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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의 보고’ 고전 둘러싼 허위의식을 벗겨낸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김영민 지음/사회평론

“오늘날 ‘동양’ 고전 읽기와 관련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고전을 미끼로 해서 파는 만병통치약이다.”

지난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에세이로 주목을 받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기 신작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사회평론)에서 날카롭게 지적한 말이다. 흔히 ‘지혜의 보고’로 불리는 고전을 둘러싼 허위의식을 벗겨낸 것이다.

김 교수는 도입부에서 우선 모든 당면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선전하는 ‘고전팔이’를 경계하는데, 대표적인 허위의식 중 하나로 동양 고전을 통해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을 지적하기도 한다.

김 교수의 논어 읽기는 그의 주장대로 섬세한 콘텍스트 읽기의 표본처럼 보인다.

한 예로, 공자는 노나라 사구(형벌이나 도난 등의 사안을 맡은 벼슬) 직책을 맡고 있다가 느닷없이 직장을 관두고 떠난 일이 있다. 제사가 끝났는데도 자신에게 제사 고기가 돌아 오지 않자 쓰고 있던 면류관도 벗지 않은 채 노나라를 떠나버린 것이다.

공자 자신이 이 이유에 침묵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고, 후에 해석도 분분했다. 저자는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밥 기운을 넘치게는 들지 않았다‘는 ’논어‘ ’향당‘편을 들어 공자가 고깃덩어리를 받지 못했다고 나라를 떠났다는 건 어색하다는 논리다. 또한 예를 중시하는 공자가 면류관도 벗지 않은 채 부랴부랴 조국을 떠난 데 숨은 의도를 찾아낸다.

이와 관련, 저자는 맹자의 해석을 끌어온다. 공자가 작은 죄를 구실 삼아 떠나고자 한 것이란 해석이다. 즉 당시 조국 노나라는 날로 수렁에 빠지고 있었고, 개혁에 대한 전망은 존재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조국을 비판하고 싶지만 차마 못할 짓이어서 작은 사건을 트집잡아 떠난 것이란 얘기다.

저자는 이런 공자의 사려깊은 행위와 침묵에서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나아간다.

”공자가 희망한 것은 소리없는 작은 행위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였다“며, ”바람직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소통과 해석을 가능케 하는 바탕을 공유하고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이 구호와 폭력이 만연하게 된다면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를 수 없고, 곧 정치적 타락이라는 것이다.

불필요한 과장을 비판하고 침묵 및 삼가 말하기를 역설해온 공자의 화법을 꼼꼼이 들여다봄으로써 저자는 공자가 꿈꾸고 우리 현실에도 시사점을 던지는 정치의 모습을 찾아낸다.

흔히 고전 해석서들이 텍스트의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저자는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독법에 주목한다.

메시지라는 목적지만을 찾다보면 주변의 경관을 놓치고 결국 읽어내야 할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보려면 고전이 놓였던 당시 역사적 상황을 주시하면서 ’생각의 무덤의 자리인 텍스트를 조심스레 오가는 것. 그러다 보면 인간의 근본 문제와 고투했던 과거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고전은 우리의 일상사의 고민이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줄까? 저자는 냉정하다. ”고전 텍스트를 읾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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