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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없는 현금부자’에 강남 청약시장 ‘들썩’…이들은 누구
고가 전·월세거주자, 고수익 직종 등 몰려
20·30대 “가점 안 되어도 일단 넣어보자”
시세차익·공급부족 우려…청약통장 쏟아져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현금 부자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청약가점까지 이렇게 높은 부자가 많은 건 처음 알았네요.”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들어설 ‘역삼센트럴아이파크’ 견본주택을 찾은 방문객들의 모습 [양영경 기자/y2k@]

지난달 24일 1순위 청약접수를 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래미안라클래시’ 분양 관계자의 말이다. 이 단지의 1순위 해당지역 평균 청약경쟁률은 115.09대 1에 달했다. 당첨자의 평균가점은 68.95점, 최고는 79점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초 청약접수한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송파시그니처롯데캐슬’엔 429가구 모집에 2만3565명이 몰렸다. 가장 최근인 이달 1일 1순위 청약접수에 나선 강남구 역삼동 ‘역삼센트럴아이파크’에는 일반분양 물량 138가구에 8975명이 몰렸다. 평균 당첨가점은 70점대 안팎으로 예상되고 있다.

요즘 강남권 분양시장에선 현금부자들이 분양 물량을 싹쓸이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올 들어 분양시장이 무주택자·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된 가운데 이들은 ‘무주택 요건’을 갖춘 현금부자이기도 하다.

강남권 분양주택은 대부분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는 9억원 이상이다. 대략 10억원 이상 현금을 일시에 동원할 수 있어야 노려볼 수 있다. 이 정도 부자라면 집 한 채쯤은 진작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충분한 자금여력을 갖추고도 오랜기간 무주택자로 산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들어설 ‘래미안라클래시’ 견본주택에서 방문객들이 대기하고 있다. [양영경 기자/y2k@]

▶“인근서 전세 살아요”…고가전세 거주자多= 최근 분양단지 견본주택을 방문한 예비청약자와 업계 관계자,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금 많은 무주택자는 ▷고가 전·월세 거주자 ▷고수익 직종 ▷가족연합족 ▷일단 청약족 등으로 요약된다.

이종성 래미안라클래시 분양소장은 “사전 문의전화가 하루평균 300~500건에 달했는데 고가 전세 거주자 문의가 많았다”고 했다. 그동안 특별히 자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요즘 본격적으로 청약시장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특히 강남권에서 수년간 고가 전·월세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금력(전세금)과 가점을 바탕으로 어렵지 않게 ‘로또 분양’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지난해 기준, 강남권 거주자 중 무주택가구는 약 30만 가구에 이른다.

서초구 반포동 인근 A공인중개사는 “반포동, 대치동, 개포동 인근에는 결혼한 지 10년 넘고 청약가점이 높은 고가 전세 거주자들이 많다”며 “생각보다 투자성향이 보수적이고, (집을 산 후) 세금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직접 견본주택 현장들에서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이런 유형이었다. 지난 20일 래미안라클래시 견본주택에서 만난 50대 주부 김모씨는 “15년 간 삼성동에서 전세로 살면서 육아에 전념하느라 청약현장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며 “청약가점이 60점대 후반으로 나온 데다 최근 들어 집값이 크게 올라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역삼센트럴아이파크 분양상담 관계자는 견본주택 개관 첫 날인 27일 “반나절 동안 30건 정도 상담했는데 70% 정도가 대치동, 도곡동 등 강남권 거주자였다”며 “전세금을 빼서 분양받겠다거나 일부러 무주택기간을 늘리려고 버텼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들어설 ‘래미안라클래시’ 견본주택에서 방문객들이 청약상담을 받고 있다. [양영경 기자/y2k@]

▶연봉 1억원대 고수익자도 몰려= 고수익 직종도 ‘무주택 현금부자’의 한 부류로 꼽힌다. 이들 중 다수가 고가 전·월세에 살지만, 아닌 사례도 있다. 전문가와 프라이빗뱅커(PB)들은 강남권 등 서울 주요지역에 부부가 각각 연봉 1억원 이상인 경우가 꽤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대출 등을 통해 10억원 이상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 김재언 미래에셋대우 VIP 컨설팅팀 수석매니저는 “자산 40억~100억원을 가진 무주택자가 여럿 있었다”며 “자수성가형인 벤처기업 대표 등은 사업수익이 높다 보니 부동산투자가 대수냐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고, 금융권(증권업) 종사가 가운데서도 집 없는 부자가 많았다”고 했다.

