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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제도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란?

“이제부터의 과제는 윤석열 총장이 아닌 다른 어느 누가 검찰총장이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반부패 시스템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것(이다).”

지난 11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 말을 두고 윤석열 총장을 ‘콕’ 짚었다며, 윤 총장에 대한 대통령의 경고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의 말을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해석하면 나름 맞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름지기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는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아니라 지도자에 의존하는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구현될 수 없다. 시스템이란 특정 지도자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물이 정권을 잡아도 국가 운영 체계의 근본을 흔들 수 없게 만드는 제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존재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에 공감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대통령의 말과는 반대로 제도가 무력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말과 현실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당초 정부는 당초 특목고와 자사고 재지정 평가가 끝나는 2020년 이후 공론화 과정을 통해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최근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고,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말하자, 특목고와 자사고 폐지의 속도는 급속히 빨라졌다.

일각에서는 조국 사태로 인해 특목고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돼 이를 지켜볼 수 없었던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모든 제도는 허점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런 허점을 자의적으로 이용한 이들을 먼저 엄벌해서 다른 이들이 따라하지 못하게 하고, 그 이후에 시스템의 허점을 손보고 그래도 안되면 폐지를 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교육부가 자사고 특목고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을 보면,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인치(人治)가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는 전형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기자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면 자칫 묻혀버릴 뻔한, 북한 주민 송환 문제도 그렇다. 이 사건은 두 가지 문제점을 포함한다.

먼저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이른바 ‘국방장관 패싱’ 문제다. 북한 주민 두 명이 다시 북으로 송환된다는 사실을 국방장관이 모르고 있었다는 점은, 제도가 무력화됐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제도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정부라면, JSA에서 근무하는 중령이 청와대 안보실 1차장에게 휴대전화 메시지로 직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로는 제도로 움직이는 정부라면 모든 것이 투명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을 보면, 정부 행위의 투명성에도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대통령의 모든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자신들은 투명하게 정부를 이끌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 만일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기자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면, 모든 국민들은 이 사건을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통일부는 북송 후 국민에게 알리려고 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왜 북송 후에 알리려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들을 종합해보면, 현재의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제도 변경의 절차가 사라지는 정부, 제도에 의한 정식 보고 체계가 무시되는 정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상항에서는 일반 국민들이 미래를 예측하고 자신들의 삶을 계획한다는 것은 점점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예측 가능성은 시스템에 의해 보장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반환점을 맞아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밥 먹고 공부하고 아이 키우고 일하는 국민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바꾸어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런 변화의 출발점은 삶의 예측 가능성이라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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