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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답 없는 통합당…‘국민밉상’ 딱지 뗄 능력도, 의지도 안보인다
총선 참패후 전열 재정비는 커녕 자중지란
‘김종인 비대위’ 놓고 더욱 더 혼돈만 가중
선거 패배후 반성과 성찰없이 내부 총질만
선거때의 ‘국민밉상’ 이미지 고착화 분위기
얼핏 바둑과 한때 ‘밉상’이었던 커제 오버랩
“커제는 실력이라도 있지, 통합당은 영…”
미래통합당 전국위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된 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택으로 귀가한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오른쪽)이 자신을 기다리던 심재철 대표 권한대행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

4·15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 선거가 끝난지 2주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오늘날 통합당의 현주소를 규정한 단어 중 하나가 ‘밉상’이었다. 통합당이 언제부터인가 ‘국민 밉상당’이 됐기에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철저히 외면했다는 것이다.

남들이 얘기한 게 아니다. 통합당 쪽에서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선거 지원을 했던 유승민 통합당 의원이 이 얘길 꺼냈다. 유 의원은 지난 23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이번 총선 패배를 복기하면서 “국민이 보기에 우리가 미워서 진 것 아니겠는가. 우리를 보고 궤멸, 폭망, 몰락 등 말을 하는데 (제가 볼 때는)자멸이란 표현이 제일 정확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문재인 정부가)평등·정의, 이건 잘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거짓과 위선이라고 보면서도 통합당은 안찍었는데, 그 정도로 우리가 밉상이 됐다”고 했다. 문재인정부 심판론이 완전히 뒤덮일 정도로 통합당이 밉상당으로 됐다는 뜻이다. 부산 사상구에서 승리한 장제원 의원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그는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180석이라는 역대급 승리를 안겨준 국민들은 민주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통합당이 싫어 야당을 심판한 것”이라며 “(통합당은)‘중도층으로부터 미움받는 정당’, ‘우리 지지층에게는 걱정을 드리는 정당’이 돼버렸다”고 했다. 그 역시 통합당이 ‘밉상 정당’으로 전락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 ‘밉상론’은 민주당 쪽에서도 거론됐다. 이근형 전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원장은 총선 후 선거 뒷얘기를 하면서 서울 격전지에서 붙었던 통합당 모 후보를 겨냥해 “그곳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지역이라고 보지 않았다. 선거에 떨어진 분한테 이런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우리가 분석하기론 그 분이 소위 ‘국민 밉상’이 돼 있더라”고 했다. 어찌보면 통합당 쪽으로선 매우 기분 나쁜 말이지만, 유 의원이나 장 의원 역시 앞서 대체로 이런 전체적인 분위기를 인정한 것을 보면 통합당의 참담한 현실을 짐작케 한다.

사실 이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조선일보가 총선 후 메트릭스리서치에 의뢰해 총선 투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총선 사후조사’를 했는데, 지역구에서 여당 후보를 찍은 이들은 ‘정부가 코로나 사태 대응을 잘해서’(32%)란 점을 후보 선택 이유로 가장 많이 꼽았다. 하지만 ‘막말 논란으로 야당이 싫어서’(21%), ‘야당 대표하는 인물들이 싫어서’(12%), ‘박근혜정부 탄핵과 관련해 야당이 싫어서’(10%) 등으로 답한 이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이렇듯 ‘그냥 싫었다’는 식의 답이 43%에 달했던 것이다. 탄핵정부에 대한 무책임과 무반성, 20대 국회에서의 반대를 위한 반대 일변도, 선거 내내 불거진 막말 내지 망언 논란 등에 유권자가 ‘통합당=밉상당’으로 낙인 찍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통합당으로선 절망적인 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조사에서 ‘2년 뒤 대선에서도 이번에 투표한 정당을 계속 지지하겠는가’라고 물었더니 ‘다른 정당으로 바꿀 수 있다’(49%)는 답은 ‘계속 지지하겠다’(45%)는 답보다 다소 높게 나왔다. 총선 패배후 당을 추스리고, 밉상당 이미지를 벗는 와신상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통합당에도 미래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통합당의 뼈를 깎는 자성과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식의 전열 정비가 성공한다면 역전의 시간은 다시 올수 있다는 것을 엿보이게 한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총선이 2주나 지났지만, 통합당 쪽에서 선거 참패를 극복하고 반전을 도모할 출발점인 통렬한 반성이나 목숨 건 환골탈태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선거 내내 보여줬던 자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밉상당’ 모습만 반복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28일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자유청년연맹 회원들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를 반대하며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

내가 보기엔 총선 패배후 위기극복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일단 통합당은 이번 표심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현실을 직시하고, 처절한 반성부터 내놨어야 했다. 일부 통합당 인사들의 자성 메시지는 나왔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총선 참패에 대한 세밀한 원인 진단과 함께 당 전체가 통렬한 반성일기를 내놓고, 국민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특단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물론 대책 마련에 나서긴 했다. 그렇지만 비대위를 구성하느냐,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느냐 갑론을박에 휩싸인채 2주를 낭비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 늦게 뛰어들었다고 해도, 패배의 책임이 없을 수 없는 김종인 통합당 전 선대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모시느니 마느니 하는 논란과 함께 무소속 당선으로 생존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섣부른 대권론과 김 전 선대위원장에 대한 공세, 그리고 당내 럭비공식의 조율되지 못한 발언 등과 겹쳐 통합당은 자중지란만 연출한 것이다. 이러니 선거 때 이상으로 민심의 싸늘한 눈총을 받고 있는 것이다.

