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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송인회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 ‘퇴직금’받는 건설일용근로자 ‘기능인등급제’를 향해

이제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한지 넉 달여, 나날이 가슴 벅차다. 지난 20여년 간 ‘소외된 약자’를 향해 공제회가 걸어온 외길을 되돌아보니 어깨는 무겁지만 힘이 솟는다. 많은 일들 중에서 건설근로자퇴직공제제도를 운영해 근로자분들의 노후에 버팀목이 되어 드린 것이 가장 뿌듯하다. 이 제도는 우리 사회의 참담한 아픔에서 비롯됐다. 퇴직공제제도가 도입된 시기는 1998년인데,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94년의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였다. 연이은 참사를 겪은 후 정부는 다각적으로 근본 원인을 분석했다. 그중 하나가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근로자의 사기 저하였고, 노후대책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근로자의 노후를 돌보는 제도는 퇴직금과 국민연금이었다. 통상 퇴직금을 받으려면 한 곳에서 1년 넘게 근속해야 했고,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피보험자로서 관리돼야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인 건설일용근로자는 이동이 잦아 동일 현장에서 1년 넘게 일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피보험자 관리에서도 누락됐다. 1996년에 한국노동연구원이 건설일용근로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불만사항의 1순위는 고용불안이고 2순위가 ‘노후불안’이었다.

정부는 건설일용근로자의 잦은 이동이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초기업 단위에서 여러 현장의 근로일수를 모아 252일 이상이 적립되면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피공제자와 공제부금을 관리하고 60세에 이르거나 이직 시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는 업무를 담당하도록 건설근로자공제회를 출범시켰다. 정규직 근로자나 받을 수 있었던 퇴직금을 이동이 잦은 건설일용근로자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탄생했다. 이것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눈물 닦기’에 성공한 최초의 맞춤형 복지제도다.

10여년 전에 공제회 직원을 찾아온 예능인노조 간부가 다짜고짜 묻더란다. “우리처럼 우아한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퇴직금이 없는데, 건설일용근로자가 퇴직금을 받는다는 게 사실인가요”라고. 제도를 설명해 주었더니 자신들도 그렇게 만들겠노라 다짐했었다고 한다. 그들은 가수, 탈렌트, 모델, 영화인, 보조출연자, 연출자 등으로 구성된 노조였다. 향후 건설일용근로자의 경험이 노후가 불안한 다른 비정규 근로자들에게도 확산되기를 바란다.

2019년 현재 공제회는 야심찬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존경받는 전문직업인’을 향한 ‘건설기능인등급제’의 도입이다. 근로경력 자격 교육훈련 포상 등을 종합해 숙련등급을 구분·관리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드리려 한다. 명확한 직업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청년층의 진입과 숙련인력의 육성을 촉진해 고령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기능인등급제가 청년들의 ‘장인의 꿈’을 지피고 건설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밝히는 희망의 불씨가 되길 소망한다.

‘존경받는 기능인’,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선망의 대상인 독일 건설현장의 마이스터에게도 암울한 시절이 있었다. 1950년대 초까지 ‘노동자로서 마지막 정거장’으로 불렸으며, 오늘의 존경받는 마이스터가 되기까지 50년이 걸렸단다. 우리는 후발주자이니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건설근로자의 행복을 자신의 성공이라 여기는 공제회가 있지 않은가.

건설근로자의 든든한 노후를 지켜드리고 ‘존경받는 기능인’을 향해 함께 나가는 것, 이처럼 값지고 보람 있는 성공이 또 있을까. 다가올 공제회의 가슴 벅찬 성공을 그리며 에머슨의 ‘성공이란’ 시를 되뇌어 본다. “(중략) /자신이 한때 존재했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하물며 그 행복이 이 사회를 건설하고도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했던 건설근로자의 행복이라면 더 일러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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