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닮은 꼴 ‘광기 속 학살’ 광주-부에노스아이레스
임흥순 ‘고스트 가이드’展 1월 23일까지

서로 마주 본 두 개의 스크린에선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1980년 광주다. 군부독재시절의 집단학살, 그 끔찍했던 기억이 아물지 못한 상처로 남아 살아있는 사람들을 ‘말하게’한다. 흥미로운건, 광주의 화면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음성이 섞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화면에 광주의 음성이 섞이는데 이질감이 없다는 점이다. 서로 각각의 이야기를 하지만,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흥순의 ‘좋은 빛, 좋은 공기’(42분)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인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 임흥순의 개인전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 더 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다. ‘고스트 가이드’라는 주제의 전시엔 2018년 카네기 인터네셔널에 출품됐던 ‘좋은 빛, 좋은 공기’ 외에도 ‘고스트가이드’, ‘친애하는 지구’ 등 미공개 영상·설치작업이 선보인다.

작가는 4·3 제주 학살의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비념’(2012), 구로공단 여공부터 오날날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위로공단’(2014), 해방공간과 베트남 전 등 역사적 사건의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던 할머니들의 이야기인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7), 이데올로기와 매스컴에 가려진 여성 탈북자의 이야기 ‘려행’(2019)에 이르기까지, 주변부의 유령을 불러내 개인의 진솔하고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경청 해 왔다.

이번 전시에선 빛고을 ‘광주’와 좋은 공기라는 뜻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 주인공이다. 지구의 끝과 끝에 위치해 있지만 두 도시는 똑 닮았다. 이해할 수 없는 광기 속에 너무나 많은 이가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상처를 어찌하지 못해 몸부림 치고 있다. 광주에선 어머니들의 한풀이가 있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죽은이의 뼛 조각 하나, 기저귀 하나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려한다. 작가는 이같은 과정을 통해서 ‘기억’과 ‘위로’가 가능함을 이야기한다. 목정원 공연예술이론 평론가는 “미신적 서정에 기댈 수 밖에 없던 날들에 착실하고 정직한 과학의 결을 입혀보는 것. 거기서 또다른 진혼이 발생한다”고 평한다.

기억과 위로는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출발한다. 작가가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수집한 돌과 건물 잔해들이 그 시작이다. 작가는 “흙과 건물 잔해 등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 시간을 기억하고 찾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며 “작고 사소하지만 그 시작점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