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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아우슈비츠의 연인들

  • 기사입력 2019-12-1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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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출신 유대계 남성 데이비드 위즈니아와 슬로바키아 출신 유대계 여성 헬렌 스피처가 처음 만난 것은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였다. 위즈니아가 17세, 스피처가 25세였다. 강제 노동과 대량 학살의 공장. 두 남녀는 유대인 포로로 잡혀 온 신세였지만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둘은 감시의 눈을 피해 수용소 한 구석에서 몇 개월간 만났다. 둘 모두 어느 정도 특권을 가진 수감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피처는 당시로는 드물게 그래픽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다. 처음엔 살인적인 강제노동에 시달렸지만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리 사무 역으로 전환됐다. 자신의 특기로 영향력을 키운 스피처는 동료 수감자들을 도왔다. 수감자들의 시신을 처리하던 위즈니아는 노래 실력이 알려지면서 독일인들의 즐거움을 위해 ‘차출’되곤 했다. 스피처가 위즈니아를 눈여겨 봐오다 ‘밀회’가 시작됐다.

독일 패망이 임박하자 두 사람은 이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전쟁이 끝나면 바르샤바에서 만나기로 했다.전선에서 물러나는 독일 나치는 증거인멸을 위해 유대인의 대규모 이송 및 대량 학살을 본격화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이송선에 탔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다. 두 사람은 각각 결혼해 후일 미국에 정착했다. 스피처는 평생 인권·증언 활동을 했고, 위즈니아는 자식 손자들과 함께 미국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바르샤바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미국 정착 몇 년 후 위즈니아는 지인을 통해 스피처의 행방을 알아내 만나기로 했지만 상대는 약속장소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72년이나 지난 2016년이었다. 97세의 스피처는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위즈니아는 평생 묻어뒀던 질문을 했다. “왜 그때 나오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수용소에서 나를 살렸습니까?”

스피처가 대답했다.

“당신을 기다렸지요. 전쟁이 끝나고 우리 약속대로 바르샤바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수용소에서 당신은 다섯 번이나 죽을 뻔했어요. 내가 막았지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72년만에 재회한 아우슈비츠의 연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전한 실화다. 유대인 생존자 증언을 담은 각종 문서, 저서, 인터뷰에 바탕해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스피처는 지난해 10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또 한명의 학살 증언자가 사라진 것이다. 위즈니아는 몇 년 전부터 학교 등을 다니며 전쟁과 학살 증언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과거를 제대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했다. 지난 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취임 후 처음으로 아우슈비츠를 찾았다. 메르켈은 역사의 보존을 위해 독일 정부가 약 800억원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인이 저지른 야만적인 범죄,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계를 넘은 범죄 앞에서 마음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책임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국가 정체성의 일부”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땅에선 꽃피지 못한 수많은 젊음과 사랑, 비극적인 죽음이 증언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독일과 달리 여전히 전쟁범죄에 대해 침묵·부인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개탄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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