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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기생충 ‘4관왕의 정치학’…민주당 물개박수 vs 한국당 건성박수
봉준호 감독 기념비적 쾌거에 쌍수 환영
문재인 대통령, 축전·페북 등서 거듭 축하
이낙연 전 총리도 “정말 자랑스럽다” 글
한국당도 공식 논평 “기념비적 일 일궜다”
작년 칸영화제 수상 논평없던 것과 비교돼
다만 온도차…여기에 ‘영화의 정치학’ 있어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한마디로 ‘기생충’의 날이었고 ‘봉준호’의 날이었다. 하루종일 ‘봉테일’에 대한 칭송이 이어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잔칫날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지난 10일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4관왕(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영화 100년사 최대의 쾌거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은 축제분위기에 돌입했다. 백인들의 리그라는 오스카(아카데미)를 석권한 봉 감독과 연기자, 스태프들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정치 지도자나 여야 정치권도 모처럼 한마음으로 환영의 뜻을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쁜 마음을 서슴없이 표현했다. 지난해 6월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일반영화관에서 기생충을 관람한 바 있는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봉준호 감독을 위해 박수 한번 치면서 시작합시다”라며 봉 감독의 쾌거를 축하했다. 문 대통령은 아예 축전까지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봉준호 감독님, 배우와 스태프 여러분의 ‘다음 계획’이 벌써 궁금합니다.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하며, 국민과 함께 항상 응원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기생충 영화 주연인 배우 송강호가 유행시킨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말을 패러디한 것이다. 봉 감독을 ‘우리 봉 감독’으로 표현한 것이나, 송강호 대사를 패러디한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의 영화 ‘기생충’에 대한 애정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최대한의 덕담을 쏟아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그동안 백인남성 위주의 폐쇄성으로 비판받아 온 아카데미에서 한국영화가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 영화계의 쾌거를 넘어, 세계 영화계가 더욱 풍부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앞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 등 영화 ‘기생충’ 팀에게 축하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

종로 출마 선언과 함께 종로에서 본격적으로 표밭갈이에 나선 이낙연 전 총리도 가세했다. 이 전 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기생충의 오스카 석권에 대해 “정치도 세계일류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줄평을 남겼다. 그러면서 “세계와 한국의 영화사를 바꾼 쾌거, 자랑스럽다. 제작진과 출연진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해서도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영화 최고의 영예”라고 축하인사를 건넨바 있다.

주목되는 것은 자유한국당의 반응이었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당시 한국당은 한줄의 논평을 내지 않았었다.

다만 이번에는 축하인사를 전했다. 한국당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달성에 대해 “새 역사를 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용찬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 영화, 한국 문화의 힘을 알린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며 “다른 무엇보다 우한 폐렴으로 침체와 정체, 절망에 빠진 대한민국에 전해진 단비 같은 소식”이라고 했다. 박 대변인은 “문화는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국민적 양식이며 산업인데, 앞으로도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원유철 한국당 의원 등 일부 의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기생충의 낭보를 축하하긴 했지만, 민주당의 시끌벅적한 축하 메시지같은 환호 물결은 더이상 없었다. 이낙연 전 총리의 대항마로 종로에 뛰어든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종로 선거전에 몰두하느라 그랬는지, 하필 이날 1980년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슨 사태’라고 지칭해 구설에 오르면서 이를 해명하느라 바빴는지 기생충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총선을 향해 역시 바쁘게 뛰고 있는 안철수 국민당 창당준비위원장이 “봉 감독님의 수상 소감은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짚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기생충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공정이 무너진 사회를 그려낸 작품이라는 생각, 영화 생태계의 공정성 문제”라며 우리 사회의 공정 문제를 재거론한 것과 비교됐다.

