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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은 국민 삶의 근본…일방통행 규제가 능사 아니다” [피플앤스토리]
‘현장형 리더십’ 박재홍 대한주택건설협회장
박 회장이 그리는 주택업계의 과거·현재·미래
전국 7700여개 중견 주택업체가 회원사인 대한주택건설협회의 박재홍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바닥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주택산업을 다시 뛰게 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대담=권남근 건설부동산부장] “농촌에 어르신들 혼자 사는 오래된 집을 새집처럼 고쳐줬더니 자식과 손주들이 돌아와서 삼겹살도 구워 먹고 가정이 화목을 되찾았습니다. 결손가정 주택을 리모델링했더니 거기 살던 학생이 집 밖에서 더이상 나쁜 일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집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40년 넘게 건설 현장에서 발로 뛰어온 박재홍(64) 대한주택건설협회장(영무건설 대표이사)의 인생철학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과 맞닿아 있다. 주거 환경이 쾌적해야 가정이 행복해지고, 그만큼 사회 혼탁도 줄어든다는 생각에서다. 전국 7700여개 중견 주택업체를 대표하는 거대 조직의 수장이 된 지금도 신념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한주택건설협회장직을 맡은 이후, 최근에는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는 정부에 쓴소리하는 일이 잦아졌다. 국민들이 주택 공급에 목말라 있는 상황인데 근본적인 갈증 해소책 대신 수요 억제에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바닥경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주택산업을 다시 뛰게 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내 손으로 내 집 짓겠다” 어린 시절 꿈

1956년 6형제 중 맏형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벽에 금이 간 문간방에서 사글세(월세) 생활을 전전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내 집을 갖겠다는 꿈을 키웠다. 실업계 고교 1학년 때부터는 동생들 학비를 보태기 위해 광주 시내 건축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새로 지어진 집을 보며 “언젠가 내 손으로 만든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내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입대를 결심했다. 그런데 군에서 전역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80년대 ‘중동 건설’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실업계 전공(기계과)을 살려 중동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가스터미널 공사 현장에서 기계 제어장비 설치 업무를 하며 종잣돈을 모았다. 1983년 귀국 이후에는 직원 500여명의 중견 건설사에 들어가 아파트 현장소장과 관리상무, 총괄본부장을 지냈다.

회사를 나와 영무건설을 창업한 그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출발은 직원 세 명이었다. 박 회장은 “툭하면 신입사원들이 나가는데 사장이 무슨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며 “현장에서 다같이 숙식하면서 회사를 키웠다”고 회상했다. 그의 현장형 리더십이 빛을 발하면서 영무건설은 광주지역 아파트 건설사를 넘어 전국적인 관급공사를 수주하는 종합건설사로 발돋움했다. 별다른 지연·학연이 없었던 박 회장의 성공 비결은 진심이다. 그는 “거짓 없이 상대방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설득하면 언젠가는 통하게 된다”면서 “지금의 영무건설을 만든 원동력”이라고도 했다.

전국 7700여개 중견 주택업체가 회원사인 대한주택건설협회의 박재홍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바닥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주택산업을 다시 뛰게 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코로나19·정부 규제 이중고(二重苦)…고사 위기”

박 회장이 가장 고민하는 대목 중 하나는 지방 부동산 시장의 위기다. 그는 “모두가 서울 집값만 쳐다보는 사이 지방 주택시장은 우리 관심 밖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9차례에 걸쳐 나온 부동산 규제정책과 최근 확산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이 바로 지방 건설업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역 건설업계가 무너지면 이사업과 공인중개업 등 수많은 연관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지방의 경제위기로까지 직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4만8000가구 가운데 87%가 지방에 몰려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박 회장은 “지역의 경우 수도권과는 차별화된 주택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방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그는 ▷미분양주택에 대한 양도세 한시적 감면 및 취득세·거래세 감면 ▷중도금대출 전액을 잔금으로 전환해주는 조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환매조건부 미분양주택 매입 재시행 등을 우선 과제로 꼽았다.

