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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랑끝’에 선 소매업…‘공간’ 마저 파괴하다
오프라인 매장 감소에 위기감
체험 콘텐츠 확대…공간 탈바꿈
서점·카페 등 업종간 경계 허물어


젠틀몬스터의 홍대 플래그십스토어. ‘THE ROCKET’를 주제로 환상적이며 동화 같은 스토리를 공간 안에 담았다. 이 스토리는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며 예측 불가능한 공간으로 구성돼 호기심을 자극한다. [젠틀몬스터 공식 홈페이지]

폐업한 목욕탕이 안경과 선글라스 전시장(젠틀몬스터)으로 탈바꿈한다. 으례 옷들로 가득찬 의류매장(명동 LF 헤지스 플래그십 스토어)이겠거니 들어간 곳 한켠엔 북카페(카페꼼마)가 자리를 틀고 있다. 서점(교보문고) 한 가운데에는 페인트 등 인테리어 소매점에서나 볼 법한 상품들이 눈길을 끈다. 어제까지만 해도 책들로 꽉 들어찼던 서점이 하루 아침에 공연장으로 옷을 바꿔 입는다.

공간과 기능의 1대 1 관계가 깨지고 있다. 하나의 공간이 카멜레온 처럼 색깔을 달리하며 그 기능에 변주를 올리고 있다. 상품 판매가 주목적이던 공간은 언젠가부터 경험과 체험을 위한 공간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상품이 주인장 자리를 꾀차던 공간이 비로소 사람이 주인장인 공간으로 변한 셈이다. 이에 공간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고 있다. ▶관련기사 18면

▶소매업의 종말…공간을 재구성하다=공간의 재구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소매업의 종말’이 가져온 결과다. 온라인에 밀리지 않기 위해 사업 기반이던 오프라인 매장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 경쟁’ 이외에 새로운 가치 부여를 통해 온라인으로 떠난 소비자를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소매업의 종말이라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분석은 국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비시장에서 주요 오프라인 매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69.6%에서 올해(9월 기준)에는 61.1%로 급감했다.

공간기획자 손창현 OTD 대표는 이와 관련 “지금 온라인 때문에 가장 많이 바뀌는 건 공간의 기능적인 측면”이라며 “공간은 이제 단순히 물건을 보고 사는 일차원적인 기능에 머물 수 없으며, 사람의 관점으로 공간을 재발견하는 것이 혁신적인 기획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상품’ 아닌 ‘체험’을 파는 시대=절벽에 몰린 오프라인 매장들은 단순한 제품 진열을 넘어 브랜드 콘셉트와 정체성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전시, 공연, 교육 등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새로운 체험으로 브랜드의 로열티를 높이고 고객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달 성수역 2번 출구 인근에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공간 ‘아모레성수’를 열었다. 이곳은 아모레 30여개 브랜드의 2300가지 제품을 무료로 써보고 샘플까지 받아볼 수 있는 대규모 쇼룸이다.

유통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복합쇼핑몰도 유통시설 비중을 80%에서 60%까지 줄이고 나머지 40%는 체험 공간으로 채워넣고 있다. 롯데몰은 실내 서핑장과 아이스링크를, 스타필드는 도서관과 스포츠시설을 입점 시켜 화제가 됐다.

주익환 롯데자산개발 팀장은 “유통 매장의 정의가 ‘판매 공간’에서 ‘체험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콘텐츠가 된 공간…‘카멜레존’의 등장=지난해 을지로에 문을 연 ‘아크앤북’은 서점과 밥집, 카페 등이 결합된 복합문화 공간을 선보이며 단숨에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아크앤북은 기존 서점과 달리 술, 고양이 등 취향에 따라 책을 분류해 놓는다. 특정 주제로 큐레이션한 책과 소품들을 구경하다보면 마치 서점이 고객에게 말을 걸어오는 인상을 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카멜레존’의 등장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주변 상황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공간도 기존 용도에서 벗어나 상황에 맞춰 변신한다. 이로써 공간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재미를 주는 콘텐츠가 된다. 이러한 카멜레존은 소비에서도 ‘재미’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 Z세대의 부상과 함께 플래그쉽 스토어 및 업종 간 협업(컬래버레이션)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로명·이유정 기자/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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