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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포레스트 검프?…안철수는 왜 마라톤에 꽂혔나
안 대표 “오늘부터 400km 국토 종주하겠다”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저항 의지를 담았다”
‘마라톤 마니아’ 안철수의 종주 통한 전국유세
정치권선 이를 보는 시각 긍정·부정론 나뉘어
지지율 고전 국민의당 시선 집결 효과 있을것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낮은 점수도
지난해 9월 29일 베를린 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대표 지지모임 인터넷 카페 ‘미래광장’]

#. 너무도 유명한 영화, 톰 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어렸을때부터 평생 의지했던 어머니를 잃고 첫사랑도 훌훌 떠나가자 뼛속 깊이 스며든 고독에 몸부림치던 포레스트. 그가 선택한 것은 달리기였다. 그냥 외로움을 잊고 싶었을까. 무작정 집을 나와 달리고 달렸다. 묵언 수행자처럼 한마디도 안하고 달리기만 했다. 아침 해, 석양 노을과 들판만이 그의 친구였다. 어느 순간, 추종자들이 생겼다. 말없이 달리기만 하는 그의 뒤를 쫓아 달리는 이들은 계속 늘었다. 달리고 달리면서 가슴 속 울분을 한톨 남김없이 원없이 토해냈을까. 수없는 달리기를 반복한 후, 그는 멈춰섰다. 대륙을 가로질러 쉼없는 질주를 한지 수년. 그리곤 조용히 뒤돌아 고향으로 돌아간다. 추종자들의 발걸음 역시 정지했다. 수년의 달리기, 그걸 통해 포레스트는 뭘 얻었을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냥 관객에 판단을 일임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명장면으로 남는지도 모르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오늘(1일)부터 400km 국토를 종주하겠단다. 전국 곳곳을 뛰고 걸어 국민 곁으로 다가가겠다고 한다. 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전남 여수에서 출발해 서울을 향해 매일 30㎞를 도보로 이동하는 일정이란다. 이는 사실상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선거 유세의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냄새만 지운다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와 오버랩된다. 안 대표는 ‘포레스트’를 꿈꾸는 것일까.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안 대표는 전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내일부터 400km 국토를 종주하며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는 “이 땅의 곳곳을 뛰고 걸어 국민 곁으로 다가가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고 했다. 국토 종주의 이유에 대해 그는 “전국 종주는 기득권 정치세력의 꼼수 위장정당과 맞서 싸우겠다는 제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기득권 정치 세력의 오만과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 저는 잘못된 정치, 부당한 정치, 부도덕한 정치와 단호하게 맞서 싸우겠다”고도 했다. 이번 국토 종주가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항전 의미가 담겼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공감대를 전파하겠다는 뜻이다.

안 대표는 그러면서 “뛰다 보면 악천후가 올 수도 있고 부상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제 체력이 허락하는 한 힘들고 고단함을 참고 이겨내면서 한 분이라도 더 만나겠다”고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서민들에게 우리는 다시 해낼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또 “전국 종주 과정에서 만날 수많은 국민여러분과의 대화가 희망과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종주가 끝나는 날, 우리 정치와 사회에 변화와 혁신의 큰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31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웃음을 짓고 있다. [연합]

국민의당은 이날 “안 대표가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번 4·15 총선을 진두지휘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민의당은 앞서 안 대표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진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선대위원장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 카드가 불발되면서 안 대표가 직접 선대위를 이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가 총선 선대위원장을 맡기로 한 날, 그가 전국을 돌며 걷고 뛰겠다고 한 것은 이색적인 것임은 분명하다. 통상 선대위원장은 선거를 지휘하면서 특정 지역이나 특정 후보를 찾아 지원유세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형식을 벗어나 전국을 돌며 종주를 하며 지원 유세를 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있다. 안 대표는 실제로 이날 선대위 출범식 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국토 종주에 대해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의미 있는 장소를 찾고 의미 있는 분들을 만나겠다”며 “각각의 장소에서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하겠다”고 했다. 종주와 동시에 국민과의 스킨십에도 주력하고, 현장 중계방송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독특하긴 하지만,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안 대표는 대선 후보였던 지난 2017년에도 ‘안철수, 걸어서 국민 속으로 120시간’이라는 주제로 배낭을 둘러메고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바 있다. 그것이 효과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안철수만의 방식’으로 총선 지휘봉을 잡겠다는 생각이 확실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달리기’는 안 대표의 인생철학, 나아가 정치철학과 연결돼 있다는 평가다. 최소한 최근 수년간 안 대표는 ‘달리기’를 통한 자신의 신념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안 대표는 지난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뒤 9월 홀연히 독일로 떠났었다. 그러다가 1년4개월만에 귀국했고 정치무대에 컴백했다. 안 대표는 지난해 9월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는 독일 유학시절에 달리기와 마라톤, 여행을 했던 기록들을 모아 꾸민 에세이다. 주로 달리기와 마라톤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았다. 독일 생활에서의 고민과 잡념을 마라톤을 통해 극복했다는 행간이 담겨 있다. 독일에서 마라톤에 푹 빠져 있었다는 것은 그의 완주 기록으로 확인된다. 안 대표는 지난해 7월 자신의 인생 처음으로 독일에서 열린 풀코스 마라톤대회에 출전했고, 4시간6분 기록으로 완주했다.

그러니 ‘마라톤 예찬론’을 펼 자격은 있어 보인다. 그는 책에서 마라톤에서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다른 선수들을 독려하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했고, “앞서 달리는 것 같지만, 실제 역할은 다른 사람들을 지원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올바른 리더”라는 교훈을 마라톤에서 얻었다고 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문제 해결사’로 규정하기도 했다. 총선을 보름 앞둔 촉박한 상황에서 선대위원장으로서 ‘국토 종주’를 선택한 안 대표의 행보는 이런 ‘마라톤 마니아’ 철학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 행사에서 지지자들로부터 ‘안철수 피규어’를 선물받고 있다. [연합]

이를 보는 정치권 시선은 두가지다. 일단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대구에서 봉사활동을 한 안 대표에 대한 우호적 시각이 늘었음에도 총선을 앞두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의당에 시선집결 효과는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안 대표의 국토 종주가 국민들의 눈길을 끌 수는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대표가 직접 뛰면서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면 당에도 긍정 여론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지난 31일 KBS의 ‘사사건건’에 출연해 안 대표의 국토 종주에 대해 “그야말로 이벤트 정치다. 그런데 지금 사실 안 대표 입장에서 보면 ‘이벤트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이렇게 생각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마라톤이 그야말로 정치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과 상관없이 적어도 국민의당 혹은 안철수라고 하는 이름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내보여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안 대표가 언론에 비쳐지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일 뿐, 총선에서의 국민의당 파급력엔 큰 점수를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라톤에 수년간 빠져 있는 지인은 ‘왜 마라톤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달리고 있을때의 무념무상이 좋다”고 했다. 죽을 힘을 다해 그냥 달리고 있자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고, 어느순간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단다. 고민과 번뇌, 세상 잡념이 깨끗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안 대표의 이번 마라톤은 그러나 지인과의 말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잡념을 버리면서도 이번 총선에 대한 신경을 게을리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국 도처를 뛰면서도 여론을 경청하겠다고 하니 더욱 그럴 것이다. 이번 국토 종주에서 안 대표는 그동안의 번뇌를 벗고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그냥 뛰기만 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인가. 궁금하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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