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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최종만 공인회계사회 부회장] 30여년 강골 회계사 “맨땅에 헤딩 많이 했죠”
국내 첫 ‘美SEC 외국인 감사인 등록’ 신한회계법인 이끄는 최종만 공인회계사회 부회장 “다가오는 시대엔 IT 활용한 전수감사”

최종만 한국공인회계사회 부회장(신한회계법인 대표)은 정보기술(IT)을 통해 감사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섭 기자/babtong@ ]

최종만 한국공인회계사회 부회장(신한회계법인 대표)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악수를 할 때 느껴지는 야무진 손매, 딱 보면 느껴지는 강직한 기골, 다른 사람들에게 “성악 전공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무실을 쩡쩡 울리는 목소리까지. 언뜻 보기에도 스태미나가 넘쳐보이는 최 부회장은 타고난 ‘통뼈’를 바탕으로 중소기업 감사 시장을 30년 넘게 개척한 베테랑 회계사다.

그는 2005년부터 업계 7위 규모(회계사 수 기준)인 신한회계법인 대표를 맡아 중견 회계법인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대학에선 회계감사 과목을 가르쳐 후학을 양성하고,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선 2018년 6월부터 선출부회장 자리를 맡아 회원들의 의견을 두루 청취하고 있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주변의 권유가 있어 정말로 은퇴 후 성악을 해볼까 한다”며 너털웃음 짓는 그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레슬링 좋아하던 학생… ‘상장사 임원급 급여 회계사’에 매력 느껴=최 부회장은 어린시절 아마추어 레슬러 생활을 했다. 1970년대 양정모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레슬링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면서 분 ‘레슬링 붐’에 최 부회장 역시 끼어들었다. 잠깐의 레슬러 생활이었지만, 대회에서 입상도 할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강원도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 레슬링 붐에 이끌려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도 대회에 나가서 고등학생들과 붙어 동메달을 따기도 했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고등학생 선수들과의 지속적인 대결이 쉽지 않더군요. 입상도 하긴 했지만, 사실 공부를 더 잘했기 때문에 ‘이 길이 아니다’ 생각하고, 고등학생 때부터는 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죠.”

그는 서울로 유학을 와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도에 연세대학교 상경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당시 경영대학 학과장이던 고(故) 송자 전(前) 연세대학교 총장의 한마디가 회계사를 꿈꾸게 했다.

“송자 전 총장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회계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회계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죠. 그 당시 상장사가 200여곳 밖에 되지 않았을 때인데, 회계사 시험을 합격하면 상장사 임원급으로 연봉을 받게 된다고 하시더군요. 동시에 명예도 따라올 것이라 하셔서 그 때부터 회계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죠.”

그가 100여명 뽑는 회계사 시험에 합격할 당시인 1980년대 초반에는, 기업 감사가 회계사에게 배정돼 진행되던 시기다. 회계사 4명이 하나의 팀이라고 생각하면, 이 팀에 회사 5곳 정도가 배정됐다고 한다. 1인당 1.3곳 정도 법인을 맡다 보니 회계사가 “돈도 잘 벌고, 명예도 따라오는 직업”으로 생각되던 시기였다.

▶ “맨땅에 헤딩” 정신이 획득한 두 가지=최 부회장은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두 가지를 얻었다고 했다. 우선 그는 대한민국 재벌 50곳에 대한 재무분석을 숫자로만 담은 ‘한국의 50대 재벌 분석’이란 책을 내놓는다. 1988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30년 동안 지속한 작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개인 사정상 어쩔수 없었던 딱 두 해만 빼고 내놨다.

“회계사 시험에 통과한 뒤인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산업은행에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기업재무 분석을 담당한 게 도움이 됐지요.”

앞서 연세대 경영대학을 졸업하며 학사 졸업 논문으로 일본과 한국의 재벌을 비교분석하는 논문을 내기도 했다. 산업은행에서 재무분석을 익힌 최 부회장은 그 당시로서는 정부나 민간에서 다뤄본 적 없는 ‘대기업 재무분석’을 최초로 도전하게 된다. 실제로 그가 발간한 책을 살펴보면, 말로 된 설명은 거의 없다. 기업의 재무제표뿐 아니라 안정성 비율(유동비율, 당좌비율 등), 수익성 비율(자기자본순이익률, 총자본경상이익률 등) 등 50대 기업 계열사의 재무현황이 숫자로만 담겨 있다. 요즘 같으면 투자설명서나 신용분석 사이트에서 겨우 볼 법한 대규모 수치 분석을 엑셀도 구비돼 있지 않던 시절에 시도한 것이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와 ‘이런 것을 왜 하냐’고 묻기도 할 정도로 생소한 작업이었습니다. 재벌 독과점이 산업을 좌지우지할 때라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수치로 재벌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하고 싶었죠. 매년 4월에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대기업집단을 보고, 금융당국 공시실에 해당 기업들 자료를 받아와 수기로 직접 계산하고 책을 만들었습니다.”