전·월세가 각종 부동산 세금 부담이 적다는 점도 이들이 굳이 집을 사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투자할 대상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들도 뒤늦게 청약시장에 뛰어드는 경향이 생겼다. 최근 역삼센트럴아이파크 견본주택에서 만난 70대 여성 이모씨는 “30대 후반인 아들 이름으로 청약을 넣을 것”이라며 “(아들이) 전문직이어서 실탄은 충분한 데, 청약가점이 모자란 게 아쉽다”고 했다.

자주 해외를 오가는 전문직도 이런 부류에 포함된다. 건설사 분양업무 담당자는 “업무 등으로 외국을 오가는 사람들의 문의가 특히 많다”며 “거주요건을 갖출 수 있을 때 빨리 청약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재 출국 후 연속 90일 이상 국외에 체류하거나 1년 중 6개월 이상 해외에 머문 사람은 당해 지역 거주요건(1년)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본다.

▶“부모님이랑 같이 살래요”…연합族 등장= 가족 구성원 변동을 계기로 청약에 나서는 일도 잦다. 두 가족을 합해 부양가족 수를 늘려 청약가점을 높이는 등 ‘가족연합’ 유형이다. 물론 자금력은 기본이다. 역삼센트럴아이파크 견본주택을 찾은 50대 여성 박모씨는 “그간 전세로 거주하면서 자녀 2명을 키웠는데 이제는 부모님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할 것”이라며 “시세차익도 중요하지만 다른 집들의 가격이 떨어질 때 안 떨어지는 안정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의 한 전문가는 “그간 자녀들의 유학비용을 대느라 집을 마련할 자금이 부족했던 전문직 부부도 최근 강남권 청약에 나섰다”며 “자녀들이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더 큰 집이 필요해졌고, 자녀가 커서 유학비용 지출이 줄어들어 이를 모아 집값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형태는 부양가족 산정 시 가점 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다. 다만, 만 60세 이상 유주택 부모라면 부양가족 인정이 안 되고, 자금 마련과 관련해 증여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금력 바탕…“청약하고 보자”= 일단 청약통장을 밀어 넣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낮은 청약가점 탓에 당첨 확률은 낮지만, 부적격자가 발생하면 청약기회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청약제도가 복잡해지면서 지난 2016년 8.9%였던 부적격 당첨비율은 지난해 11.5%까지 늘었다. 이런 움직임은 청약가점이 애매한 당첨권(40~50점)인 40·50대 뿐만 아니라, 가점이 이보다 훨씬 낮은 20·30대에서도 활발했다. 래미안라클래시 견본주택에서 만난 20대 장모 씨는 “(가점 때문에) 안 될 줄은 알지만, 예비당첨자라도 걸릴까 싶어 일단은 넣었다”고 말했다. 결혼을 앞둔 30대 강모 씨도 “올해까지는 어떻게든 집을 구해야 해서 청약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무순위 청약단지에서는 20·30대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분양가가 3.3㎡당 평균 4891만원이었던 서초구 방배동 ‘방배그랑자이’에서는 무순위청약 당첨자 84명 중 30대가 30명, 20대가 5명이었다.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에서도 무순위 당첨자 20명 중 30대가 12명, 20대가 1명이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청약시장 분위기와 관련해 온갖 ‘장롱면허’(통장)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봤다. 시장 열기가 뜨겁다 보니 장롱에 넣어두고 쓰지 않던 통장은 물론 장롱에 더 묵혀둘 만한 통장까지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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