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10년만에 졸업”…대졸 취업난에 쌓여가는 ‘졸업유예생’
“대학생 신분이 취업에 유리”
1만3000명 넘는 졸업유예생
6년째 ‘내리막’ 대졸 취업률

#1.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최모(가명·30) 씨는 내년 2월 입학한지 10년 만에 학교를 졸업한다. 제대하고 교환학생을 다녀온 최 씨는 이후 휴학을 하고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땄지만 취업준비를 위해 2년 연속으로 졸업유예를 학교에 신청했다. 지난 달 사기업에 합격한 최 씨는 “이것 저것 하다보니 20살에 대학에 들어왔는대 서른에 졸업을 하게 됐다. 내년 드디어 졸업을 한다”고 말했다.

#2. 성북구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7)씨는 2년째 수료생으로 남아있다. 수업 학점은 진작에 채웠지만 학생 신분으로 남는 것이 취업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인턴이나 대외활동이 대부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대학생 신분을 유지해야 취업 준비에도 유리하다”며 “일부러 영어성적을 제출하지 않는 방법으로 졸업생이 아닌 수료생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20대에 대학에 들어갔다 30대에 졸업한다’는 말이 현실이 된 시대다. 4년 만에 졸업하는 ‘칼 졸업’은 이제 찾기 힘들어졌다. 계속되는 취업난에 불안해진 학생들이 졸업을 미루고 취업준비에 매진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대학생’ 신분으로 남는 것이 취업시장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6년째 하락하고 있다. 교육부의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률’ 통계에 따르면 2012년 66.0%던 4년제 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2017년 62.6%로 떨어졌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기업들의 채용 규모가 줄었고, 대학을 졸업해 구직을 하는 청년 세대의 수가 많아진 것이 대졸 취업률이 낮아진 원인이다.

이처럼 힘겨운 취업상황에 학생들은 대학생으로 남기 위해 졸업을 미루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9년 2월 기준 졸업유예제도를 시행 중인 대학에서 졸업유예를 선택한 학생은 1만3185명이었다. 1만 2157명이던 2017년 2월에 비해 1000여 명 가량 증가한 것이다. 졸업유예제는 졸업 요건을 갖춘 대학 재학생이 졸업을 하지 않고 일정 기간 졸업을 미룰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유예에 필요한 비용은 학교에 따라 다른데 20~30만원 가량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졸업유예자들이 납부하는 1인당 비용은 평균 23.7만원으로, 절반 이상이 부모의 지원으로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졸업유예 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대학의 학생들은 일부러 졸업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방법으로 ‘수료생’ 신분을 유지하기도 한다. 졸업을 위한 강의는 다 듣고 학점을 채웠지만, 영어 성적을 제출하지 않거나 한자시험 등을 응시하지 않는 등 각 대학이 제시한 졸업 요건 중 일부를 제출치 않는 방식으로 졸업을 미루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처럼 졸업을 미루는 이유는 취업 준비에 유리하기 때문이란 것이 공통된 설명이다. 학생들은 대표적으로 인턴·대외활동에서의 이점, 학교도서관 이용, 학내 취업 프로그램 이용 등을 학생신분 유지의 이유로 꼽았다.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장모(28) 씨는 “졸업을 하면 모의 면접, 자기소개서 분석 등 다양한 학내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없다”며 “학교를 나가면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졸업 후 공백기에 대한 불안감도 학생들이 졸업을 미루는 이유로 꼽혔다. 졸업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르면 입사 면접에서 “졸업하고 뭐했어요?”라는 질문이 꼭 나온다는 것이다. 졸업 후 2년 째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정모(29) 씨는 “수차례 면접 전형까지 갔는데 갈 때마다 졸업하고 뭐했냐는 질문을 받는다”며 “취업준비를 했다는 말 밖에 할 게 없다. 불합격의 원인이 공백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구조적 원인인 취업난으로 졸업 유예를 선택하는 학생이 누적된 만큼 이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지경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학생 졸업유예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 논문에서 “졸업 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제도적 무중력 상태’의 경험을 회피해보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우리사회의 하나의 큰 덩어리로 자리했다”며 “졸업유예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책이 마련되고 졸업유예를 선택하는 당사자들에 대한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지 기자/jakmee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