통합당 쪽에선 김 전 선대위원장을 죽은 이도 살린다는 화타(華佗)로 여기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놓고 벌이는 통합당의 시끌벅적함 역시 민심에 그다지 감흥을 주는 것 같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비대위원장 제의와 조건부 수락, 당 지도부의 늦은 밤 자택 방문과 읍소, 심재철 권한대행의 90도 인사…. 이거 어디서 계속 봐온 장면 아닌가. 너무 올드하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미래통합당은 전날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의결했지만 ‘임기 4개월 짜리’라 오히려 더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 관계자는 “총선 패배후 국민에게 비쳐지는 첫 모습이 당을 추스리는 게 아니라, 자리싸움으로 인식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다른 통합당 관계자는 “김 전 선대위원장이 능력이 있는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직업이 비대위원장’이라는 세간의 조롱처럼 여기저기 왔다갔다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당 해체 불사 등 원점부터 시작해야 할 우리 당에 도움될지 회의적”이라며 “이런 잡음이 계속되는데 국민들이 ‘미운털’을 빼주겠는가”라고 했다.

여기서 바둑 얘기를 꺼내본다. 요즘 유튜브 바둑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이가 바로 커제다. 천부적 재기와 집요함, 타고난 승부사적 기질를 갖춘 중국 프로기사 커제는 요즘들어 좀 힘이 빠져 보이긴 하지만, 몇년전까지만 해도 1인자 프로 기사였고, 최근에도 녹슬지 않는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커제는 우리 쪽에서 보면 ‘국민 밉상’이었다는 것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커제에 해당될 것이다. 커제는 천재기사였지만, 그 거친 입으로 수많은 사고(?)도 쳤다. 웬만한 바둑팬이라는 다 안다. 박정환 9단과의 ‘월드바둑챔피언십 2019’ 결승전때 막판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자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뭐라 욕 같은 것을 내뱉었고, 앞서 박정환 프로와의 ‘2019 CCTV 하세배 한중일 바둑쟁탈전’에선 중대 실수를 하자 바둑돌까지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던 커제의 모습을. 프로 바둑기사가 욕을 하거나 바둑알을 던지는 행위는 무례함을 더해 신성시되는 바둑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레드카드 이상을 받을 일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커제는 한때의 라이벌이었던 이세돌 프로와의 대국 전에 이세돌이 “우승 확률이 5대 5”라고 겸손하게 말하자, “이세돌이 나를 이길 확률은 50%가 아닌 5%”라고 하기도 했다. 이런 비매너, 무례함이 ‘커제 대명사’로 여겨지면서 한국팬은 커제를 ‘국민 밉상’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4·15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준표 후보가 개표 결과 당선이 확실시된 지난 16일 새벽,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선거캠프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하지만 커제는 실력면에선 ‘월드 베스트’였다. 승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입방정으로 자주 도마위에 오르면서 우리에겐 미운털이 박혔지만, 실력 하나는 세계 최고인 것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우리나라 프로 바둑기사들의 맞상대로 커제가 단연 인기가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커제는 최근 한국기사들과 하루에 3번씩의 온라인 대국도 마다않는 일정을 보내고 있다. 변상일, 신진서, 박정환 프로는 물론 국내 여성프로 1인자인 최정 프로 역시 커제와 연일 대국을 벌이고 있다. 걸죽한 입담의 바둑 해설자로 유튜브를 진행하는 김성룡 프로는 “커제가 건방지기는 하지만, 우리 프로기사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국 상대”라며 “커제와의 대국에서 그와 겨루며 우리 프로기사들이 많은 공부를 하고 있고, 또 발전하는 기회를 삼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커제와 우리 프로기사들의 수많은 대국이 우리 바둑계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뜻이다. 커제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의 바둑은 초반 포석이 완벽하고 발이 빠르며 착점이 창의적이다. 도전의 수(手)도 마다않는다. 내가 커제의 팬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왕 바둑 얘기를 한 김에 하나 덧붙이자. 2016년 세계 바둑계, 아니 지구촌을 일대 쇼크에 빠뜨린 ‘알파고’ 얘기다. 2016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세상에 등장해 이세돌 9단과 ‘기계 대 인간’이라는 세기의 대결을 벌였을때, 알파고가 바둑계에 던진 교훈은 이것 하나였다. “과거는 잊어라. 당신이 배웠던 최선의 수, 수많은 정석은 어쩌면 잘못됐다.” 알파고는 3000년 이상 인간이 정석이라고 여겨왔던 많은 수를 파괴했다. 적어도 프로바둑계에 금기시돼왔던 수를 알파고는 서슴지 않고 펼쳤고, 바둑 프로들이 상식으로 여겨왔던 많은 착점이 잘못됐다는 것을 손수 가르쳐줬다. 수천년간 배우고 행했던, 바둑 이치로 여겼던 정석은 알파고에겐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형성되는 게 ‘정치’ 아닌가. 그런 점에서 정치는 바둑 이상의 역사를 가졌을 것이다. 선거에서 참패해 2주이상 허둥대고만 있는 통합당, 비대위·전대 얘기만 하고 창의적인 돌파구는 아예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통합당, 신선함은 없고 ‘올드함’에만 매몰돼 있는 통합당. 밉상 커제와 알파고 바둑 얘기를 꺼낸 것은 실력도 없고, 의지도 없고, 반성과 깨우침도 없는 통합당의 답이 없어 보이는 현주소를 지적하고 싶어서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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