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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 포럼-이종권 토지주택연구원(LHI) 선임연구위원] 불평등 시대에 요구되는 주택정책에서의 감수성

토마 피케티가 2013년에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론’에서 1970년대 말 이후 주요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본/소득 비율’의 상승 추이와 이에 따른 자산소유계층으로의 부의 불평등한 집중 경향을 설파한 이래 경제학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쟁이 이슈가 됐다. 쟁점의 하나는 자본/소득 비율의 증가 대부분이 자본축적의 결과가 아니라 주택가격 상승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주택가격의 동향은 금융화와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힘들게 됐다. 금융화의 과정은 무엇보다도 모기지(주택담보대출)의 확장을 지렛대로 하고 진행됐기 때문이다. 유럽통화기금(EMF) 자료에 따르면 1998~2011년간, 유럽연합(EU)의 모기지부채잔액/국내총생산(GDP) 비율은 32%에서 52%로 증가했고, 미국은 54%에서 76%로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기지는 한때 위축됐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부활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매킨지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에서의 양적완화와 저금리는 부동산가격상승을 다시 부추겨 2008~2013년간 미국, 영국에서 각각 14%, 15% 상승했다.

2000년대 이후 모기지를 지렛대로 한 금융화와 결부돼 유럽 국가들의 주택체제도 큰 전환이 진행됐다. 모기지에 강하게 의존하는 앵글로아메리칸 경제권(미국, 영국 등)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전통적으로 사회임대부문(우리의 경우 공공임대주택)이 주택시장을 주도했던 국가에서조차도 주택금융시스템의 규제완화 및 모기지 증권화 대열에 휩쓸렸다. 이로 인해 사회임대부문이 상대적으로 감소했으며, 이후 자가보유능력의 저하로 자가율마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독일, 프랑스 등은 영미식 모기지 증권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지 않았으나 최근 들면서 이들 국가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주택체제유형을 막론하고 주요 선진국들의 사회주택정책에서 잔여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임대부문의 잔여화는 주거지에서의 사회적 배제와 공간적 분리, 낙인을 수반하는 경향이 있다. 대규모 임대주택의 건설에 따른 저소득층 밀집 주거지의 형성은 상대적인 사회적 네트워크의 결핍을 초래한다. 이러한 ‘불이익의 집중’(concentration of disadvantage)을 감소시키자는 취지에서 서구에서 일찍이 시도된 것이 ‘소셜 믹스’(social mix)이다. 즉 주택건설을 할 때 다양한 주거유형을 혼합시킴으로써 계층혼합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성과면에서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은 혼합방식으로 공급되고 있다.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을 같은 주거단지에 혼합배치하는 것이다. 이 역시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완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이웃관계, 심리적 거부감, 재산권 이해상충, 상이한 사회적 규범간의 대립 등 새로운 갈등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저성장·저출산·금융화·불평등의 시대에서는 소득불평등보다 자산불평등·교육불평등·사회적 네트워크의 불균등·기회불평등이 더 큰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회주택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홈리스(노숙자)임을 입증해야 하고, 계속 거주하기 위해서는 다른 복합적 문제를 가져야만 한다면 ‘예방적 안전망’으로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장기공공임대주택은 136만6000호(전체 주택재고의 6.8%)이며 향후 2022년에는 200만호 수준(9%)에 도달할 전망이다. 공공임대주택 10% 시대를 내다볼 때, 지금과 같은 방식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운영방식이 불평등시대의 사회통합 담론에 적절한 것인지를 점검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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