김부각= 위봉폭포수와 여러 지류 옥수를 모은 대아호는 대한민국 식량안보의 1등공신 호남평야의 젖줄이다. 하늘에서 보면 한반도 지도를 닮았다. 20㎞의 호변 드라이브코스에서 감상하는 아침 물안개는 선계인 듯, 몽환적이고, 낮엔 술 취한 이태백이 빠질듯, 병풍 같은 기암절벽과 신록이 호수에 드리운다. 물은 다시 곡창지대를 휘감아 적시러 300리길을 떠난다.

BTS가 비틀즈 처럼 사진찍은 돌다리의 고산창포마을에 가면, 단오제로 유명한 강릉의 처자들이 부러워할 창포헤어테라피, 창포염색, 창포비누만들기를 할 수 있다. 고산 김부각은 완주시니어클럽 어르신 음식 장인들이 품질 좋은 서천 마량진 김에 완주 청정 로컬푸드로 육수를 만든 뒤 찹쌀풀을 입혀 튀겨낸다.

BTS 따라쟁이, 중년 여행객들
술테마박물관 입구

▶술이 앗아간 것 보다, 내가 얻은게 더 많다= 완주남쪽 구이저수지 옆에는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이 있다. 주정뱅이 아저씨 조각상, ‘음주의 세계’로 이끄는 레드카펫 계단, ‘쏘맥말이샘에서 발원한 완주 나이야 가라 폭포’ 시(詩) 판넬이 여행자를 맞는다. 방송인 최불암 선생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은성’ 컨셉트의 대포집을 지나면, 약주,맥주,와인,증류주,위스키 등 세계 술 관련 유물 5만 여점과 술의 역사, 술의 정치학에 대한 이야기가 4개층 4374㎡ 박물관에 가득하다.

우리 술에도 깃든 약식동원(藥食同原:음식이 곧 약이다) 철학, 넬슨 제독의 피가 섞인 ‘럼주’와 넬슨에게 패하기 전까지 나폴레옹이 전투 승리때 마다 마시던 ‘모에샹동’ 이야기,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의 건배주였던 백두산들쭉술, 국회의사당 해태상 밑에 묻혔다가 2075년 다시 공개될 해태 노블와인 ‘타임캡술’, “술이 내게서 앗아간 것 보다, 내가 술로 부터 얻은 것이 많다”던 영국 처칠 수상의 애주 ‘마티니’ 스토리 등 맨정신 관람만 해도 취하는 곳이다.

이곳에선 술빚기 강좌와 실습이 꾸준히 이어진다. BTS멤버 제이홉과 슈가는 다른 곳에서 가양주 만들기 체험을 했다. 둘은 호기심과 성취감을 버무려 손수 빚은 술의 이름을 “호옷주”라고 칭하며 즐거워했다. 술박물관이 있는 이유는 호남에서 완주 물이 가장 좋기 때문이란다.

수탈창고에서 탈바꿈한 삼례책마을

완주엔 빼놓으면 안될 곳이 너무 많다. 국내 식물계의 종마목장 같은 곳으로 수재목(종자목)을 키워내고, 국내 최대규모 금랑화 군락를 갖고 있는 대아수목원, 어린이 모험가들을 위한 심신발달형 모험놀이 시설로 클라이밍을 비롯해 스크린골프, 스크린테니스, 농구, 미니풋살 등을 즐길 수 있는 놀토피아도 있다.

86만㎡ 부지에 10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청정 공기를 내뿜는 상관 공기마을 편백나무숲, 10여 가지 한약재를 달인 물로 황토 흙을 빚어 만든 토속한증막의 모악산 구이안덕마을도 완주의 대표 건강아이콘이다.

나눔과 사랑을 의미하는 우산 작품이 삼례문화예술촌의 한 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만경강의 노을,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에= BTS는 삼례 만경강변 비비낙안(飛飛落雁)에도 들른다. ‘날아가던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인데, 바삐 살아왔던 BTS멤버들도 쉬어갔다. RM은 빙수를 받아들고 섞는 동안 완주의 수북한 인심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다고 했다.

강변 언덕엔 정자가 서있고, 옛 철교위엔 열차 객실 4량으로 카페와 공방, 갤러리를 차린 예술열차가 365일 정차해 있다. 비비정과 예술열차에 노을이 깃들면, 형언할 어휘를 찾지 못할 풍경이 연출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한 마지막 길목, 동학농민군이 서울로 진격한 곳이라 더욱 뜻깊다.

비비정과 예술열차가 어우러진 만경강 해질녘 풍경

완주의 밤이 찾아왔다. BTS 리더 RM남준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열살 무렵 밤 별 쳐다보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었다. 남들이 정해놓은 것을 쫓으면 될 뿐, 꿈이 부질없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을 사랑하면서 자기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됐고, 스타가 되었다. 나는 누구일까를 다시 생각해볼 무렵, BTS는 완주를 찾았다. 그리고 청정 완주에서, 밤 별들을 다시 보며 마음을 다잡고, 키웠으리라.

정국은 “돌 밟히는 소리, 벌레소리, 개구리 소리 조차 좋았어”라고 했고, 태형은 “저는 컴백합니다”라고 약속했다. BTS가 정을 두고 간 그 자리에, 불청객이 떠나고, 아미들의 본격적인 침공이 임박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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