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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산책-문호진 건설부동산부 선임기자] 포디즘과 ‘부동산 정치’

연초에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봤다. ‘마셜’의 맷 데이먼과 ‘메소드 연기’의 대가 크리스천 베일이 듀오를 이룬 작품이라 눈이 갔다. 영화는 1966년 미국 포드자동차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경주대회인 ‘르망 24시’에서 절대강자 페라리를 꺾고 처음 우승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존 인물 캐럴 셸비(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의 브로맨스가 버디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둘은 출중한 레이서이자 정비사다.

영화는 레이싱 영화 특유의 질주본능을 충족시켜줬다. 7000으로 솟구치는 RPM 게이지와 귀를 찢는 듯한 엔진 굉음이 심장을 끓어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내게 인상적인 장면은 셸비가 포드 2세를 스포츠카에 억지로 태우고 시속 200~300㎞ 속도로 곡선주로를 몰아붙이는 모습이다. 100㎏이 넘는 거구인 포드 2세는 속도에 놀라 시승 내내 벌벌 떨다 차가 멈추자 어린아이처럼 발작적 울음을 터트린다. ‘웃픈 장면’의 백미다.

셸비가 포드 2세를 시승차에 태운 의도는 분명했다. 스포츠카 개발과 레이서 선발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경영진의 개입을 차단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포드 2세는 앞서 포드자동차의 생산라인을 가리키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저 공장에서 미군 폭격기 5대 중 3대를 만들었다”며 으스댔다. 포드 경영진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마일스가 세련된 이미지를 중시하는 포디즘과 맞지 않는다며 레이스에서 배제하겠다고 통보한다. 셸비는 포드 2세로 하여금 레이싱의 엄청난 리스크를 직접 체험케 해 이번 프로젝트가 고도의 전문가 영역임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

영화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주는 시사점이 많아서다. 포드 2세와 경영진은 양산차에 젖은 타성으로 스포츠카 전문가의 영역까지 사사건건 개입한다. 결과는 ‘유럽의 스포츠카 장인’ 페라리에 참패였다. 현장을 모르는 관료주의적 시스템이 일을 그르쳤다. 참여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의 모토는 ‘집값 안정’이다. 그런데 펴는 정책마다 이념적이고 적대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축인 ‘86’ 운동권이 활약할 당시에는 부셔야 할 적이 명확했다. 이들이 기치를 든 민주화 투쟁에도 박수가 쏟아졌다. 마치 양산차 시대를 열었던 포디즘이 대량 소비시대에 각광받은 것과도 같다.

포디즘은 질주본능을 지닌 신세대들이 등장하면서 ‘어울리지 않는 옷’이 됐다. 그런데 운동권의 이념중시는 21세기 문재인 정부에서도 펄펄 살아있다. 이들은 집값 불안은 투기세력 탓이고 이들을 박멸하면 문제가 해결될 걸로 본다. 18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대출 규제·보유세 강화·분양가 통제·청약 제한 등 수요를 옥죄는 방향으로 흐른 이유다.

수요 옥죄기 일변도의 부동산 대책은 경제규모 세계 12위-국민소득 3만달러의 대한민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경제규모가 커지면 고급주택과 1가구 2주택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 좋은 집, 더 넓은 집, 더 편한 집에 살려는 욕구는 허상이 아니라 실상이다.

‘집값 잡기’는 부동산도 시장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몽둥이질’은 18차례로 충분하지 않은가. 서울 강·남북의 낡은 주택을 새 주택 공급원으로 활용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단기적으로 집값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 고밀개발로 아파트 공급이 크게 늘어난다는 시그널이 시장에 전달되면 중장기적으로 집값은 안정될 것이다. 비록 다음 정권이 그 혜택을 누린다 해도 시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진보정부의 담대한 이념은 이럴 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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