한번 작업하는 데만 2~3달이 걸렸다. 서울여대 등에서 학생 5~7명을 데려와 수기작성·계산을 맡기기도 했다.

그는 영어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1년여 근무하는 동안 ‘국제 조세’ 파트를 맡았다. IBM·벡텔 등 외국기업의 세무 업무를 담당하면서 회계조세 업무를 외국인들과 하는 경험을 쌓았다. 1987년 동화회계법인(1992년 신한회계법인에 흡수 합병)에 입사한 그는 1995년부터 해외 업무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2001년 8월 16일 드디어 ‘일’을 내게 된다. 국내 회계법인 최초로 신한회계법인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외국인 감사법인이 되도록 한 것이다. 당시 빅4 대형 회계법인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당시 미국 장외시장(OCTBB)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국내 벤처협회에서 그곳에 한국 기업들을 진출시키고 싶어하더군요. 당시 한국기업이 미국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쓰게 되면 펀딩을 통해 투자받는 돈보다 그 곳 진출을 위해 감사·법무에 쓰는 돈이 더 많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아예 신한회계법인이 SEC 등록 감사인이 돼 벤처기업들을 돕자고 마음먹게 된 것이죠. 정말로 무작정 찾아가서 얘기하고 얻어낸 성과였습니다.”

▶ “감사 방식도 IT 중심으로 변화 필요한 시대”=최 부회장은 다가오는 시대에는 정보기술(IT)을 통해 ‘감사 방식’에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처럼 기업의 특정 부분만 뽑아서 조사하는 ‘표본 감사’가 아니라 ‘IT를 활용한 전수감사’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가 학생들에게 드는 과거 사례 중에 4조원 규모 은행을 감사한 경험을 예로 듭니다. 이 은행을 전통적인 ‘표본감사’로 보게 되면 5000만원 이상 거래액만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 은행은 계좌 전산까지 조작해 500만원 이하 거래를 3000건 이상 만드는 방법으로 돈을 빼돌려 횡령하는 일을 벌였죠. 이런 부분은 표본감사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가 주장하는 ‘전수감사’는 정말로 모든 것을 보는 감사를 뜻하진 않는다. 기업 거래의 90%는 ‘정형화된 거래’인데 이것은 IT 기술을 활용한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사전에 문제 발생을 차단할 수 있다. 나머지 10%는 ‘비정형화된 거래’인데, 이것에 대한 감사를 통해 엄격히 해 과거보다 문제 발생 가능성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감사 시스템의 변화 속에서도 ‘감사인의 책임’은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30대 초반에 겪었던, 잊지 못할 경험을 전했다.

“제가 30대 초반에 의정부에 있던 한 섬유회사를 감사했습니다. 그곳 사장이 정치를 하던 사람인데, 재무제표 관련 자료를 안 주고 감사의견만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의견거절을 줬죠. 그런데 그 회사가 그 뒤 검찰에 고발되고 은행이 갑자기 자금을 회수하고 대출을 끊으면서 300여명 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6개월 뒤엔 사장이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당시 그 회사가 공장부지 5000평이 있었는데,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땅값이 저렴했다가 갑자기 그 제한이 풀리면서 땅값이 폭등했죠. 즉 은행 대출을 다 갚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때 감사인의 역할이 단순히 기업 재무제표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회사와의 소통을 통해 좀 더 건설적인 가능성을 여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는 국내 감사인들이 세간의 ‘회계 투명성 우려’에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매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국내 회계 투명성 순위는 63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그런데 IMD가 발표하는 자료는 국내 기업 경영인을 대상으로 “자국 회계 투명성이 어떠한 것 같냐”고 묻는 인식조사이다. 경영인이 보는 ‘회계 투명성’ 정도와 국내 감사인들의 회계 역량이 일치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저도 외국 회계사들과 일을 많이 해보는데, 국내 회계사들 역량이 외국 회계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다만 외국과 다른 점은 저희는 기업이 개별 감리를 하고 나면 문제가 공시되고 이것이 언론에 자주 나온다는 것이죠. 미국이나 유럽은 감리를 하면서 문제가 있으면 권고를 하고 이를 이행하면 공시를 안 합니다. 우리나라는 기업들이 회계법인을 불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이는 공시와 언론 보도에 따른 과도한 우려일 가능성이 큽니다. 회계 문제를 사회가 공론화하는 모습을 재편하면, 회계투명성에 대한 국내 기업인들의 인식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김지헌 기자/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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