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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천황’과 ‘일왕…‘제국의 부활’과 ‘평화의 수호’
800년간 유명무실 덴노
제국주의 상징으로 부활
‘신→인간’=‘전쟁→평화’
나루히토, 호칭 변경을…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왜(倭)라 불리던 부족연합체가 고대국가의 체제를 갖춘 때가 7세기 오오아마(大海人) 오오키미(大君) 때다. 조카를 몰아내고 권좌에 오른 오오아마는 율령을 반포하고 국명을 ‘일본(日本)’ 고친다. 특히 군주의 호칭을 '덴노(天皇)'로 바꾼다. 제정일치 사회에서 정치지도자에 대한 신격화의 일환이다.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이 오오아마가 바로 덴무덴노(天武天皇)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편찬이 이뤄진 것도 이 때부터다.

8세기 나라시대(奈良時代) 내내 덴노의 친정체제가 이어지지만 그 힘은 점점 쇠퇴한다. 9세기 헤이안시대(平安時代)부터는 귀족의 세력이 강해져 후지와라(藤原) 씨의 셋칸(攝關) 정치가 시작된다. 비대해진 귀족권력은 내분으로 이어지고 이를 진압한 무장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며 바쿠후(幕府) 시대가 열린다. 바쿠후 시대에 덴노의 존재감은 바닥이었다. 중국으로부터 쇼군(將軍)이 왕으로 책봉 받기도 했다.

덴노가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때다. 바쿠후를 타도한 유신세력들은 국민적 구심점이 필요했고, 덴노를 주목했다. 독일제국을 선언한 프로이센 헌법을 바탕으로 제정된 1889년 일본제국 헌법에서 ‘천황’이 명문화된다. 외교문서에는 ‘일본국 황제’로 표기됐다. 안으론 덴노, 밖으론 황제다, 조선을 강점한 후 조선인에게도 덴노를 강요한다.

1935년 마차를 탄 히로히토 일왕(맨 왼쪽) [사진제공=게티이미지]

후에 메이지 덴노로 불리는 무쓰히토(睦仁)의 즉위는 헌법상 존재감이 없던 메이지유신 전이다. 오늘날 거창한 즉위식 절차는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던 요시히토(嘉仁) 덴노 때 만들어졌다. 병약한 요시히토는 친정기간(1912~1921)이 짧다. 아들인 히로히토(裕仁)는 즉위 5년전인 1921년부터 대리청정을 한다. 1989년에 사망했으니 무려 68년간 재위했다.

유신세력이 주도했던 메이지 때와 달리 히로히토의 정치적 실권은 상당했다. 태평양전쟁 전범 책임을 피하기 위해 명목상의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켰지만, 사실 히로히토는 재위 중 측근과 군부 사이에서 절묘하게 정치적 실권을 행사했다. 만주사변 등 침략전쟁의 최종결정권자였다. 전후에도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를 참배하고, 외교현안에 개입했다. 전후 보수우익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도 히로히토의 역할이 컸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일본의회 50주년 기념식에서 의원들의 인사를 받는 히로히토[사진제공=게티이미지]

1989년 히로히토의 장례는 ‘살아있는 신’이던 때의 절차를 따랐다. 계승자인 아키히토(明仁)의 즉위식이 히로히토 사후 1년10개월 후에야 치러질 정도였다. 지금도 히로히토의 생일인 4월29일은 공휴일이다. 900년만에 가장 강력한 일왕이었던 히로히토는 지금까지도 ‘살아 있는 신’인 셈이다.

2016년 필리핀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아키히토 부부[사진제공=게티이미지]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로마에서는 공적이 큰 죽은 이를 신격화했다. 시저(Caesar)도 마찬가지다. 시저의 이름은 황제의 의미를 담고 게르만계에서 카이저(Kaiser), 슬라브계에서 짜르(Tsre)로 변형됐다. 중국의 황제도 진시황(秦始皇)이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따온 말이지만 천자(天子)가 원조다. 황제는 신과 가까운 호칭이다. 영어 ‘Emperor’는 로마의 개선장군(Imperator)에서 유래됐다. 전쟁, 정복과 연결된다. 가장 많은 황제들이 난립했던 때가 바로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때다.

지금은 가장 많은 국가에서 상징적 군주인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도 ‘Queen’이다. 대영제국(British Empire)은 1926년 밸푸어선언(Balfour Declaration)으로 영연방으로 바뀐다. 그런데 일본은 다르다. 영어로 국가표기는 ‘the State of Japan’이지만 덴노의 호칭은 ‘the Empire of Great Japan’ 때와 같은 ‘Emperor’다.

현재의 평화헌법은 전쟁을 금지하고 있다. 아베신조(安倍晉三)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데 있어 히로히토와 찰떡궁합이었다. 기시는 태평양전쟁을 주도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절친이기도 하다. 만약 일본이 전쟁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바꾼다면, 이미 존재하는 황제와 함께 제국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 일본제국의 부활이라는 우려가 형식적으로 틀리지 않는 셈이다.

2003년 일본을 방문해 아키히토 일왕을 만난 노무현 대통령[사진제공=게티이미지]

히로히토 사망 당시 아키히토 태자는 소박한 장례를 주장했었다. 즉위 후에는 평화헌법 수호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아들인 나루히토(德仁)에 양위했다. 1817년 고카쿠(上格) 덴노 이후 202년만이다. 일본 입장에서 아키히토는 ‘신’이 낳았지만(1933년생), 나루히토는 처음으로 ‘인간’으로 태어난(1960년생) 덴노다.

태자 당시 나루히토 일왕 가족의 모습[사진제공=게티이미지]

나루히토 덴노는 즉위식에서 평화를 다시금 강조했다. 아키히토 덴노가 생전양위라는 큰 결단을 했다면 나루히토는 ‘덴노’라는 명칭을 표기하는 결단을 내리면 어떨까? 어차피 조상인 오오아마(大海人) 오오키미(大君)의 결단으로 탄생한 호칭이다. 이제 다른 나라에서도 전혀 쓰지 않는다. 더 이상 신도 아니고 제국주의를 추구하지도 않는다면, 그저 왕(King)이면 족해 보인다. 영국도, 태국도 국왕에게 ‘장수기원(Long Live)’을 한다. 덴노가 일왕을 자처한다면 ‘반자이’(ばんざい, 萬歲)를 외치는 아베 총리가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을 듯 하다.

10월 22일 즉위식장의 나루히토 일왕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아베신조 일본 총리 [사진제공=게티이미지]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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