특히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 다른 정당은 물론 CNN, BBC 등 주요 외신들마저 기생충의 아카데미 석권에 대해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칭송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당의 축하 메시지는 다소 인색해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기생충의 4관왕 달성에 대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반응은 좀 온도차가 있었다고 본다”며 “민주당은 한마디로 격하게 환영하는 물개박수를 쳤고, 한국당은 최소한의 예의만 차린 얌전한 박수를 쳤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기생충에 대한 ‘무한대의 너그러움’을 보인반면 한국당은 ‘약간의 인색함’을 보였다는 뜻이다. 이날 기생충의 오스카 석권에 대해 한국당이 공식 논평을 통해 축하한 것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이례적’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의 견해는 틀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서울 종로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낙연 전 총리가 10일 종로구민회관을 찾아 주민과 인사하고(왼쪽),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하림각에서 열린 핵심당원 간담회에서 참석자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

왜 그럴까. 같은 영화인 기생충에 대해 민주당과 한국당의 접근방식이 왜 이토록 다른 것일까.

정가에선 영화 기생충이 갖는 본질적인 내용,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영화 기생충은 지하 대 반지하, 서민 대 부자의 계급 문제를 다루는 영화다. 그러니 보수진영에선 기생충 영화가 계급 갈등을 부추기는 요소를 갖고 있다며 불편한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보 진영이 좋아할 요소만 갖췄고, 진보 진영의 부추김에 입맛이 맞는 영화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봉 감독이 박근혜정부때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보수 진영에선 부담스러워 한다는 견해도 있다. 박근혜정부에선 봉 감독을 좌파 편향적 인물로 봤고, 그의 영화적 감각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앞서 기생충에 대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자기 입맛에 맞는 홍보전쟁도 이런 분위기와 연결돼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난달 5일 한국당이 정치권의 비판에도 아랑곳않고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를 갖고 출범했을때 정의당은 “미래한국당은 모든 것이 노골적으로 자유한국당에서 파생된 불법 사조직이며,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자 만들어진 현행 선거제도의 사각지대를 파고 들어 의석수를 빨아먹겠다는 기생충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기생충’을 빗대 원색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국당은 지난해 ‘조국 사태’가 한창일때 ‘기생충’ 단어를 사용하며 파상공세를 벌였다. 조 전 법무부장관 딸과 관련한 동양대 표창장 위조 의혹을 영화 속의 ‘재학증명서 위조’와 묶어 비판한 것이다. 황교안 대표가 총대를 멨다. 황 대표는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조 전 장관 아내 정경심 씨가 동양대 표창장 위조를 기생충처럼 했다고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의 놀랄만한 선전에 민주당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한국당이 최소한의 예의만 보이는 덕담을 건넨 것은 올해 4월 총선과 관련이 크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번 총선에서 ‘기생충’을 활용한 민주당의 선거전략이 예상되기에 한국당에서는 이를 경계할 필요성이 있고, 나아가 반전의 기생충 문구 전략을 짤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렇듯 영화 하나를 두고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접근방식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영화가 주는 정치학 중 또다른 모습은 역대 대통령의 영화관점 내지 영화관람 기록에서 엿볼수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일반영화관을 처음 찾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왕의 남자’, ‘길’, ‘맨발의 기봉이’, ‘밀양’ 등을 관람했다. 지난 200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를 본 뒤 눈물을 흘리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지금도 대통령과 영화를 논할때 자주 회자되는 장면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핸드볼 여자국가대표 선수들의 도전과 역경을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다.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독립영화 ‘워낭소리’를 봤고 “저예산 독립영화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었던 2013년 1월 애니메니션 영화 ‘뽀로로 슈퍼썰매대모험’을 관람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국제시장’도 관람했다.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 속의 내용이나 감독의 스타일과 관련한 진영 논리는 영화산업 발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뿐, 정치적 논쟁 대상이나 흥정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기생충은 아주 매섭고 날카롭게 양극화, 계급 문제를 꼬집는다. 세계 공통의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반면에 봉준호 감독의 유머라는 굉장한 장기를 살려 사로잡았지 않았나 싶다”고 평했다. 무겁고도 묵직한 문제를 유머와 해학에 녹였기에 정치 논쟁에 휘말릴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그렇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진영 논리에 휘말려온 대한민국 영화들, 기생충은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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