서울과 수도권 시장의 집값 해결책으로 박 회장은 과감한 층수 제한 완화와 용적률 상향, 임대주택 확대 등을 제시했다. 그는 “뉴욕 맨해튼의 경우 많은 건물들이 100층씩 올라가는데 유독 우리만 정치권의 논리에 갇혀 특별한 진전이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건물이 위로 올라간 만큼 땅값이 떨어지고, 그만큼 집값 하락과 공급 효과도 더 누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상업지역에 아파트를 짓는 경우에는 상가 비율을 낮추는 대신 용적률을 높이고 청년과 신혼부부 등의 주택 비율을 늘리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큰 사회적 문제인 저출산율을 해결하는 방법에도 ‘집’이 연관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현재 출산장려기금을 임대주택 지원과 확보에 쓸 경우, 유럽의 주요 선진국처럼 출산과 집값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 7700여개 중견 주택업체가 회원사인 대한주택건설협회의 박재홍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바닥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주택산업을 다시 뛰게 하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상섭 기자]
협회장 당선 100일…‘해외진출·사회공헌’

오는 27일 박 회장은 협회장 당선 100일째를 맞는다. 지난해 12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전임 회장을 누르고 1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지방 출신 건설사 대표가 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협회 설립 이래 처음이다. 취임 이후 전국을 돌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그는 “책임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다”고 했다.

건설사들의 ‘미래 먹거리’는 그의 또 다른 고민이다. 박 회장은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아파트 공급이 이어질까 걱정된다”며 “인구감소로 지방은 이미 수요가 고갈되기 시작됐고, 회원사들은 앞으로 주택산업에서 어떤 먹거리를 찾을 지 막막하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했다.

그는 동남아시아 등 해외 개발도상국에 답이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 미래에도 주택공급을 지속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 등 국가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박 회장은 “중소형 건설사들은 해외에 진출하려 해도 금융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일정 부분의 리스크를 국가에서 같이 짊어져 준다면 중소형 건설사들이 몇 차례 실패해도 결국 다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협회 차원에서도 연구용역 등을 발주해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공헌 확대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박 회장은 협회가 공적단체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1994년부터 협회는 전국적으로 1805동의 국가유공자 노후주택을 무료로 고쳐주고 있다. 지원 금액만 190억원에 달하며, 올해도 전국에서 유공자와 유족들의 노후주택 97개동을 보수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단기적으로 대내외 불확실성과 고강도 규제정책으로 어려움을 겪는 회원사들이 원활하게 주택사업을 영위하는 데 협회의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급변하는 주택시장 환경에 회원사가 선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협회의 내실을 기하고 회원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정리=양대근 기자

〈“트로트로 힘든 시절 이겨냈죠”, 박재홍 회장의 유별난 예술 사랑〉
박재홍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이 CM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습. [영무건설 제공]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박재홍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은 월요일 저녁 약속은 따로 잡지 않는다. 대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광주 시내에 있는 한 노래교실에 간다. 지난 12년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았던 그만의 특별한 일정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의도치 않게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면 걱정과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회사 일도 더 잘 풀리는 것 같다”며 웃었다.

박 회장이 ‘트로트’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무건설 창업 5년째를 맞아 회사가 한창 성장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한파가 닥치면서 주변 경영환경은 하루아침에 살얼음판으로 바뀌었다. 은행 대출연장 시기와 어음 만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주위에 하소연도 못 하고 속만 타들어갔다.

그렇게 힘든 시기에 운명처럼 트로트를 만났다. 친한 후배의 소개로 노래교실에 다니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적응을 잘했던 것은 아니다. 수십명의 수강생 앞에 나가서 독창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지만 두려움과 창피함이 앞섰다. 박 회장은 “소주를 미리 마시고 노래교실에 간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강생들과 허물없이 트로트 곡을 열창하는 순간이 즐겁다”고 했다. 그는 애창곡으로 ‘안동역에서’, ‘내 나이가 어때서’, ‘터미널’을 꼽았다. 신기하게도 노래교실에 열심히 다니던 무렵부터 관급공사 수주를 잇달아 따내기 시작했고 어려운 시절도 무난히 이겨낼 수 있었다.

트로트, 나아가 음악으로 쌓은 인연은 직장인 밴드 결성과 사회 공헌 활동으로 이어졌다. 2012년 5월 박 회장을 주축으로 광주·전남지역의 건설 부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의기투합해 ‘CM밴드’를 만든 것이다. 건설과 음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CM밴드는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정기적으로 찾아 공연과 후원 활동 등을 8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밴드 안에서 그는 주로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지만, 필요할 때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트로트를 열창하기도 한다.

영무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영무 예다음(藝茶音)’도 그의 남다른 예술 사랑과 무관하지 않다. 박 회장은 “‘예술처럼 아름다운 집, 삶의 행복이 되는 집’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대표 브랜드명에 걸맞게 영무건설은 ‘메세나 운동(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2015년 회사 사옥에 비영리 갤러리를 개관해 신인 작가를 발굴해 후원하고 있다. 휴관 중인 모델하우스를 이용해 지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하우스 페어’도 연다.

박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항상 책을 가까이하라”고 주문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계발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낮에는 직원들이 점심을 먹고 인근 도서관에서 독서에 열중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는 “고객과 지역 주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다양한 방식으로 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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