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IT과학칼럼] ‘완벽한’통신의 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에 ‘꿈의’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는다. ‘꿈의 과학·꿈의 기술’에서부터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는 과감한 ‘꿈의 미래’까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첨단 IT도 과거에는 누군가의 꿈이었다. 가깝게는 “당신 손가락 끝에 정보가 있다(information at your fingertips)”며 인터넷의 꿈을 선언한 1990년대의 젊은 SW기업가 빌 게이츠가 있었다. 하지만 끝없는 정보의 흐름, 완벽한 소통의 꿈의 역사를 따라가면 그보다도 50년을 더 거슬러 클로드 새넌이라는 수학자를 만나게 된다. 미시간대와 MIT에서 수학한 뒤 미국의 통신사로 유명한 AT&T의 모태였던 벨 전신회사에서 일하던 새넌은 전화기를 들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한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전달해줄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사람의 말을 전기신호로 변환한 뒤 전송설비의 오작동이나 궂은 날씨와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신호가 유실되거나 바뀌는 일에 대비하기 위해 같은 신호를 반복해서 전송하는 방식을 사용해왔는데 이렇게 하면 오류에 대한 저항력은 커지지만 비용이 상승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므로 오류가 없는 ‘완벽한’ 통신을 위해서는 무한한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불가능한 일이라는 통설에 회사의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넌은 무한한 비용을 내지 않고서도 신호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통신 규약을 만들 수 있다는 ‘새넌의 정리’를 내면서 내가 땅속에 있든, 우주에 가든 내 말을 누구에게나 똑똑하게 전해주는 ‘정보이론’을 창시했고, 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고의 두뇌들과 기업들이 과감히 투자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하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첨단의 현대 IT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새넌의 정보이론으로부터 80년, 빌 게이츠의 선언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는 과연 약속된 ‘꿈의 소통’을 누리고 있을까? 구리선으로 이어진 새넌 시대의 원시적인 전화기와 숨 막히게 선명한 영상을 한순간의 막힘도 없이 즐기게 해주는 최신 스마트폰을 비교해보면 기꺼이 ‘그렇다’고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참·거짓을 가려내기 어려운 말을 합리적인 의심과 반성없이 쉽게 맹신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침묵시켜야 한다면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공격하는 것이 사회정의라는 생각이 버젓이 재생산되는 소셜미디어의 어둠을 보면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괴리현상을 지식·경험·가치가 한데 섞여 일종의 주관적인 필터로 작용하는 인간의 소통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아직 충분치 않아 생기는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약과 진리를 감별해주는 기계를 누군가 만들어주길 꿈꾸며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보내진 신호와 받은 신호가 동일한지, 얼마나 빨리 전달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따지는 통신기술의 본질적인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귀찮고 어렵다는 이유로 인간의 사고조차 기술에 맡겨버리려는 이러한 게으른 태도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하지 않으면 반성의 결핍으로 인한 불소통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면서 우리에게 더 큰 사회적 피해를 끼칠 것이다. 진정으로 ‘완벽한 꿈의 통신’은 우리 사회가 자유로운 사고와 책임 있는 반성의 필요성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현란하게 포장된 가벼운 이야기전달꾼이 아니라 남다른 탐구와 사색을 통해 쌓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보임으로써 진리와 진실을 올바로 알아볼 수 있는 소양을 높여나가려고 할 때 실현될 수 있다.

박주용 KAIST 교수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