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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 칼럼-이병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 현장에 답이 있다

얼마 전 서울 합정동 인근에서 열리는 신개념 농부시장인 ‘채소시장’에 다녀왔다. 농부와 셰프, 디자이너가 함께 만드는 장터라는 컨셉으로 성수동, 합정동 일대에서 매월 한 차례씩 장을 열고 있는데, 디자인적인 요소를 강화하여 상품의 진열이나 구성이 창의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외형만 차별화된 것이 아니라 장터를 단순한 상품판매 외에 로컬푸드나 환경보호 가치를 공유하는 채널로 활용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 가족농과 귀농인, 일상요리에 사용 가능한 농산물을 직접 생산·판매하는 농가들에게 우선 참여의 기회를 주고, 국산 재료 및 근교 지역 농작물을 활용한 요리와 가공품, 식문화와 관련 있거나 환경친화적 생활습관을 유도하는 수공예품의 입점을 우선으로 한다.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농업, 농민, 농산물을 소개한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직거래장터 사업을 유형별로 지원하고 있으며, 이번 채소시장도 aT의 직거래장터 지원사업을 통해 일정 규모의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 채소시장은 민간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공공부문의 지원방식이 진일보한 결과인 동시에 공공부문의 지원방식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공공부문의 직거래장터 지원사업은 각 직거래장터의 특성, 다양성과 같은 내용 측면보다는 연간 운영횟수, 참여농가 숫자 등 형식적인 면이 더 중요한 선정기준이 되었다. 정해진 규모에 이르지 못하면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신청할 기회부터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직거래 장터가 천편일률적이라는 한계에 부딪친다. 정책이 보다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운영된다면 바로마켓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직거래장터 외에도 전국의 다양한 먹거리, 관광, 축제 등 지역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상생상회, 디자인·친환경 요소를 강화한 마르쉐의 채소시장 등 다양하고 특색있는 혁신적인 직거래장터가 많이 생겨날 수 있다.

비단 직거래장터만이 아니다. 우리의 공공정책 전반에 만연한 중앙중심·공급자 중심 설계주의적 경향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2010년 영국에서 시작된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 SIB)’은 혁신적 공공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부가 범죄, 빈곤, 실업, 빈부격차, 환경오염, 교육 등 다양한 사회문제 관련 정책과제를 민간운영업체에 위탁하고, 민간업체가 정책목표를 달성할 경우 관련 사업비에 이자까지 지급하는 성과급 형태의 사회적 투자이다. 공공정책에 민간의 아이디어를 탄력적으로 접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으며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서울시가 복지시설 아동들의 교육을 위한 사회성과 프로젝트를 시행한 바 있다. 이처럼 공공정책에 민간의 창의력을 덧대면 훨씬 혁신적이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

공공정책은 철저히 수요자 중심, 즉 국민 중심이어야 한다. 행정적 편의성이나 효율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국민들의 실생활에 와닿는 정책을 찾기 위한 유연함과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 해도 정해진 설계도 위에서 사업을 진행하다보면 사전에 그려놓은 그림 이상으로 발전할 수가 없다. 이러한 ‘중앙집중적 설계주의’야말로 공공정책이 특히 경계해야 할 점이다. 더 유연한 공공정책 모델, 더 새로운 성공사례 발굴을 위해 공공부문의 과감한 혁신과 도전이 필요하고, 그 답은 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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